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겨울은 견딜 만했니

한겨레 2022. 12. 10.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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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김용규의 숲과 지혜]

필자 김용규 교장. 본인 제공

앞의 글을 통해 우리는 숲의 생명을 대하는 새로운 시선을 얻었다. 그것은 생명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에 비해 훨씬 깊고 두텁다. 새 시선은 통상 야생국화 ‘산국’을 꽃차로 만들기에 좋은 꽃 정도로 바라보던 관점을 넘어, 그 꽃 한 송이가 따사로운 봄날이 아닌 시린 서릿발을 기다려 피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을 품고 있는 꽃임을 헤아리게 한다. 우리가 나 아닌 존재들을 단면적이고 압축적인 시선으로 파악하는 방식을 거두고 조금만 더 나아가 입체적으로 두텁게 마주하는 마음의 눈을 열면 삶이 한결 평화롭고 풍요로울 수 있다. 그 시선은 타자 역시 나와 다르지 않은 구석을 지닌 존재임을 알게 하고, 그래서 자연스레 연민과 자비로 나인 듯 나 아닌 존재들을, 혹은 나 아닌 듯 나인 존재들을 대하게 한다. 누군가의 혹은 무엇인가의 더 깊은 사연과 배경을 살피는 일은 얼핏 번거롭고 낭비적일 것 같지만, 실은 우리 영혼이 아직 접촉하지 못한 더 큰 부분과 만나도록 돕는다. 나 중심의 시선으로부터 생명 중심의 시선으로 이동할 때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자아가 지닌 좁은 틀을 넘어 더불어 존재하는 것들과의 조화를 찾아가는 품 너른 지점으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불화의 발화지점을 만나야 했던 내 삶에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러한 시선의 이동이 있고나서부터였다. 나 아닌 다른 존재들이 지닌 사연과 배경을 헤아릴 수 있는 눈의 열림! 평화의 단초는 거기에 있었다.

‘냉이’ 하면 떠오르는 것

당신에게는 저런 시선이 아직은 낯설게 느껴질까 싶어서, 앞서 든 산국 하나의 예로는 아직 부족할까 싶어서, 지금부터 우리에게 훨씬 친숙한 또 다른 생명 하나의 사연을 소개함으로써 이야기를 더 나아가보려 한다. 이 풀은 너무나도 흔하니까, 그리고 어느 집에서건 봄철에는 그 흔한 풀을 밥상에 올리니까 누구라도 그 풀, 냉이를 알 것이다. 냉이는 당신에게 무엇을 떠올리게 하는가? 표로 정리해 보면 대략 이럴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냉이를 좋은 먹거리이거나 ‘곧 봄이 오겠구나’ 짐작케 하는 신호 정도로 연상한다. 혹은 그 특별한 향기에 대한 감각적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위의 표는 두 줄이 비어 있다. 나의 시선은 두 개 정도의 또 다른 무엇을 주시하기 때문이다. 한번 도전해 보라. 냉이에서 무엇을 더 떠올릴 수 있을까.

추가로 떠오르는 게 별로 없다면 나는 그런 당신에게 냉이의 꽃과 열매를 보여주고 싶다. 강연 자리를 통해 경험해 보니 냉이에서 꽃과 열매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숲 언저리와 들판에 서식하는 많은 식물들의 거대한 사회 스케일에서 보면 냉이는 아주 보잘 것 없이 작은 풀이니까. 하지만 그 작은 풀 냉이 역시 꽃을 피운다. 그것도 다른 식물들에 비해 매우 이른 때에 제 꽃을 피우고 속히 열매를 맺는다. 냉이는 왜 그렇게 이른 때에 피고 속히 질까? 그 이유는 냉이 역시 제 나름 감당하고 극복해야 할 삶의 숙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조금 더 집중하여 읽어보기를 권한다.

냉이가 그토록 일찍 꽃 피는 사연과 배경

봄나물 냉이가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냉이를 언제 캐러 가던가? 봄이 상대적으로 일찍 찾아오는 남쪽지방과 그보다는 조금 더 늦게 찾아오는 우리 중부지방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사람들은 보통 봄의 초입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겨울의 끝자락이라 불러야 할지 모호한 그 즈음에 냉이를 캐러 간다. 그 시기를 대략으로 표현하자면 한낮에는 볕이 따사롭지만, 밤에는 여전히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때이다. 들에는 눈이 다 녹았지만, 산 그림자 짙은 공간에는 더러 쌓인 눈의 흔적이 남은 때이다. 개울물의 한복판은 얼음이 지워졌지만, 가장자리에는 아직도 약간의 얼음이 남아 낮에는 녹고 밤에는 살짝 얼기를 반복하는 때이다.

