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美가 안팔지?" 사우디 유혹하는 中 전략…美도 경악했다 [영화로운 세계]

임주리 입력 2022. 12. 10. 05:01 수정 2022. 12. 1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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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사전 > 임주리의 영화로운 세계

국제 뉴스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곤 합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낯선 땅의 사람들에게 금세 감정 이입이 되죠. 영화를 통해 더이상 ‘먼 나라’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국제 뉴스를 전합니다.

“도대체 국왕은 언제 뵐 수 있냐고요. 네?” 미국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온 세일즈맨 앨런(톰 행크스)은 숨이 넘어갈 지경입니다.

영화 '홀로그램 포 더 킹'

더워 죽겠는데 에어컨도 안 나오는 건물에서 하염없이 국왕을 기다리는 처지거든요. 홀로그램 화상회의 장비를 팔아야 하는데 도무지 되는 일이 없습니다. 겨우 국왕을 만나 홀로그램 기술을 선보였는데, 아뿔싸…. ‘이 나라’가 반값에 제안했답니다. 영화 ‘홀로그램 포 더 킹’의 주인공 앨런은 ‘이 나라’라면 치를 떱니다.

또 다른 영화 '시리아나' 속 중동의 어느 산유국. 개혁파 왕자가 분노를 터뜨립니다. “국회를 만들고 여자들에게 참정권을 주고 조국을 재건하고 싶네. 이미 미국에 진 빚은 다 갚았어. 그런데 미국 정유사가 아닌 ‘이 나라’와 계약했다고 날 테러분자로 몰더군! 계약을 당장 철회하란 거야.” 미국에선 왕자를 제거하라며 CIA 요원을 보낸 참이죠.

영화 '시리아나'

두 작품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이 나라’. 바로 중국입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의 오랜 우방국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았습니다. 중동에서 점차 발을 빼려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이 지역과 부쩍 밀착하고 있는데요. 최근 석유 생산량을 두고 미국과 갈등을 빚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마치 보란 듯, 성대하게 시 주석을 맞았습니다. 시 주석은 ‘통 큰 선물’로 1100억 사우디리얄(약 38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협정각서를 주고 받았고요.

중국이 중동의 맹주 사우디에 공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석유입니다. 사우디산 석유의 4분의 1을 중국이 구매하죠. 기축통화국을 꿈꾸는 중국이 원유를 인민폐(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게 된다면 금상첨화고요. 사우디는 중국의 ‘해상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길목에 있기도 하죠.
지난 9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제1차 중국-아랍 정상회의. 신화=연합뉴스


◇미국이 안 파는 무기 팔며 러브콜 보내는 중국


그런데 중국이 사우디에 러브콜을 보내며 내미는 ‘당근’ 중, 눈에 띄진 않지만 주목해야 할 게 있습니다. 바로 무기입니다.

사실 숫자만 보면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우디가 수입하는 무기의 약 60%는 미국산이거든요. 중국산은 1%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면을 봐야 합니다. 중국은 군사용 무인기(드론), 탄도미사일 등 미국이 까다롭게 굴며 안 파는 걸 제공하거든요. ‘틈새시장’을 공략한 덕에 점점 더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2016~2020년 판매량이 2011~2015년 대비 5배 가까이 증가했죠.

그뿐 아닙니다. 무기 제조 기술도 알려줍니다. 지난해 12월 미국 정보기관들은 위성사진을 분석해 사우디가 중국의 도움으로 비밀리에 탄도미사일을 만들고 있단 걸 확인했죠(CNN). 미국은 아연실색했지만 협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엔 드론 공동개발ㆍ제작 계약을 체결했고요.

지난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났다. AFP=연합뉴스

결정적으로, 중국 무기는 미국산보다 쌉니다.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미국-사우디 간 갈등과 관계없이 사우디의 중국 무기 수입은 꾸준히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죠(이스라엘 싱크탱크 국가안보연구소). 앞서 영화 ‘홀로그램 포 더 킹’에서 앨런이 뒤통수를 세게 맞은 이유, 기억하시죠? 중국산이 ‘반값’이라잖아요.


◇공식 외교관계 맺기도 전에 무기 거래로 손잡아


흥미로운 건 중국과 사우디 관계의 시작도 ‘무기’였단 겁니다.

때는 1982년. 사우디 왕좌에 오른 파드 국왕(재임 1982~2005)은 강력한 무기가 절실했습니다. 이스라엘-레바논, 이란-이라크 전쟁 등으로 중동이 혼란스러웠거든요. 문제는 우방국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은 절대 못 준다며 정색을 했단 겁니다. 미국의 또 다른 우방국 이스라엘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단 이유에서였죠.

지난 7월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모습. AFP=연합뉴스

고민하던 파드는 1985년 중국과 접촉합니다. 이때다 싶었던 중국은 비밀리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팔죠. 심지어 공식 외교관계를 맺기도 전에요. 미국은 나중에 알고 경악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죠. 사우디는 결국 1990년, 대만과 관계를 끊고 중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합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양국이 군사훈련 등 안보 협력에서도 더 긴밀해질 거라 분석합니다. 미국에만 기대지 않으려는 사우디도 적극적으로 나설 거란 거죠.

미국도 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셰일 혁명으로 중동 의존도가 낮아졌다지만, 사우디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우방국이거든요. "중국이 주요 무기 공급자가 된다면, 중국은 언젠가 미국과 갈등이 발생했을 때 사우디에 미국 석유 수출을 중단하라 압박할 수 있다"(포린폴리시)는 우려도 나옵니다. 미 언론들은 “사우디에 더 강한 ‘안보’ 믿음을 줘야 한다” “중국이 사우디 적국 이란과도 협력하고 있단 사실을 주지시켜라” 등의 여러 조언을 쏟아내고 있죠.

영화 '홀로그램 포 더 킹'

앞서 말한 미국 영화 두 편은 분위기가 정반대지만, 중동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입장이 확연히 드러난단 점에선 통합니다. 그게 홀로그램이든 석유든 중국에 뺏길 순 없단 거죠. 무기라고 다를 리가요.

재미있는 건, “중국이 만든대” “중국인이 한대”란 대사는 많이 나오는데 정작 중국 배우는 찾아보기 힘들단 겁니다.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에 단역으로 나왔다 퇴장하는 식이거든요. 어쩌면 아직 중동에선 미국이 ‘주인공’이고 중국은 ‘조연’이란 시선의 반영이겠죠. 그러나 그 조연을 주인공이 무척 신경 쓰고 있단 게 중요합니다. 미국, 중국 그리고 석유.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는 우리 역시 중국-사우디 관계를 유심히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용어사전 > 영화 ‘홀로그램 포 더 킹’

워쇼스키 자매 감독과 함께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연출한 독일 감독 톰 티크베어가 2016년 발표한 작품. 할리우드 톱스타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았다. 사우디가 배경이지만 주요 촬영지는 모로코로 알려졌다.

「 용어사전 > 영화 '시리아나'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 아만다 피트 등 호화 출연진을 자랑하는 작품으로 스티븐 개건 감독이 2005년 내놨다. 조지 클루니가 이 영화로 제7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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