고구려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역사인가? [고구려사 명장면]

2022. 12. 1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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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고구려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역사인가?‘라고 스스로 물었다. 160여 회를 이어온 본 연재는 결국 이 물음에 답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독자분들께 같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과연 “오늘 우리에게 고구려 역사는 어떤 역사로 기억되고 있나?’

물론 이런 질문은 고구려 역사만이 아니라 모든 역사에 똑같이 물어야할 물음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게 고구려 역사는 다른 왕조와는 남다른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으니, 그 물음에 대한 답도 많이 다르리라 본다.

고구려를 규정하는 이미지의 하나가 ‘만주 대륙’를 지배했던 나라라는 점이다.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의 땅, 이른바 ‘만주’라고 불리는 그 땅에 대해 우리는 남다른 역사적 향수를 갖고 있다. 그것은 그 땅에 겹겹이 쌓인 기억 때문이다.

가까이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독립을 위한 치열한 투쟁의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1천여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발해 역사, 고구려 역사, 고조선의 역사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역사 속에서도 왠지 진짜 ”만주대륙의 주인공“은 고구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게다. 그만큼 ‘만주 땅’하면 ‘고구려’라는 등식이 우리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고구려 역사에 대한 환기가 그 땅에 대한 우리들의 욕망과 겹쳐지기도 한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정말 많은 분들이 만주지역을 찾아 답사하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고구려 역사를 환기하기 그치지 않고 땅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경계할 일이다. 땅 자체는 역사가 아니다. 그 땅에 간다고 해도 그곳에서 과거를 돌이켜 기억하지 않으면 결코 역사 현장이 될 수 없다.

연재 첫머리에서 고구려 역사의 특성으로서 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최초의 통합국가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사실 오늘날 우리 시선에서는 만주와 한반도가 구분되고 있지만, 고구려인들의 눈길은 만주와 한반도 땅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자신들의 하나의 영토일 뿐이다. 오히려 살기 좋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라는 걸 구분하는,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인 그런 방식으로 땅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역사 속의 영토를 사람들이 몸을 맡기고 삶을 영위하는 땅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지도상의 면적과 크기, 균질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만주땅에 대한 막연한 호의적 생각들이 그러하다.

장수왕의 평양 천도에 대해서도 한반도 좁은 곳으로 옮기지 말고 요동 땅에 새로 도읍을 잡았으면, 좀더 넓은 만주 영토를 차지하는 기세를 떨쳤을 거라고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중요한 점을 놓치게 된다. 역사를 만들어간 주체를 역사 해석에서 소외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시 고구려인들의 선택을 중시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인들이 평양 도읍을 선택한 절실한 이유가 있었을 테고, 이를 살피고 밝히는 일이 탐구 주제가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만주땅’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를 올바르게 하는 것도 고구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주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광개토왕비 : 비문에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유족해졌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도다(國富民殷, 五穀豊熟)”이라는 고구려 국가의 지향을 제시하고 있다. ‘광개토’의 진정한 목적이다. /사진=조선 고적도보
그리고 고구려가 영역을 확대하고 제국적 팽창을 추구하면서 사회 내부에 다수의 종족을 포함한 다종족 국가라는 점도 유의된다. 어떤 분들은 ‘고구려 제국’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고구려가 ‘제국’인지 아닌지는 이론이 있어 접어두더라도, 적어도 ‘제국’이라고 부르기 좋아하는 분들이 정작 고구려를 ‘한민족국가’로 규정하는 데에 열심임은 분명하다. 따져보면 제국과 민족국가는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다. 왜냐하면 제국은 정복을 통해 국가 내부에 다수의 민족이나 종족을 포괄하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예맥족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역사를 시작하였지만, 정복국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고구려는 영토 내부에 한족을 비롯하여 말갈족, 거란족, 한족과 예족 등을 포함하게 되었으며, 또 영토 외곽에는 말갈족을 비롯한 다수의 주변 세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제국’으로서의 모습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 역사를 단지 ‘한민족’의 역사로만 한정하여 바라보게 되면 고구려 역사의 전체상이 잘 드러나지 않게 된다.

다민족국가로서 고구려는 당연히 포용성과 개방성을 갖추고 있었다. 예컨대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출신은 속말말갈일지는 몰라도 고구려인으로서 정체성을 갖추고 있었다. ‘고구려인’이라는 세계에는 고구려 영역 안의 모든 주민이 포괄되었다. 각자의 출신 종족 보다는 ‘고구려인’이라는 정체성에 귀속되었다. 이런 다종족 국가로서의 특성은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만이 갖는 독특한 성격이다. 오늘 한국 사회에는 적지 않은 수의 이민자들이 있다. 국내 인구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민자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이른바 ‘다문화사회’ 또는 다종족사회로 바뀌어 간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의식 구조는 여전히 ‘단일민족’ 국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면이 적지 않다.

요즘 K-콘텐츠가 만개하여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있는데, 국제성, 보편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를 굳이 K-콘텐츠라고 불러야할까? 비록 생산은 한국인과 한국에서 이루어지지만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세계적이다. 따지고 보면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외국 여러 나라의 팝뮤직이나 이른바 미드니 일드니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함께 향유하고 있는데, 이들을 굳이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콘텐츠인지 따져가면 즐기지는 않는다. 비록 그것이 일드라고 할지라도 거기서 우리가 즐기는 것은 보편적인 요소들이지, 이를 딱히 J-콘텐츠라고 민족적, 국가적 귀속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K-콘텐츠는 민족적 자긍심으로 바라본다. 이렇듯 우리는 여차하면 많은 것을 ‘민족’의 시선으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다. 과거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고구려의 다원적 성격은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고구려 역사가 우리에게 보다 확장된 시선을 보여줄 수 있음은 분명하다.

고구려가 당대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이끌어가는 다원적 중심축의 하나라는 점도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특히 5~6세기에는 남북조로 나뉘어진 중국 왕조의 정세를 양면 외교를 통해 이용하고 동시에 유연이나 돌궐 등 북방 유목 세력과 교섭하여 세력 균형을 꾀하면서 동북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세력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국력이나 군사력으로 따져보면 동아시아 4강 중에서 가장 열세일지도 모르지만, 고구려는 우연한 외교 전략으로 4강 중에서 유일하게 상대국과 전쟁을 치루지 않았다.

오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결코 녹녹치 않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세력이 세계 최강국들이며, 여기에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열되어 있다. 다만 한국의 정치, 경제적 성장은 주변 4강에게 만만치 않은 대응력을 갖추게 하였다. 이는 이제 한반도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다만 동북아시아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확보하는 외교적 안목과 넓은 시야를 갖출 때 가능해진다. 고구려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의 하나이다.

역사 공부를 하면서 항상 되묻는 것은 지금 탐색하려는 이 과거가 과연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이다. 물론 역사학자만이 그 의미를 찾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역사학자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과거를 진실되게 찾아내고 드러낼 뿐이지, 그 과거가 갖는 현재적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 사회 모든 이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본 연재를 시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본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귀한 지면을 아낌없이 내주셨던 매일경제 프리미엄 부서에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독자분께는 엎드려 절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읽는 분들이 있어 글을 쓸 수 있었으니, 앞으로도 다른 방식으로 독자분들을 찾아뵙겠다고 약속드린다.

“國富民殷, 五穀豊熟”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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