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12월의 클래식 무비, 소파에 파묻혀 즐겨볼까

한겨레 2022. 12. 1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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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서 편안한 연말 명작부터
포근하고 담담한 휴먼스토리까지
다사다난 2022년 위로하는 영화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제공

다사다난한 해였다고 매년 말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탈도 많고 생각도 많은 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고, 이제는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다. 연말이면 늘 영화관에 크리스마스나 새해 분위기가 느껴지는 영화가 내걸리곤 했지만, 올겨울엔 여전한 코로나19의 영향인지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느낌이다. 대신 영화관이 아니라도 볼 수 있는 다정한 작품들을 추천한다. 이 계절 티브이를 켜면 한 번쯤은 마주치는 클래식한 영화들과 비교적 근작 가운데 골랐다. 몸도 마음도 고생했을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한해를 포근하게 마무리해보자.

클래식은 영원하다

2003년 12월에 개봉한 이후, 해마다 크리스마스면 <러브 액츄얼리>를 보는 사람이 주변에 종종 있다.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19명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낭만적으로 펼쳐진다. 순수한 사랑도 있고, 불륜도 있고, 풋사랑도 있고, 우정 같은 사랑도 있다. 옴니버스는 아니고, 그들의 관계는 미묘하게 이어져 있다. <러브 액츄얼리>를 보고 있으면, 그들 중 누군가의 사랑에 공감하고 빨려들게 된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은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4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다. 연출은 <러브 액츄얼리>가 처음이었지만 로맨틱한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은 이미 최고다. 게다가 휴 그랜트, 리암 니슨, 콜린 퍼스, 로라 리니, 엠마 톰슨, 키이라 나이틀리, 마틴 프리먼 등 멋진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하다.

<러브 액츄얼리>.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거장 헨리 셀릭이 감독을 맡은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1993). 감독은 아니지만 팀 버튼이 오랜 세월 캐릭터와 스토리를 다듬었고 제작도 했으니, ‘팀 버튼’ 브랜드로 손색이 없다. 핼러윈 마을의 상징적인 존재인 해골 잭은 산타클로스가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에 질투를 느낀다. 산타를 납치한 잭은 크리스마스에 산타를 대신해서 공중을 날아 굴뚝으로 침입해 선물을 남긴다. 악의보다는 선의에 가깝고, 자신도 사랑받고 싶다는 순진한 마음이었지만 무서운 외양과 기괴한 선물에 사람들은 경악한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은 비정상의 존재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고심하며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귀엽게 보여준다. 30년이 지났어도 전혀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없는 유쾌한 작품이다.

올해 <탑건:매버릭>으로 여전히 최고의 스타임을 과시한 배우 톰 크루즈. <레인맨>, <칵테일> 등이 나온 1980년대 후반부터 스타였으니, 30년이 넘었다. 키가 작은 것 말고는 단점을 찾기 힘들었던 톰에게도, <제리 맥과이어>(1997)는 그야말로 만루 홈런이었다. 오만하고 야심 찬 스포츠 에이전트가 한순간에 몰락했다가 다시 일어서면서 보여주는 인간적인 매력은 톰의 배우로서 능력을 다시 보게 했다. 눈앞의 이익보다는 선수들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 제리는 직장을 잃고, 연인에게도 차인다. 절친했던 동료들도 모두 등을 돌린다. 싱글맘인 도로시만이 제리를 지지하며 회사를 그만둔다. 다들 자신의 이익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요즘 시대라면 제리는 당연히 낙오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리는 도로시와 함께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간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얻는 결말은 할리우드의 법칙이지만 <제리 맥과이어>는 대단한 감동을 안겨준다. 가장 단순한 믿음이 결국 인생을 바꾸는 진리가 된다.

<제리 맥과이어>. 피터팬픽쳐스 제공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레너드 번스타인의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1961년 영화로도 유명하다. 로버트 와이즈가 연출하고, 나탈리 우드가 출연했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역동적인 뮤지컬 장면과 로맨틱한 노래들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슬럼가 젊은이들의 갈등과 비극조차도 선진국 미국의 멋진 이야기로 여겨졌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2021년 연출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1950년대 후반, 뉴욕 맨해튼의 슬럼가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유럽 출신 백인 십대 갱단인 제트와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히스패닉 십대 갱단 샤크는 경쟁 관계에 있다. 양 집단에 속한 토니와 마리아는 사랑에 빠진다. 스펙터클한 영화를 잘 만들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는 춤과 노래의 조화가 탁월하고,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뛰어나다. 소수자 혐오, 인종갈등, 개발만능주의 등 1950년대의 갈등과 문제는 70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았다. 스필버그는 1961년 작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보며 자신이 느낀 흥분을 재현하기 위해 리메이크에 도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만족스럽다. 관객도 그 흥분에 동참하게 된다.

다시 새로운 해가 뜨니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걸어도 걸어도> 등 담담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가족 이야기를 들려줬다.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도 한 걸음씩 쌓아가며 이루는 가족의 이야기다. 바닷가 마을에 사는 세 자매에게 불륜으로 떠나간 아버지의 부고가 전해진다. 이미 엄마도 죽었고, 고아가 된 배다른 동생을 가족으로 맞이한다. 네 자매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리며,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단단해지고 풍성해지는지 아름답게 풀어낸다. 연말에 가족과 함께 보면 아주 좋을 영화다. 원작인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는 더욱 좋다. 영화를 보고 나서 단점은, 배경인 가마쿠라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직접 가고 싶어진다는 것 정도.

<바닷마을 다이어리>. 티캐스트 제공
<어나더 라운드>. 엣나인필름 제공

연말이면 술이 빠질 수 없다. 송년회도 많고, 오랜만에 보는 지인도 많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적당하면 약이고 과하면 독이다. 당연한 이야기를, 장중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어나더 라운드>(2022)다. 덴마크의 고등학교 교사 마르틴은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내와 아들 둘과 큰 문제는 없지만 덤덤하고, 직장에서는 무기력하다. 그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인간의 혈중 알코올은 늘 부족하고 0.05%가 되면 창의적이고 활발하게 된다는 학설을 듣는다. 마르틴이 실천해 보았더니 수업시간에 열정적이고 창의적이 되어 학생들이 열광하고, 가족과의 관계도 적극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이 되어 일도, 가정도 문제가 생긴다.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의 방식은 심오하다. 인생에서 희망과 절망이 늘 교차하는 것처럼, 술이 주는 행복과 절망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술이 아니라, 술을 마시는 나 자신이다. 누군가는 술을 못 이겨 스스로 추락하고, 누군가는 돌아와 소중한 것을 찾게 된다. 어떤 운명이 당신의 앞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지금 선택하는 길에 따라 달라질 뿐. <어나더 라운드>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지옥 같은 해를 보냈다 해도 다시 새로운 해를 맞을 준비가 될 것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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