그렇다면 냉이는 언제 처음 제 싹(뿌리잎)을 틔워놓았던 것일까? 갑자기 발아한 것은 아닐 테니 언제 처음 발아해 뿌리잎을 만들어 둔 것일까? 이렇게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겨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아니다. 우리가 이 이른 때에 만나는 냉이는 이미 지난 가을에 제 싹을 틔워놓은 녀석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냉이는 시월이 되면 로제트(rosette) 형태의 뿌리잎을 완벽하게 갖춘 상태가 된다. 따라서 이 냉이는 뒤이어 찾아오는 상강지절의 서릿발을 모두 견뎌내야 한다. 곧이어 쏟아지는 차디찬 눈보라, 그 혹독한 겨울 추위 역시 이겨내야 한다. 사람들이 이른 봄날 캐먹는 냉이는 모두 그 시린 날들을 견뎌낸 눈물겨운 풀인 것이다. (참고로 이런 방식의 생활사를 가진 식물을 ‘해넘이 한해살이’ 식물이라고 한다. 물론 조건이 맞는 곳에서는 여름을 중심으로 사는 냉이도 만날 수 있는데 이런 생활사를 가진 식물을 ‘여름형 한해살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여름을 사는 냉이는 겨울을 건너는 냉이보다는 흔하지 않다. 요컨대 냉이는 한해살이 풀이지만, 두 가지 방식의 ‘생명환’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들여다보고 있는 냉이는 우리가 이른 봄 흔하게 만나는, 반드시 겨울을 통과하는 ‘해넘이 한해살이’의 냉이이다.)

시월에 촬영한 냉이의 뿌리잎. 김용규 교장 제공

그렇다면 가을에 발아하는 냉이는 왜 굳이 서릿발을 견디고 북풍한설과 동토(凍土)의 시절을 견디는 ‘해넘이 한해살이’의 생활사를 갖게 되었을까? 차라리 완연한 봄날을 골라 온기 가득하고 포슬포슬해진 땅에서 발아하는 것이 사는 데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더 편할 것 같은 삶이 아닌, 고난 가득한 날들을 건너며 꽃 피는 냉이의 이 신비로운 생활사의 배경과 사연은 무엇일까? 냉이의 사연 역시 생명 모두가 품고 있는 그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자신의 삶이 품고 있는 절박함에서 비롯한다.

냉이의 절박함을 들여다보자. 알다시피 냉이는 키 작은 풀이다. 다른 식물과 높이를 다투기 어려울 만큼 낮은 키로 자라는 냉이에게는 빛의 조건이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땅이 머금고 있는 양분도 적당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 조건, 혹은 자기 특성 때문에 냉이가 주로 살기를 선호하는 땅은 밭이나 밭두렁, 논두렁, 혹은 그와 비슷한 조건의 공터나 길가 등 양지바른 땅이다. 냉이가 사는 땅은 일반적으로 양분이 적당하고 수분 조건도 적습(適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밭의 경우에는 작물의 수확이 끝난 뒤부터 다시 농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햇빛도 넉넉하다. 따라서 키 작은 풀인 냉이가 살기에 참 알맞은 서식지가 밭과 그 주변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살기에 좋은 터를 어찌 냉이만 선호하겠는가. 당연히 다른 풀들도 밭과 그 주변이라는 좋은 서식지를 호시탐탐 노린다. 경작하던 텃밭을 묵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많은 풀들이 순식간에 그 빈 공간을 다퉈 차지하며 돋아나는지. 식물들 중에는 인간의 경작지와 그 주변을 제 집(oikos, 서식지)으로 삼아 살아남는 진화를 거듭해 온 풀들이 있다. 그중에 냉이와 비슷한 높이로 자라는 풀로는 민들레나 꽃다지, 점나도나물, 보리뺑이, 봄맞이꽃, 꽂받이 등 수많은 풀들이 있다. 한편 냉이보다 훨씬 키 큰 풀들도 냉이가 좋아하는 서식지를 선호한다. 그중 우리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풀로는 망초나 개망초, 쑥 등이 있다. 냉이와 같은 서식지를 다투는 키 큰 풀들은 허리높이로부터 어른의 키 높이를 능가할 정도 까지도 자란다. 바로 이 지점에서 냉이의 절박함이 발생한다. 비슷한 크기로 자라는 풀들은 서로 햇빛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냉이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높게 자라는 풀들은 냉이를 완전히 가리게 된다. 따라서 냉이는 그들보다 먼저 줄기를 키우고 꽃을 피워 신속하게 열매를 맺어야 한다. 뒤이어 키 큰 풀들이 쑥쑥 자랄 때쯤에는 이제 맺어놓은 열매를 씨앗으로 지켜냄으로써 자신의 종 보존을 지켜낸다. 물론 망초나 개망초 같은 풀도 ‘해넘이 한해살이’의 생활사를 지니고 있고 쑥은 ‘여러해살이풀’이지만, 냉이는 무조건 그들보다 빨리 솟구쳐 올라 재빠르게 결실을 맺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종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냉이의 ‘사는 꼴(生態)’이 이러하고, 그 배경과 사연이 저러하다.

