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파일] 족보 꼬임 방지법

김나윤 2022. 12. 10.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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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정치부문 기자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다들 한 해를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국회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입법부가 방치해 놓은 법안들을 해가 지나가기 전 처리하기 위해 여야가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8일 하루 동안 본회의를 통과한 안건만 해도 법률안 93건을 포함해 총 107건에 이를 정도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되는 법은 단연 ‘만(滿) 나이’ 관련 법안이다. 민법과 행정기본법 개정안을 통해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되는 한국식 나이 셈법인 ‘세는 나이’와 현재 연도에서 출생 연도를 뺀 ‘연 나이’ 표기 대신 국제 표준 셈법인 ‘만 나이’로 통일하여 사용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내년 6월부터 ‘만 나이’가 일괄적으로 적용되면 사람들끼리 매번 나이에 관해 묻고 답할 때마다 ‘한국 나이로…’ 또는 ‘만으로…’라는 식의 전제조건을 붙여 가며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그동안 연령 혼용으로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불편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코로나19 백신 접종 과정에서 방역 당국이 ‘30세 미만에게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예방접종 미권장’이라고 발표한 것을 두고 한국식 나이인지 만 나이인지 혼선을 빚기도 했다. 노사 협약에서 임금피크제 적용 나이로 규정된 56세에 대해 1심 재판과 대법원이 각각 만 55세와 만 56세로 달리 해석한 사례도 있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온라인상에서는 해외에서 한국인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만으로’를 외치는 장면을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트)으로 만들어 누리꾼들의 공감대를 끌어낸 동영상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만 유일하게 여러 가지 나이를 사용하다 보니 상대방에게 어려 보이고 싶을 경우 ‘만 나이’를 강조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비춘 것이다. 지난해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1~2월에 태어나 학교를 빨리 입학해 동급생보다 한 살 어린 이른바 ‘빠른년생’ 10명 중 4명이 한국식 나이 셈법으로 주변 사람과의 관계 설정이나 서열 정리에서 불편함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빠른년생이란 이유로 이른바 ‘족보 꼬임’ 피해를 주변에 준다는 이유에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나이에 민감한 편이다. 사람을 처음 대면할 때 나이부터 물어보고 나이에 따라 상하 관계를 정리하고 나이가 많은 연장자를 가장 우대해 주기도 한다. 심지어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어려 보인다” “젊어졌다”는 말을 건네며 분위기를 좋게 띄우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세는 나이’를 쓰게 된 계기엔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다. 엄마 배 속에 있는 태아도 하나의 생명이란 점에서 나이를 적용하자는 접근 방식이 대표적이다. 동양권이 서구권보다 뒤늦게 숫자 ‘0’이 정착했기 때문이란 주장도 있고 음력 문화권 속에서 날짜 혼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설명도 있다.

한국 이외의 아시아 문화권 국가들은 일찌감치 ‘세는 나이’를 폐지했다. 중국은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통해 ‘만 나이’만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1900년대 초부터 ‘만 나이’를 써 온 일본은 1950년대엔 아예 ‘세는 나이’를 법으로 사용 금지하도록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말연시 분위기를 틈타 나이 셈법을 하나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종종 제기돼 왔지만 매번 성과 없이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뒤늦게나마 통일된 나이 셈법인 만큼 빠른년생과 비빠른년생 간의 대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김나윤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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