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라도…” 기약 없는 추모, 슬픈 기다림 [이슈&탐사]
폭격을 맞은 듯 거칠게 찢겼던 외벽은 온데간데없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위로 삐죽한 철근들이 사납게 튀어나왔던 자리는 잿빛 천으로 덮였다. 스산한 겨울 하늘 아래로 행인들이 무심하게 오가는 골목은 어딘지 쓸쓸함이 감돌았다. 지난달 23일 오후 1시쯤 찾은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참사 현장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많은 게 사고 전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사고 발생일인 올해 1월 11일로부터 286일째였다. 인근 문구점에 진열된 성탄트리와 산타클로스 모자 정도가 겨울과 함께 그날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저렇게 가려주니 마음이 조금 낫네요.” 10개월여 만에 다시 만난 광주아이파크희생자가족협의회 대표 안정호(45)씨는 사고 현장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이곳을 다시 찾은 게 3개월 만이라고 했다. 안씨는 그날 사고로 합기도 스승이기도 한 매형을 잃었다. 매형은 이 아파트 201동 39층 타설작업 중 그 아래 16개층이 무너져내려 숨진 노동자 6명 중 한 명이다. 입주민 안전을 위한 스프링클러 설치 작업이 그의 역할이었다.
안씨는 매형이 잔해에 묻혀 실종된 그날 이후 여섯 가족을 대표해 건설사 등을 상대로 지금껏 전쟁을 치르다시피해왔다. 그러느라 제대로 애도할 겨를이 없었고 슬픔을 제때 분출하지 못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참사였던 탓에 사고 원인과 책임자 규명은 비교적 빠르게 이뤄졌다. 사고 발생 48일째 합동분향소가 차려지고 정치인들이 앞다퉈 찾아오며 떠들썩하게 장례식도 치렀다. 하지만 그런다고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이 비명횡사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은 이들을 괴롭힌다. 안씨는 장례식 방명록에 먼지가 쌓이도록 펼쳐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곳이 삶의 터전인 유가족은 어쩔 수 없이 참극의 현장을 맴돌며 살고 있었다. 안씨가 운영하는 체육관은 사고 현장에서 불과 2㎞ 떨어져 있다. 집도 근처인 그는 매형이 죽은 자리인 이곳을 지나는 게 힘들어 되도록 먼길로 피해서 다니고 있었다. “현장이 보일 때마다 고개가 돌려지더라고요. 매형한테 미안하니까….” 안씨는 “(사고 당일 퇴근할) 매형을 기다리면서 입고 있었던 패딩도 싹 태워버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가족은 사고 당시 29일간 실종자 구조와 수습을 기다렸던 것처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들은 기약 없는 추모관·추모비 건립 대신 다른 추모 방식을 고민 중이다. 사고 현장에 작은 공원이나 도서관을 지으려던 당초 계획은 철회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 남들에게는 혐오시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재난참사 희생자 대우 방식에 대한 여론이 크게 갈리는 상황에서 사회적 갈등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안씨는 “이곳이 멋지고 좋은 아파트로 다시 지어져 입주민들이 행복하게 살면 그 자체가 저희에겐 추모”라며 “아무도 모를지라도 평범한 나무 한 그루, 벤치 하나, 분수대 하나면 족하다”고 했다.
