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달레, 달레!” 축구에 취한 아르헨티나는 모두가 즐겁다

한겨레 2022. 12. 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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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노동효의 지구 둘레길]노동효의 지구 둘레길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
아르헨티나의 동북부 해안도시
마르델플라타서 축구 경기 관람
북 치고 함성 지르고 깃발 흔들고
즐기며 열광하는 남미 응원전
응원하는 팀의 깃발을 흔들며 경기장으로 가는 아르헨티나 축구팬들. 노동효 제공

20세기 중후반 지구를 관찰하던 외계인들은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다. 인간들이 작은 공을 서로 뺏느라 달리는 모습이었다. 한 장소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아메리카 해변, 아프리카 들판, 유럽 공터, 아시아 골목에서 인간들이 공을 뺏으려고 쫓고 쫓았다. “왜 저러지?” 황금 같은 광물에 집착하는 지구인이 반짝이지도 않는 공을 뺏으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부가 금으로 채워져 있을 거야!” 다른 외계인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다면 헤더를 하고 뇌진탕으로 쓰러져야 한다. 그러나 웃지 않는가?” 결국 축구공을 납치, 해부대 위에 올려놓았다. 둘레 69㎝, 무게 430g의 구체를 12개의 육각형, 20개의 오각형 가죽이 감싸고 있었다. 수술용 메스를 들이댔다. 공안엔 지구에서 가장 흔한 ‘공기’만 가득했다.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구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구나!”

축구를 하며 즐거워하는 아르헨티나 아이들. 노동효 제공

서서 발로 차는 유인원의 역사

5백만 년에 걸쳐 지구를 연구해온 헤로도토스 행성의 역사가를 찾아갔다. 노학자는 지구인이 두 개의 기둥 사이로 공을 넣을 때마다 환호한다는 것과 그 횟수에 따라 승패가 나뉜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러나 후학은 납득할 수 없었다. “지구인은 왜 그런 경기에 열광하는 거죠?” 노학자가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 “처음 지구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유인원은 나무 위에서 생활했다네. 아주 가끔 땅에 떨어진 과일을 줍기 위해 내려왔지. 그러던 중 한 녀석이 둥근 과일에 힘을 가하면 데굴데굴 구른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 후 녀석은 동료들과 과일을 멀리 구르게 하는 놀이를 즐기기 시작했지. 그러다 과일을 앞발(손)로 미는 것보다 서서 뒷발로 차면 더 멀리 간다는 걸 깨달았어. 유레카! 구경하던 녀석들도 나무에서 내려와 놀이에 동참하면서 ‘서서 발로 차는 유인원’이 더욱 늘어났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등장이지. 이들은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다양한 원인류로 진화했는데 끝까지 살아남은 건 ‘발로 공차기’를 잊지 않은 사피엔스였지. 베링해협이 아메리카 대륙을 떼놓았지만, 사피엔스는 아마존에서도 공차기를 잊지 않았어. 과일을 발로 차다가 직립보행하게 된 지구인이 축구에 열광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축구 경기는 지구인의 역사를 빼닮았어. 늘 지던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이변이 벌어지지. 지구인은 ‘희망’을 이렇게 표현하더군. 공은 둥글다. 지구를 한마디로 말하면, 우주라는 그라운드를 굴러가는 축구공이야!”

지구 북반구에 겨울이 오면, 지구 남반구는 여름으로 접어든다. 아르헨티나의 휴양도시 마르델플라타는 영화제, 연극제, 미술전, 축구 경기 등 다양한 이벤트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도시 인구가 60만에서 200만으로 불어난다. 호텔은 숙박객들로 가득 차고 피서객은 낮 동안 해변에서 멱감으며 놀다가 저녁 유흥거리를 찾아 극장, 클럽, 카지노로 향한다. 축구팬은 스타디움으로 발길을 옮긴다. ‘토르네오스데베라노’라 불리는 토너먼트가 열리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축구장에 갈래?” 막시로부터 전화가 왔다. 카루셀호스텔의 주인장이었다. 비수기 때 그의 호스텔에서 한 달간 묵은 적이 있었다. 가족처럼 지낸 인연으로 성수기의 마르델플라타로 나를 초대했다. 호스텔은 만원이었다. “아내가 장인·장모 모시고 휴가 갔어. 한 달 뒤 올 거야. 나랑 처가에서 지내면 돼!” 막시는 고삐 풀린 망아지랑 다를 바 없었다. 저녁엔 블루스 클럽을 다니고 호스텔 마당에서 술을 마셔대는 사이 일주일이 지났다. 떠나기 전, 선물할 물건을 사려고 도심에 나온 날이었다.

축구 경기가 열리기 전부터 거리에서 응원전을 펼치는 사람들. 노동효 제공
아르헨티나인이 가장 즐겨 입는 10번 리오넬 메시의 유니폼(오른쪽). 노동효 제공

떼려야 뗄 수 없는 술과 축구

“좋아, 근데 누구랑 붙는 경기니?” “라싱과 인디펜디엔테!”

두 클럽은 보카주니어스, 리버플레이트, 산로렌조와 더불어 아르헨티나 5대 명문구단으로 꼽혔다. 보카주니어스 대 리버플레이트, 라싱 대 인디펜디엔테 경기는 바르셀로나 대 레알 마드리드에 버금가는 라이벌전이었다. 아르헨티나 리그 수준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에 못 미치지만, 응원 열기는 유럽을 능가할 정도였다. 하긴 최초의 축구 팬도 남아메리카인이었으니까.

