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상은 존재하고 형태는 사라진다-건축가 정의엽(下) [효효 아키텍트]

2022. 12. 1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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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회
로스톤(LOSTON= Lost Stone) 모형 - 정면 / 사진제공 = 건축가 정의엽
지난 10월 하순 정의엽 건축가와 연락하였을 때 그의 첫 마디는 ‘로스톤’ (LOSTON= Lost Stone)이었다. 최근 3년간 한 가지 주제로 작업한 최종판으로 읽혔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은 1970년대~1980년대 지어진 주택과 인프라가 노후화 되었다. 대림동은 전세계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차이나타운과는 결을 달리하나 국내 유일의 ‘타운’ 명칭을 붙일 수 있는 외국인 집단거주지이다.

갤러리와 카페 용도의 로스톤(2022 준공예정) 모티프는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21년 봄 등산 중에 얻었다. 산 정상 아래에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큰 바위에 자리 잡으며 휴식을 취했다. 항상 그렇듯 정의엽은 자문하고 있었다.

‘바위가 현대 건축이 상실한 유토피아를 회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까?’

로스톤의 카페 내부 투시도 / 사진 제공 = 건축가 정의엽
건물의 북쪽은 일조를 고려해 계단식으로 테라스가 형성되며 뾰족한 메스를 만든다. 1~3층, 4층 갤러리, 5~6층 사무실 및 주거공간의 입구에 이르기까지 외부 계단과 테라스가 연결되어 수직적 공공 영역이 되도록 했다.

설계중 이어진 또 다른 자문자답, ‘형상은 존재하되 형태는 사라지게 한다.’

3차원으로 리모델링한 바위 형태를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만들기 위해 거푸집을 CNC 절단기로 정교하게 절단하여 제작하였다. 단순하게 얇은 각층의 슬라브를 받치고 있는 바위의 탑, 절벽처럼 보여지며 드러났다.

산이 둘러싼 서울 도심, 산 정상 아래에 펼쳐진 마치 바람이 흐르는 잠시 동안의 고원의 고요와 평화를 끌어다 가져온 듯 하다.

‘녹아 내리는(경계의) 집’(MELTING HOUSE, 멜팅하우스 2022)은 제주시 한림읍 협재 해수욕장 인근 갯바위, 바람, 노을을 만나는 별장(세컨 하우스)이다.

제주도 한림읍 멜팅 하우스 / 제공 = 건축 전문 사진작가 신경섭
올레길에 연결된 좁은 입구로 대지에 들어서면 돌담 너머로 수평선이 들어온다. 이층 정도의 레벨이 되면 서쪽으로 비양도와 바다가 열린다. 중정과 수공간, 돌담 너머의 갯바위, 바다와 하늘로 공간적 경계를 확장해간다. 거실은 바로 외부 테라스로 이어져 지붕으로 오른다. 지붕은 다시 일층까지 모든 레벨이 외부에서 연결되도록 하여 전체 공간의 동선은 순환된다.

사용자의 간헐적 거주 용도를 고려하여 정의엽 건축가는 관습적 거주 방식을 벗어나 새롭고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킬 공간을 생각했다. ‘견고한 관성적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거주의 경험을 확장해야 하는가?’

제주도 한림읍 멜팅 하우스 / 제공 = 건축 전문 사진작가 신경섭
유리 밖에 설치한 튜링 패턴의 콘크리트 타공 패널의 미세한 구멍으로 보는 거리나 각도에 따라 밖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드나드는 타공 패널이 콘크리트(UHPC)로 만들어져서 구조 벽과 일체감을 가지기에 고유의 견고한 벽처럼, 투과성이 있는 창처럼 보이기도 한다. 석양이 질 무렵이면 콘크리트 벽이 녹아내리듯 붉게 물든다. 막혀있지만 뚫려있다.

정의엽은 이 집의 경계를 3가지 층위(환경과 인간, 내부와 외부, 목적성과 무목적성 사이)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 경계는 모호하거나 상호 침투하여 녹아 내린다(Melting)고 보았다.

‘‘자연의 변화가 동기화되어 그 일부가 되고, 그 순간 자체를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장소가 된다.’’(정의엽)

제주도 한림읍 멜팅 하우스 내부 / 제공 = 건축 전문 사진작가 신경섭
단위 공간의 기능도 모호하거나 새롭게 발생한다. 식당은 집의 중심으로 모든 행위를 수용할 수 있게 열려있다. 거실의 일부는 중정의 수공간으로 입수하는 전실로 쓰일 수도 있다. 실용적인 경계는 존재하나 약해지고 현상학적 경계는 경험을 지배한다.

멜팅 하우스는 대지가 품고 있는 특유의 자연 환경을 해석한 정의엽 건축의 또 다른 사례이다. 그의 첫 수주 프로젝트이기도 한 경기도 양평 문호리 ‘지형부양집’ (2010)의 맥락을 잇는다. 안과 밖이 모두 건물로 주목받는 것을 피하고, 자연에 스며들게 하는 무경계를 추구하는 일본의 건축 그룹 사나(SANAA)의 건축 언어를 가져온 듯도 하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의 하늘문집(2016)은 젊은 건축주의 개인적 경험과 성경 말씀이 모티프가 되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 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 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 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마르코 2장 4절)

제주도 한림읍 멜팅 하우스 내부 / 제공 = 건축 전문 사진작가 신경섭
건축주는 미팅에서 성경 말씀을 소개했다. ‘달아 내린다’는 공간의 이동을 말한다. ‘내부 공간의 수직 동선, 빛의 유입, 명상적 공간은 주택의 일상적 기능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초월한 시선이 무엇일까?’ 건축가는 하늘로 난 문, 그 너머의 공간으로 연결된 집을 상상했다.

천창으로 빛을 드리우는 방식은 ‘판테온’과 같은 종교적 건축에 역사적으로 많이 쓰여져 왔다. 정의엽은 중심 공간에 태양빛과 날씨의 변화를 하루 종일 지속적으로 내부에 전달하는 건축적 산책로는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 Villa Savoye, 1929) 처럼 또는 사나(SANAA)의 글라스 파빌리온(Toledo Museum of Art‘s Glass Pavilion. 2004) 같이 사람의 움직임이나 자연의 빛을 받으며 경험되는 현상적 공간이다.

용인 하늘문집 내부 / 제공 = 건축 전문 사진작가 신경섭
판테온과 빌라 사보아아의 건축적 개념을 결합해 제 3의 공간을 구축하고자 했다. 신성한 존재, 하늘로 상징되는 자연과 사람의 움직임에 의해 조직되는 공간을 의도했다. 정면에서 지붕까지 비스듬히 관통하는 경사로는 천창과 합해 그러한 의도를 구현한 건축적 실체이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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