이른 봄에 촬영한 냉이의 꽃과 열매. 주변의 쑥보다 먼저 자라 이미 결실까지 맺었다. 김용규 교장 제공

삶을 촉촉하게 해줄 새로운 시선

자, 이제 다시 위의 표를 데려와 비워두었던 칸을 채워보자.

우리는 이제 냉이의 생활사를 이해하고, 그의 절박한 사연과 배경까지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그저 나물로 바라보던 생활인 또는 잡식 생명체로서의 눈은 확실히 깊어지고 확장된다. 냉이를 캐려다가도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너의 겨울은 견딜 만했니?”라고 물을 수 있다면 이제 그의 눈은 시인의 눈과 다르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돈 한푼 들이지 않고도 삶은 그렇게 촉촉해질 수 있는 것이다.

초봄의 숲. 김용규 교장 제공

삶을 평화로 이끄는 시선으로 도약하기

일단 이렇게 시선의 도약을 이뤄내면 그것은 인간의 다른 실존적 사안들로도 확장될 수 있다. 역시 표를 활용하여 도전해보자.

초봄의 숲 식물들. 김용규 교장 제공

어떤가? 표를 보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감이 오는가?

당신에게 밥은 무엇인가? 무엇을 연상하며 그것을 어떻게 대하는가? 지금 하는 일(또는 직장)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자식이나 부모를 어떤 시선으로 대하고 있는가? 섹스는? 그리고 신(神)은? 표의 위쪽 칸에 채워놓은 단어들은 여러 강연을 통해 대중들로부터 얻은 대답을 축약해 놓은 단어들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저렇게 답했다. 누군가가 밥을 에너지 수준으로 대할 때, 누군가는 밥 앞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가족을 떠올린다고 했다. 일에 대해서 그랬다. 사람들 대개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노출했고, 몇몇은 승진과 성취 등을 말했다. 자식을 언급하자 많은 젊은 엄마들은 깊은 애착을 표현했고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섹스는 가장 다채로운 대답이 쏟아졌는데 어떤 장난기 어린 중년 사내는 제일 먼저 ‘배설’이라고 말했다. 그 옆의 누군가는 ‘불륜’, ‘쾌락’ 같은 단어를 내뱉었고 대다수는 ‘쾌락’으로 수렴했다. 반대로 중장년 여성층에게서는 ‘의무’와 ‘고통’이라는 답도 심심찮게 나왔다. 한편 30대의 남녀에게서는 ‘임신’, ‘사랑’, ‘소통’ 같은 단어들이 빈번했다. ‘신’이라는 단어를 놓고는 ‘유/무’를 말하는 이들이 많았고, ‘구원’을 힘주어 선명하게 말하는 이들도 자리마다 늘 있었다.

사진 픽사베이

나는 일부러 표의 아래쪽 몇 칸에는 물음표를 달아두었다. 사람들로부터 듣지 못한 답으로, 멋진 답으로 채워지길 기대하는 영역이다. 가능하다면 당신이 채워주길 바라는 영역이기도 하다. 삶을 한결 촉촉하고 풍요롭게 할 새로운 시선으로 도약하여 빈칸을 채워봐 주기를 바란다. 물론 저 빈 칸들에 대한 나의 단어들은 따로 있다. 예컨대 나는 밥을 먹으며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하고 느낀다. 이를테면 ‘평화’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앞에서 늘 평화를 느낀다.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먹을 때마다 그러하다. 나머지 빈칸에 대한 나의 단어들은 이 글의 전체 연재를 마무리 할 즈음, 즉 몇 꼭지의 결론적인 글들을 써내려 갈 즈음 수줍게 공개해 보겠다. 오늘은 다만 당신의 대답, 당신의 단어들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김용규(여우숲 생명학교 교장, happyforest@empas.com)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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