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81] 예측 가능한 사람
반전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연애할 때 ‘반전 매력’이 있는 상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뜻밖의 매력은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드러난다. 작가들 역시 극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반전 카드를 쓴다. 이때 중요한 원칙은 주인공에게 더 큰 고난과 실패를 주는 것이다. 반전은 ‘낙차’가 클수록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결코 몇 시간짜리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다.
우리를 가장 불안하게 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함’이고, 우리를 고통에서 지켜주는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통증이 있을 때마다 환자 스스로 소량의 진통제를 투여하는 방법을 PCA(patient controlled analgesia)라고 한다. 언뜻 자유롭게 진통제를 맞게 하면 환자들이 더 많은 진통제를 찾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의료진의 통제를 받으면 통증이 생긴 후에야 진통제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약기운이 떨어질까 봐 오히려 불안해져서 약을 더 많이 찾거나, 미리 받아놓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을 때 심리가 안정돼 통증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불안정한 세상의 가장 큰 안전지대는 ‘예측 가능성’이다. 엄마가 돌아올 걸 아는 아이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실패가 최종 결말이 아닌 성공의 과정이라는 걸 배운 아이는 도전을 덜 두려워한다. 이것이 안정형 애착의 첫 걸음이다. 이렇게 자란 성인은 서로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준다. 떨어져 있어도 결국 돌아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서로 노력할 걸 알기에 인내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본 안정적인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커플들의 특징이다. 대부분 상대의 반전이 매력이 되는 시기는 관계의 초입일 때다.
불안한 아이를 만드는 지름길은 부모가 사랑을 일관성 없이 불규칙적으로 주는 것이다. 언제 울릴지 모르는 SNS의 ‘좋아요’처럼 언제 그것이 올지 몰라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초초해지기 때문이다. 사랑에 있어 일관성이 이토록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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