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화 많이 난 것 같다”는데...분통 터지는 건 유족과 국민이다 [핫이슈]
서 전 실장은 2020년9월22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대준씨가 북한군 총격으로 숨진 뒤 시신이 불태워진 사실을 알면서도 군 합동참모본부와 해양경찰청 등에 이씨의 피살과 시신 소각을 숨기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해경에 이씨가 실종된 상태에서 수색 중인 것처럼 허위 보도자료를 작성,배포하라고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문 정부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서 전 실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문 전 대통령의 불만이 크다”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의 복심인 윤 의원은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문 전 대통령이 화가 많이 나 있나’라는 진행자의 물음에 “제가 볼 때는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이 서 전 실장 구속 직후 “최고의 북한 전문가이자 (남북간) 신뢰의 자산을 깎아버렸다”며 윤석열 정부와 검찰을 싸잡아 비판한 것도 같은 연장선일 것이다.
윤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헌법과 법률을 초월하는 의미의 통치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데 대해서도 “사실상 언론에 대놓고 수사 지휘를 한 것”이라며 “안하무인”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자신의 측근이 중대한 잘못과 허물을 저질러 구속기소까지 됐다면 이유야 어떻든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도리다.
그런데도 반성과 사과는 커녕 되레 역정을 내고 있다고 하니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살해돼 시신까지 불태워진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당시 문 정부가 김정은의 ‘가짜 평화쇼’에 속아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지켜주지 않고 북한군 만행을 방치한 것이 사실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국기 문란이다.
더구나 문 전 대통령은 서 전 실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전날 검찰을 향해 ‘도를 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내가 당시 국방부와 해양경찰청, 국가정보원의 보고를 직접 듣고 최종 승인했다”고까지 했다.
만일 문 전 대통령의 승인이나 지시에 따라 서 전 실장과 국방부, 국정원, 해경 등이 일제히 ‘월북몰이’에 나선 것이라면 문 전 대통령 또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제는 진실의 선 너머에 있는 문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답을 해야 할 차례다.
피살 3시간 전에 이씨의 북한 해역 표류 사실을 보고받고도 왜 이씨를 구조하지 못했는지, 법원의 ‘자료공개’판결 거부와 대통령기록물 지정을 통해 왜 모든 사실을 숨기려 했는지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친문 인사들은 당시 문 정부의 결정에 대해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 행위”라고 하지만, 억지 주장과 변명에 불과하다.
그런 식의 논리라면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질식시킨 군사정권의 독재와 압제도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미명 아래 정당화될 수 있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서해 피살사건 등을 둘러싼 윤석열 정부의 엄정 대처에 대해 “윤 대통령 존재 자체가 사회적 위협”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는데, 국민보다 문 전 대통령의 신변과 심기를 우선하는 소아병적 행태나 다름없다.
민주당 일각에선 “근거도 없이 문 정부를 적폐수사 대상으로 내몰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또한 적반하장이다.
문 정부는 집권 내내 ‘적폐 청산’ ‘재조산하’를 기치로 내걸고 먼지털이식 수사를 통해 1000여명을 소환 조사하고 200여 명을 구속했다.
그 과정에서 5명은 인간적 모멸감을 견디지 못한 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런 문 정부가 이제 와서 ‘정치보복’ ‘정치탄압’을 외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미국 심리학자 데이비드 와이너는 “권력자는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이들의 견해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지금 문 정권 인사들이 보여주는 행태가 딱 이렇다.
서해 피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분통이 터지는 사람들은 문 정권이 아니라 유족과 다수 국민들이다.
사람의 자아상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듯이, 정권도 거짓으로 국민을 기만한 사실이 드러나면 엄청난 역풍과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제라도 월북자 가족으로 내몰려 ‘명예살인’을 당한 유족들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감수해야 한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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