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카스, 연회에 여배우 부른 고관 목도로 두들겨 패

입력 2022. 12. 1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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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55〉
관동군의 전성기는 태평양전쟁 발발 전까지였다. 1940년 가을 펑톈(奉天) 거리의 관동군. [사진 김명호]
관동군과 만주국 경찰이 출자한 만영(주식회사 만주영화협회) 이사장 아마카스 마사히코(甘粕正彦)는 자신의 근면과 성실에 도취한 사람이었다. 직원들을 엄격한 군 지휘관이 부하 다루듯 했다. 두려워하고 복종하지 않는 직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람 쓸 줄 알고 베풀 줄도 알았다. 취임과 동시에 성과는 없고 말만 잘하는 임원들부터 잘라냈다. 관동군은 명절이 임박하면 돼지 도살을 엄금했다. 아마카스는 개의치 않았다. 대형차량을 동원해 농촌에 있는 돼지를 긁어모았다. 만영 내에서 처리해 직원들에게 분배했다. 만주국 정부가 돼지 양육을 금지하자 영내에 돼지 사육장을 만들었다. 만주국 재정을 총괄하던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도 알아서 기었다. 달라기 전에 먼저 갖다 바쳤다. 아마카스는 이 돈을 사적으로 쓰지 않았다. 직원 봉급을 배로 올렸다. 당시 만영 직원의 월수입은 만주국 최고였다.

만주국 재정 총괄 기시도 알아서 기어

형장으로 가기 전 유서를 작성하는 한간. [사진 김명호]
만영 인근에 만주국 대신의 별장이 있었다. 하루는 만영 연기자들이 밤늦도록 야외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신나게 놀았다. 어찌나 시끄럽던지, 경호원들이 달려왔다. 대신의 수면을 방해한다며 호통을 쳤다. 보고를 받은 아마카스는 발끈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대신의 집무실로 갔다. 별장인지 뭔지를 당장 만영에 팔라고 요구했다. 이유도 설명했다. “간부 휴게실이 필요하다.” 대신은 제 명에 죽고 싶었다. 군말은 금물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아마카스가 내미는 매매계약서에 서명했다. 관동군과 만철, 만주국 고관들은 연회에 여배우들을 부르는 관행이 있었다. 아마카스가 시범을 보였다. 여배우가 참석한 만주국 고관 생일 파티에 뒤늦게 나타났다. 고관에게 술 따르는 여배우를 보물단지 모시듯 데리고 나왔다. 이튿날 술잔 받으며 허세부리던 고관을 만영 이사장실로 불렀다. 아마카스의 집무실은 특이했다. 수류탄, 기관총, 박격포 등 온갖 무기가 즐비한 무기고나 다름없었다. 아마카스의 목도가 춤을 췄다.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팬 후 길바닥에 던져버렸다. 이날 이후 죽음을 각오하면 몰라도 어느 누구도 만영의 여배우를 집적대지 못했다.
무죄 판결 받고 일본으로 추방된 야마구치 요시코를 반기는 미군. [사진 김명호]
만주국에서는 일본인이 중국인을 구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아마카스는 영악했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충돌하면 중국인 편을 들었다. 뒤로는 “식민지 국민 다루기가 쉬운 줄 아느냐”며 일본인을 꾸짖었다.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는 중국인에겐 관대하고 은혜를 베풀었다. 문예 서적을 가까이하고 제안이 많은 중국인은 경고를 받았다. 심하면 조사와 경찰의 방문이 계속됐다. 주식(主食) 차별은 다른 기관과 같았다. 만영 연회에서 요리는 같아도 쌀밥은 일본인만 먹었다. 리샹란(李香蘭·이향란)만은 예외였다. 중국인이 먹는 옥수수밥을 먹었다. 특급대우를 받으며 직원 숙소가 아닌 야마토(大和)호텔 객실과 승용차까지 배정받았지만 생활습관은 여전히 중국인이었다.

시키는 일만 잘하는 중국인에겐 관대

훈련 중인 중국 소년병. 긴 호흡과 태양 응시로 일과를 시작했다. [사진 김명호]
일본 패망 후 만주 전역이 들썩거렸다. 아마카스는 평소 즐기던 군복을 벗었다. 일본 전통복장 차림으로 3일간 절식했다. 9년간 사용한 집무실 의자에 앉아 강한 독약을 삼켰다. 빈속이다 보니 주변이 지저분하지 않았다. 철저한 준비에 다들 경탄했다. 한동안 “히틀러, 무솔리니와 동모(同母) 소생 같다”는 말이 나돌았다.

한간(漢奸) 재판에 회부된 리샹란은 애를 먹었다. 자신이 일본인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라고 주장해도 재판관들에게 말이 먹히지 않았다. 훗날 회고록에 이런 내용을 남겼다. “미화 5000달러면 나를 빼주겠다며 접근했던 사람은 내가 안 됐던지 3000달러로 깎아줬다. 나는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중에 돈도 없었다. 리샹란은 과거의 리샹란이 아니다. 이미 그만한 가치가 없다. 지금 일본 여인은 중국 돈 3000원만도 못하다”며 거절했다. 3000원을 거론한 이유가 있었다. 중국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글을 봤기 때문이다. “돼지보다 저렴한 것이 일본여인이다. 돼지 1마리가 3000원이다.”

휴지만도 못한 삼류신문에 리샹란 관련 기사가 줄을 이었다. 몇 가지 소개한다. “리샹란이 중국인으로 확인됐다. 한간은 무조건 총살이다.” “리샹란은 모 장군의 아홉 번째 부인이다. 처형한 척하고 뒤로 빼돌릴 계획이다.” “미군 장교가 리샹란에게 홀딱 반했다. 며칠 전 미군이 주최한 승전국 군인파티에서 리샹란이 노래를 불렀다.” “리샹란은 지금 대만에 있다. 원래 대만 소수민족 추장의 딸과 일본 여인 소생이다.” “원래 러시아 여자다. 관동군의 무장을 해제시킨 소련군이 리샹란을 소련 측에 인계하라고 국민정부에 요구했다.” “호감을 느낀 재판장이 리샹란에게 가짜 일본국적 증명서를 만들어줬다.” “관동군 패잔병들이 리샹란을 구출하기 위해 상하이에 진입했다.” “리샹란은 조선인이다. 부모가 상하이로 오는 중이다.” “전쟁에서 일본군에게 희생된 소년병들의 영전에 리샹란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 이 외에도 많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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