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CNN 직원입니까?” 글로벌 유명 로고, 국내 패션이 되다
“오~ 찰칵찰칵 코닥 예쁘네, 카메라 필름 사니까 줬어?”
부장이 지나가며 던지는 한마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 말에 회사원 A씨는 기분이 팍 상했다. 그는 올겨울 큰맘 먹고 일명 ‘정해인 패딩’을 장만했다. 로고 디자인도 예쁘고 색감도 좋고 특유의 레트로 느낌이 좋아 나름 거금을 줬는데 필름 사면 딸려오는 굿즈라니, 아무리 ‘패알못’ 상사의 말이지만 흘려듣기 어렵다.
스트리트 패션이 대세가 되며 패션업계에서는 글로벌 브랜드 라이선싱 전략이 한창이다. MZ세대가 많이 모이는 ‘핫플’에 가보면 기자는 아니지만 ‘CNN’ 로고 옷을 입거나 미국 명문대 재학생은 아니지만 ‘Yale’ ‘Georgetown’ 로고 티셔츠를 입고, 또 굿즈가 아닌 ‘빌보드’나 ‘켈로그’ 후드티를 입은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 현지에서 폐간된 잡지 ‘LIFE’, 파산한 항공사 ‘Panam’(팬암)이 국내 의류 브랜드로 부활한 이색적인 풍경도 목격된다.
이는 패션 중견기업들이 비패션 유명 브랜드의 라이선스를 구입해 의류로 확장하는 전략 때문이다. 이 같은 비즈니스의 시작은 십수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패션기업 에프앤에프(F&F)는 미국 메이저리그 ‘MLB’와 글로벌 논픽션 전문채널 ‘디스커버리’의 라이선스를 취득해 출시한 제품으로 높은 매출을 올렸다. 상표 인지도에 힘입은 덕분이다. 지난해에는 증시 상장 패션기업 중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섰다. 특히 MLB코리아는 중국 시장까지 진출해 기록적인 매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물론 미국에는 MLB 구단 30개팀이 속한 MLB협회가 나이키나 뉴에라와 협업해 만드는 공식 굿즈가 따로 있다.
한 의류업계 관계자는 로열티를 주고라도 유명 라이선스를 옷에 붙이는 이유에 대해 “자체 상표로 고품질 제품을 내놓는 것보다 중품질이라도 유명 라이선스를 붙이는 것이 판매량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이름값만큼 장사가 된다’는 말이다.
브랜드 사용 비용은 결코 싸지 않다. 브랜드 라이선싱을 고려했던 한 의류업체 대표는 “라이선스 이용료는 매출의 7% 정도이고, 여기에 브랜드 이용 보장 금액으로 3000만원에서 5000만원가량을 별도 지불하는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단순 이미지 사용인지, 의류에 부착되는 부자재인지 로고 사용 여건에 따라 라이선싱 비용은 천지 차이라고 한다.
라이선싱 대상은 의류 브랜드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밀가루 제조업체 대한제분이 온라인 쇼핑몰과 협업제작한 ‘곰표’ 패딩은 1020세대의 ‘인싸템’으로 환영받았다. 비의류 브랜드로 옷을 출시하는 의외성 전략은 젊은층에 ‘독특해서’ 혹은 ‘재밌어서’ 사랑받는 셀링 포인트가 된다.
추호정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고가의 로열티나 원브랜드에 대한 높은 의존도 등 우려되는 면도 있지만 원브랜드의 핵심 가치와 이미지를 의류 제품으로 연결 짓는 것은 새롭고 창의적이며 흥미로운 시도”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브랜드가 가진 고유한 이미지와 개성을 발굴해 자사가 가진 의류 기획, 생산력과 결합해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수한 사업모델인 셈”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위축된 소비심리 내에서 ‘안전한 소비’를 지향하는 추세이다 보니 소비자는 낯선 브랜드보다는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브랜드에 지갑을 연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제품의 질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자체 브랜드를 키우고 성장시키기보다 이미 유명한 브랜드에 기대는 것이 근본 없어 보인다”는 의견부터 “브랜드 인지도를 보고 적지 않은 가격에 샀지만 품질에서 실망했다”는 소비자들의 온라인 후기도 눈에 띈다. 추 교수는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라이선스 하나만으로 의류사업에 뛰어드는 업체가 최근 우후죽순처럼 늘면서 부정적인 문제가 늘어나고 있다”며 “결국 시장에서 실패하는 사례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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