이들이 추모 방식을 고민하며 더욱 초점을 맞추는 건 장소보다 내용이다. 다른 참사 희생자 가족을 돕고 연대하며 자신들의 트라우마도 이겨내려고 노력 중이었다. 경북 봉화군 아연채굴광산 붕괴사고 10일째였던 지난달 4일 안씨 등은 매몰자 가족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고 싶어 봉화로 출발했다. 구조 작업이 길어질 대로 길어져 생환에 대한 기대가 꺼져갈 때였다. 한참 차를 몰아 안동쯤 갔을 때 작업자 2명이 극적으로 구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하 190m 갱도에 갇힌 가족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모습이 마치 1년 전 저희를 보는 것 같았어요. 생환 소식에 제 일처럼 가슴이 벅차오르더라고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도 이들에게는 더더욱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들 가족은 같은 참사로 제2, 제3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감시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내년 1월 11일 1주기 추도식을 기점으로 삼았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정치인의 판에 박힌 추모사를 듣는 대신 유족이 앞장서 건설현장 안전 강화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 계획이다. 안씨는 “앞으로 6년간 공사를 해야 할 텐데 그날만이라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참사 이후 건설현장 안전기준이 강화된 것처럼 누군가의 희생으로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계속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래야 매형도 하늘나라에서 환히 웃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대형참사 희생자 추모의 의미와 사회적 순기능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사에서 1번 출구로 올라가는 통로 좌우 벽면은 그간 시민들이 애도의 심정을 써 붙여놓고 간 알록달록한 메모지와 편지로 가득했다. 그 아래로 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날 밤 사고가 없었다면 희생자 상당수가 이 길을 걸어내려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지상으로 나오자 출입구를 둘러싼 인도에도 새하얀 국화부터 어느새 말라버린 꽃다발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수북한 꽃들은 참사가 불러온 슬픔의 크기나 무게를 짐작하게 했다.
참사가 벌어지고 한 달 가까이 지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은 적막했다. 평일 낮이어서인지 참사 여파가 남아서인지 인적이 드문 데다 비가 올 듯 날이 흐렸다. 사고 현장인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은 희생자를 추모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간간이 이어졌다. 그들은 애석한 표정으로 벽에 붙은 쪽지들을 유심히 읽어보며 한참 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부부가 함께 일부러 광주에서 찾아왔다는 A씨(72)는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도 팽목항에 다녀왔었다”며 “이렇게 큰 사고가 났으니 현장에 한번 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왔다”고 말했다.
그날의 참사는 상인들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다. 이들은 상권 침체를 우려하면서도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공간 조성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태원에서 옷가게를 40년째 운영 중인 김모(60)씨는 “매일 1번 출구로 출퇴근하면서 (추모 흔적을) 보면 마음 아프고 그런데 그 부모는 어떻겠느냐”며 “우리(상인들)만 생각해서 추모 공간을 치우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사고가 났던 골목에 희생자들을 위한 제사상을 차렸던 상인 남인석(81)씨는 “추모공원을 만들어야 돼요. 꼭 해줘야 돼요”라고 거듭 강조했다. “변두리 같은 데다가 하면 안 되고 트인 공간에 해줘야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희생된) 애들의 (가는) 길도 밝게 해줄 수 있는 분위기로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실제 추모 공간 조성을 위한 과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가 난 골목은 서울시 말고도 34명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어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 추모 공간 조성은 물론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골목길 정비 작업도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1990년대 삼풍백화점 붕괴와 씨랜드 화재부터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를 비롯해 최근 이태원 참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대형 참사를 겪을 때마다 추모 공간을 놓고 갈등에 휩싸였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 대립은 더욱 첨예했다. 지난해 6월 9일 철거 중이던 건물이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진 광주 학동 참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유족은 건물이 무너진 자리에 작은 정원을 마련하길 원하지만 재개발조합의 반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설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반대 이유지만 추모 공간을 혐오시설로 바라보는 시각도 공존한다.
학동 희생자들이 삶을 마감한 ‘운림54번’ 버스를 영구보존하는 구상도 표류 중이다. 버스는 올해 1월부터 광주의 한 폐정수장 빈터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지난달 24일 기자가 찾아간 버스는 컨테이너 철판을 둘러 임시로 보존해놨지만 참혹한 모습은 그대로였다. 내부는 짓이겨진 좌석 등받이부터 산산이 조각난 유리창, 뒤틀린 내장재, 빛바랜 신문지까지 그날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찾는 이 하나 없는 이곳을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삐거덕거리는 컨테이너 소음이 채웠다. 추모 공간에 대한 청사진이 나와야 비로소 이 버스의 앞날도 결정된다고 한다.
“보존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현장에 나무 한 그루라도, 묵념할 수 있는 자리만이라도 있으면 좋겠어요. 모두를 위해 또 다른 사고를 막도록 경각심을 주고 싶어요.” 한 유족이 말했다.
박장군 정진영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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