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아니면 말고’ 손 놓을 땐가
특히 그동안 단기자금시장의 냉기를 불러온 기업어음(CP) 금리 상승세가 멈췄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CDS 프리미엄(5년물)은 1일 기준 49bp(1bp=0.01%포인트)로 9월 22일(45bp) 이후 2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50 아래로 내려갔다. 여기에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이 방역 통제를 풀고 본격적인 경제 활동 재개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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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율, CDS 등 각종 지표 개선 불구
‘데드캣 바운스’에 그칠 가능성도
」
여러 지표가 다행히 안정적인 흐름으로 전환했지만, 시장에서는 ‘데드캣 바운스’(dead cat bounce·일시적 회복세)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한국뿐 아니라 주요국의 경제 지표가 개선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위기가 끝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 세계대전망’에서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영구적 위기)는 내년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요약한 합성어”라고 했다. 특별한 호재가 없는 한국경제도 짧게는 상반기, 길게는 연말까지 어두운 터널을 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가 2%대에서 1%대로 낮아지더니 급기야 마이너스 성장 전망까지 나왔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을 마이너스 1.3%로 전망했다. 한국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은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0.7%)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5.1%), 그리고 2차 오일 쇼크 때인 1980년(-1.6%) 세 차례뿐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에도 한국경제는 0.8% 성장했다. 노무라증권은 주택 가격 하락과 금융 여건 악화에 따른 소비감소를 마이너스 성장의 배경으로 꼽았다. 3대 경제활동 가운데 소비감소에 주목한 것인데, 사실 생산·투자도 녹록지 않다. 우리의 주력산업인 반도체업황이 꺾이면서 11월 수출은 2개월 연속 감소했고, 무역수지는 8개월 연속 적자다.
투자도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반도체 기업의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SK하이닉스는 내년 설비투자를 올해의 절반 수준인 10조원 안팎으로 삭감하기로 했다. 기업 재고자산이 180조원(9월 말 기준)을 넘는 등 사상 최고로 불어난 것도 신규 투자를 줄이게 하는 요인이다. 창고에 재고가 쌓여 가는 상황에서 새 설비를 들일 기업이 얼마나 되겠나.
상황이 이런데도 당국과 국회는 느긋해 보인다. 국회는 2022년도 예산안뿐 아니라 법인세법, 반도체특별법 등 국가 경제를 좌우할 핵심 법안에 대한 논의를 수개월째 미루고 있다. 국민의힘은 정부 법안에 대한 야당의 반발을 두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버티면서 ‘대선 불복’이라고 날을 세우지만, 이제는 야당 탓만 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6개월 동안 정부가 발의한 법안 77건 가운데 단 1건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경제 분야를 비롯해 윤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각종 정책이 언제 시행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는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로, 정부와 여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조사에서 부정 평가(59%) 첫 손에 ‘독단적·일방적, 소통 미흡’이 꼽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야당과 소통하고 협의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건 어쩌면 절실함이 덜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한숨 돌릴 때가 아니라 더 긴장해야 할 때다. 진짜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고,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현금을 확보하는 등 진짜 위기에 대응할 준비에 나섰다. 이제 정부와 여당이 준비해야 할 때다.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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