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인류애를 충전시켜주는 다정함
얼마 전 동네에서 줍깅(쓰레기를 주우며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운동)에 참여했던 한 시민이 소감으로 ‘인류애를 잃어버리면서 동시에 회복하는 과정’이었다는 인상적인 말씀을 들려주셨다. 함부로 버린 꽁초와 담뱃갑, 먹다 만 음료수가 담긴 일회용 컵이 모두 뒤섞여 있는 골목 귀퉁이를 보고 있자면 분노가 치솟다가도,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쓰레기를 줍겠다고 소중한 주말을 길거리에서 보내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경험은 감동적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안에 인류애를 쌓았다 잃었다 하곤 한다.
어느 날 아침, 요즘 날이 많이 추우니 유아용 통학버스 타는 곳을 단지의 지하주차장으로 옮기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물론 통학버스가 지하주차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크기인지, 추위로부터 보호하려다 혹시 출퇴근하는 차량과 아이들이 마주칠 위험은 없는지, 혹시 전체적인 운행 스케줄에 영향은 없는지 따져볼 것들이 많아 쉬운 결정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가장 처음 달린 반대의 내용은 왜 외부 사람들에게 우리 시설을 제공하느냐, 그리고 사소한 문제 말고 현실적이고 경제적으로 행동하자는 댓글이었다. 그리고 그 댓글은 여러 공감과 지지를 받았다. 뭔가 아찔해지는 느낌이었다. 현실적으로 아이들과 양육자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인지 여부보다, 이것이 경제적 선택인가로 토론의 방향이 흘러가는 것이 놀라웠다. 왜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이렇게나 야박할까. 둑이 터진 것처럼 내 안의 인류애가 또 새어나가 버렸다. 우울한 아침이었다.
심지어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려는데 하필 그날은 교통카드 충전 자판기조차 영 말을 듣지 않았다. 자판기는 지폐를 계속 뱉어내고 안 되겠다 싶어 돌아서려는 순간. 반쯤 엉거주춤한 자세로 날 주시하고 계신 역무원분을 발견했다. 이리 와보란 신호의 고갯짓과 명쾌한 눈빛은 진짜로 좀 비장해보이기까지 했다. 역사로 다가가자 기계적으로 카드를 가져다 충전기에 올리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금액을 입력하시는 손가락을 보며 뭔가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자판기가 잘 작동하지 않아 시간을 허투루 쓰게 된 나를 위해 최대한 빠른 일처리를 해주고 싶은 역무원분의 따뜻한 마음이 다급한 손짓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꾸역꾸역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 이 출근길을 사실 누군가가 응원해주고 도와준다고 생각하니 발길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분이 벌어준 시간은 물리적으로 고작 몇초에 불과했겠지만 내가 더 크게 얻은 것은 낯선 이가 건넨 다정한 배려였다. 덕분에 아침에 온라인에서 잃어버린 인류애가 다시 충전되었다. 생각해보면 정말 타인 혹은 다른 존재를 위해 마음을 써주는 사람은 늘 곳곳에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했다. 친절하고 협조적인 마음씀씀이로 친구를 늘려온 것이 인류가 이만큼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라니, 우리 모두 함께 더 잘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어려움에 공감해주는 다정한 사람이 되어주면 좋겠다. 나와 누군가를 구분짓기보다 공감의 대상을 늘리는 편이 결국 우리의 마음과 생을 더 안전하고 편하게 만드니 말이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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