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야’ 돌아가는 세상, 생산력보다 더 필요한 부패력[책과 삶]

선명수 기자 2022. 12. 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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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의 철학
후지하라 다쓰시 지음·박성관 옮김|사월의책|396쪽|2만3000원
2019년 충남 태안군 소원면 앞바다에서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어선의 모습. 연합뉴스
씨앗의 껍질이 터지며 싹이 나듯
낙엽과 동물의 사체가 양분이 되듯
폐차의 부속들이 새 생명을 얻듯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분해’
인문·생태·철학 넘나들며 조명

생활 쓰레기를 처리할 때 많은 이들이 가장 귀찮아하고 꺼리는 일은 아마도 음식물 쓰레기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설령 우리가 먹다 남긴 음식일지언정, 악취가 나고 형체가 흐물흐물해지며 부패해가는 것들에 사람들은 보통 혐오감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분쇄부터 고온 건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각종 가전제품들도 생산돼 팔리고 있다.

이렇듯 현대사회에서 부패는 꺼림칙한 영역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부패 없이 세상이 돌아갈 수 있을까. 오히려 부패하지 않는 것들이 문제다. 냄새나고 축축한 음식 쓰레기보다 매끈한 페트병을 처리하는 것이 더 쾌적하지만,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수많은 해양 쓰레기가 돼 지구에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일본의 농업사학자 후지하라 다쓰시가 쓴 <분해의 철학>은 자연세계와 인간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지탱하지만 생산과 성장의 관점에서는 도외시됐던 부패와 분해 현상을 조명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가 살던 공공주택에서 일하던 ‘청소 아저씨’에 대한 일화로 시작된다. 청소 아저씨는 주민들이 내다 버린 골판지, 스티로폼 등으로 공룡, 자동차 등 장난감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그래서 주민들의 애정과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건물을 유지하고 보수할 뿐 아니라 ‘쓰레기’로 명명되며 사회적 가치를 박탈당한 것들을 재조립해 그것들의 가치를 ‘연명’하게 한 청소 아저씨로부터 ‘분해의 철학’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그것은 마치 부패해가는 쌀에서 알코올을 산출해가는 미생물과 같은, 혹은 부패를 제어하여 양질의 술을 빚어내는 양조의 장인과 같은, 그런 발효의 담당자들이 하는 일과 같았다.” 저자는 이 책을 자신에게 영감을 준 ‘청소 아저씨’에게 헌정했다.

청소 아저씨가 쓰레기로 장난감을 만들었던 것처럼, 분해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분해는 자연계의 물질 순환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도 기능한다. 낙엽이나 동물의 사체가 미생물에 의해 분해돼 다른 생명에게 양분을 제공하듯, 망가진 자동차 같은 물건들이 폐차장 등에서 분해돼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이런 분해 과정이 없다면, 세상의 폐차들은 거대한 산처럼 쌓여가기만 할 것이다.

현대 문명은 분해의 단계를 축소시켜 버리곤 한다. 기업들은 제품의 수리보다는 새 제품을 사도록 제품의 기능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리는 ‘계획적 진부화’로 소비를 부추긴다. 소비자들은 폐기물을 버릴 뿐 그것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 결과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것 외에는 지구 환경을 이전으로 돌이킬 방법이 없을 정도로 기후변화 문제도 심각해졌다.

저자는 이런 소비주의 사회에서 가려져 있던 ‘분해자’의 역할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분해자’란 “이삭줍기, 넝마주이, 수리점에서부터 폐품 회수, 소나 말의 사체 처리, 쓰레기 수거에 이르기까지, 어떻게든 소재를 재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가공하는 존재”를 지칭한다. “경제사 속에서는 실로 상업 종사자이지만, 지구 역사 속에서는 분명히 분해자”인 이들은 “인간과 그 인간들의 서식처인 지구가 폐기물에 매몰당하지 않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그러나 이들은 생산 중심의 사회에서 탈락된 주변인들로 취급돼 오며 그 역할이 경시돼 왔다. 쓰레기 줍는 사람들의 역사를 다룬 4장 ‘넝마주이 마리아’에서 저자는 역사 속에서 경시되어온 룸펜 프롤레타리아트의 ‘분해자’로서의 역할을 재평가한다. 저자는 에도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넝마주이들의 사회상을 통해 그들이 어떤 점에서 ‘과잉 생산의 분해자’들인지 밝혀낸다.

책이 다루고 있는 ‘분해’의 세계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 토양 세계, 어린아이들의 ‘나무블록 놀이’와 SF작가 카렐 차페크의 소설까지 방대하다. 저자는 철학과 인문학, 생태학을 넘나들며 다양한 분해의 장소들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이 속에서 저자가 주목한 것은 ‘덧셈’과 ‘곱셈’이 아닌, ‘뺄셈’과 ‘나눗셈’의 세계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덧셈과 곱셈의 세계를 살고 있다고 여긴다. (…) 하나 우주가 그러하듯이, 씨앗의 껍질이 터지며 싹이 나듯이, 우리가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도 파열의 과정, 즉 분해의 과정 속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 속에서 뭔가가 만들어지는 것도 분해 과정을 우회하거나 딴짓을 하다 보니 생겨나는 것, 즉 분해 과정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전세계는 물론 우리나라 해양쓰레기의 약 80%는 플라스틱 폐기물이다. 강원도 삼척시 해안가로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가 파도에 밀려오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근대 자본주의의 생산과 성장, 소비의 관점에만 갇혀 있을 때 이 방대한 ‘분해의 세계’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이미 분해 생태계의 일부다. 인간이 분해자로서의 역할을 자각하지 못하고 이 생태계로부터 이탈해왔기 때문에 기후변화 등 현재의 위기가 초래됐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저자는 이 위기의 시대에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생산력이 아니라 ‘부패력’이라고 말한다.

“가장 위험한 세계는 아무것도 썩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새로운 질서인 ‘제국’에 대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논의를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생산력이 아니라 부패력을, 구축력이 아니라 분해력을 드높인다. 그것이 ‘제국’을 와해시킨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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