20세기 초 우루과이에 프루덴시오 레예스라는 사람이 살았다. 공기주입기가 없던 시절, 축구공에 ‘공기를 불어 넣는 사람’이 필요했다. 프루덴시오의 일이었다. 그는 자기 팀 경기가 있으면 고함과 몸짓으로 열렬히 응원했다. 관중이 “누구냐?” 물을 때마다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내셔널 팀의 인차(스페인어로 ‘공기를 부어 넣는다’)입니다.” 따르는 관중이 늘어났다 “내셔널, 내셔널, 올라가자, 내셔널!” 이들을 ‘인차다스’로 불렀고 이 문화가 인접국으로 퍼졌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이 열렸다. 함성을 지르고, 북을 치고, 폭죽을 터트리고, 깃발을 흔드는 문화가 드디어 대서양을 건넜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프랑스로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우루과이에선 ‘최초의 축구 팬’이던 프루덴시오의 생일을 ‘인차다스의 날’로 기념한다.

광장에서 오늘 맞붙을 두 팀의 서포터즈를 만났다. 경기가 시작되려면 한참이 남았는데 이미 응원전이 시작되었다. 심벌 달린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고, 깃발을 흔들었다. 깃발 아래 팬들이 모여들었다. 출전하는 군대 같았다. 경기장까지 퍼레이드가 이어질 모양이었다. 경기장 분위기는 어떨까?

막시의 차를 타고 갔다. 다들 웃통을 벗었고 보조석에 앉은 페르난도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 병을 내게 넘겼다. “경기장에선 음주 금지야!” 골목에 주차했다. 경기장 옆 주차장은 오늘 사용금지라고 했다. “카메라, 휴대폰, 보조배터리 등 무기(?)가 될 수 있는 건 모두 두고 가야 해.” 포장마차 거리가 나왔다. “반드시 초리판(구운 소시지를 빵에 넣은 음식)을 먹어야 해, 필승의식이지!” 아르헨티나식 핫도그로 배를 채우고 대로를 건넜다. “경기장은 어디야?” “1㎞ 더 가야 해!” 길을 서두는데 뜻밖의 대열이 앞을 막았다. 경찰이었다. “웃통 벗은 놈들, 옷부터 입어!” 몸수색이 시작되었다. 공항검색대보다 꼼꼼히 몸과 소지품을 확인했다. 300m쯤 지나자 또 다른 경찰, 세 차례 몸수색을 당하고 경기장 입구에 이르렀다. 타타타타타타타. 헬리콥터가 날고 있었다. 서치라이트가 경기장 구석구석을 비췄다. 사건 현장에라도 들어온 기분이었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 골대 뒤는 서포터즈 자리였다. 초대형 깃발이 스타디움 상단부터 하단까지 내려와 있었다. 선수들이 입장하자 함성을 지르고 북을 치며 응원을 독려했다. 팬들은 “달레, 달레, 달레!”(가자, 가자, 가자!)를 외치며 독특한 손동작을 했다. 16강 진출 확정 후 리오넬 메시가 아르헨티나 관중과 함께 손목을 탈탈 흔들던 동작을 기억하리라. 함성, 나부끼는 깃발, 헬리콥터 소리까지 더해져 전쟁터 같았다. 하긴 축구가 전투와 다를 바 없는 경기에서 벗어난 건 200년이 되지 않았다.

19세기 중반까진 이렇다 할 규칙 없이 특정 지점을 골대로 삼아 발로 차든, 안고 뛰든 공을 가져다 놓으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정해진 인원, 시간도 없었고 골대 사이가 몇 킬로미터에 이르기도 했다. 주먹질, 발길질, 칼부림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오죽하면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에서 이런 욕을 했을까? “이 천박한 축구 선수 같으니!” 영국 국왕은 호환·마마 보다 위험한 경기라며 금지했다. 그러나 금지할수록 영국인은 축구에 더욱 몰두했다. 상대를 발로 차지 말 것, 공을 안고 달리지 말 것 등 축구클럽들이 협정을 맺은 건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만들어진 1863년에 와서다. 협정을 맺은 장소는 주점이었고 그로 인해 술과 축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피서철을 맞아 특별전이 열리는 마르델플라타 현대미술관. 노동효 제공
호스텔 마당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피서객들. 노동효 제공
마르델플라타 외곽 해변 너머로 보이는 도심. 노동효 제공

“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 즐겁다”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함성은 커졌다. 아르헨티나 팬들은 중독자였다. 물론 중독시킨 건 약물이 아니라 ‘엔투지아즘’(열광)이었다. 어원은 ‘신에게 깃들다’는 고대 그리스어. 팬은 스스로 신전이었다. 마라도나를 신으로 모시는 종교가 탄생한 게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구나! 열광적 응원을 보며 많은 걸 깨달았다, 사직야구장이 ‘지상 최대 노래방’이 아니란 진실을, 이곳에서도 응원가가 경기 종료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축구에 적용하면, ‘모든 축구 강팀은 비슷한 이유로 강하고 모든 축구 약팀은 저마다의 이유로 약하다.’ 강팀의 ‘비슷한 이유’란 ‘자국 프로리그에 열렬한 팬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휘슬이 울렸다. 승부차기가 남았지만 막시가 나가자고 재촉했다. “끝까지 안 보고?” “승부차기는 진짜 축구가 아냐!” 실은 승패가 갈린 후 관중 사이에 벌어질지 모를 불상사를 염려하는 모양이었다.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는 동안 공 차는 청년들을 만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카메라 소지자 입장 불가로 경기 사진 한장 없지만, 아이들의 노래는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우리는 이겼다, 우리는 졌다, 그러나 우리 모두 즐겁다!”

노동효 (〈남미 히피 로드〉 저자·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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