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면]2701호 비밀이 가리키는 곳, 정말 축구협회는 모를까
오광춘 기자 2022. 12. 10. 07:02
처음엔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습니다. 선수 개인 트레이너가 어떻게 월드컵 기간 축구대표팀과 함께할 수 있는지 의아했습니다. 더구나 이 개인 트레이너가 대표팀 내부의 문제점이라며 쓴소리를 쏟아내기까지 했습니다. '이래도 괜찮나' '이게 맞나' 헷갈렸습니다.
그러나 한장의 사진이 많은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18명의 선수가 개인 트레이너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선수가 대표팀 호텔에 따로 예약한 방, 2701호는 선수들이 따로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대표팀 선수 관리 프로토콜에 포함되지 않은 별도의, 비공식의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선수들은 몸의 피로를 풀고, 다친 근육을 매만졌습니다. 사진이 맞는다면 26명의 국가대표 중 18명, 즉 절반이 넘는 선수들이 개인 트레이너의 손길을 선택했습니다.
선수 트레이너는 소셜미디어에 거친 감정까지 토해냈습니다. 이번 월드컵 기간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대표팀의 공식라인인 의무팀과 마찰도 암시했습니다. 선수들의 지지도 얻었습니다. 개인 트레이너의 소셜미디어 속 사진과 쓴소리에 '좋아요'를 누른 선수들이 여럿입니다. 손흥민부터 정우영 김진수 황의조 조규성 등도 그렇고, 대표팀을 은퇴한 기성용 이근호까지 가세했습니다.
축구협회는 대표팀이 귀국하자마자 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한 개인 트레이너가 겪은 '비상식적인 일'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개인 트레이너가 선수단과 동행하는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논의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비밀의 공간 2701호에선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이번 월드컵은 시작부터 선수 몸 관리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황희찬이 소집할 때부터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렸고, 김민재가 우루과이전에서 종아리를 다친 게 컸죠. 의무팀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기존 선수들도 그렇고, 부상 선수들도 그렇고 대부분 개인 트레이너에게 의존했죠. 결국 권한과 책임의 범위를 두고 공방이 일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선수들 역시 이 사이에서 반발했던 정황이 엿보입니다.
이런 마찰은 일찌감치 예고됐습니다. 그러나 대응은 늦었습니다. 축구협회는 갈등을 조정할 시간이 충분했지만 방치했습니다. 1, 2년 전부터 주요 선수들은 대표팀 소집 시 개인 트레이너의 동행을 허락해 주고, 어떤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결국 월드컵이란 큰 무대에서 그 골이 깊어지고 폭발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생각과 함께 16강이란 성취에 묻힐 뻔했습니다.
축구는 선수 관리 영역에서도 보다 섬세해지고 있습니다. 선수들의 건강권에 대한 목소리도 커집니다.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잘 관리할 수 있는 개인 트레이너에 대한 소구도 여기서 생겨납니다. 선수들이 자신의 건강을 직접 챙기려는 적극적인 '자기 관리', 이 또한 시대적 추세입니다.
거친 목소리를 쏟아낸 개인 트레이너의 '다음'에 모두가 주목합니다. 축구협회는 개인 트레이너가 많은 일을 하고서 홀대받았다 판단했다고 해석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메신저'보다 '메시지'를 봐야 할 때입니다. 2701호의 비밀은 개인 트레이너만 알고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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