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손흥민의 눈물

입력 2022. 12. 9. 22:4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전 내내 손흥민은 자주 눈물을 훔쳤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소위 손흥민급의 선수들 가운데 승패를 차치하고 그만큼 진한 눈물을 선보인 경우는 드문 듯하다.

아쉽게 16강행이 좌절된 뒤 카메라에 포착된 우루과이의 노장 수아레스의 비통한 표정을 잊을 수 없지만, 손흥민의 눈물에 비견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손흥민의 눈물은 너무 귀하고 자랑스럽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 뛰면서도
월드컵 리그전 후 뜨거운 눈물
팬과 공동체의 눈물이기도 해
진정한 ‘캡틴’ 모습에 국민 감동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전 내내 손흥민은 자주 눈물을 훔쳤다. 득점 없이 비긴 우루과이와의 1차전 직후 인터뷰에서 울음을 참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2-2 동점 상황에서 1골을 허용해 아쉽게 패한 가나와의 2차전이 끝난 뒤에는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쉬워하며 분루를 삼켰다. 마침내 포르투갈과의 최종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두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었을 때 그는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오열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992년생, 올해 서른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좋은 기량을 선보이는 그의 몸값에 대해 여기서 자세히 말하고 싶지 않다. ‘별들의 잔치’로 일컬어지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면 이제까지 상대팀으로 뛰던 선수들이 한결같이 그를 찾아와 격려하고 부상을 걱정하며 서로 끌어안았다. 승부의 순간만큼이나 짜릿하고 감동적인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그런 그가 운다. 이기고 지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남자의 눈물, 흔치 않은 풍경이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소위 손흥민급의 선수들 가운데 승패를 차치하고 그만큼 진한 눈물을 선보인 경우는 드문 듯하다. 아쉽게 16강행이 좌절된 뒤 카메라에 포착된 우루과이의 노장 수아레스의 비통한 표정을 잊을 수 없지만, 손흥민의 눈물에 비견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버린 세계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건 약점으로 치부되기 때문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의 눈물에 관대한 문화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남자들은 무릇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감정을 절제하고 울음을 참으며 강한 모습을 보이도록 오랫동안 훈련되어왔다. 눈물은 약한 계집애들이나 흘리는 것이다! 가나전 석패를 그의 탓으로 돌리며 눈물을 조롱하는 악플들에서도 이런 낌새를 엿볼 수 있었다. 축구라는 스포츠가 종종 과장된 남성성의 전시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어떤 강박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듯해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손흥민의 눈물은 너무 귀하고 자랑스럽다. 나는 축구장에서 날렵하게 공을 패스하는 손흥민만큼이나 그 공을 골문에 집어넣고 오열하는 손흥민을 사랑한다. 그의 눈물에는 사람이 하는 일, 그 유동적인 드라마가 선사하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함축되어 있다. 손흥민은 세간에 떠도는 남자다움의 신화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자의 파토스를 마음껏 발산한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다듬고 형성해 온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격정의 파도. 이때 그의 눈물은 손흥민 개인의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항상 그의 성공과 좌절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과 팬과 공동체와의 유대와 뒤섞임, 그 관계의 연루 속에서 운다.

손흥민은 말한다. 후배들이 월드컵이라는 무대를 통해 기량을 마음껏 자랑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모든 어려움을 뒤로하고 최선을 다하는 그들과 함께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 다들 잘 알고 있듯이 그는 소속팀 토트넘 경기 도중 안면골 다발 골절상을 당해 수술을 받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월드컵에 출전했다. 기꺼이 다른 사람들과 연루되기를 선택하는 자, 오로지 손흥민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가 운다.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그는 우리 편에서 상대편 골문 근처까지 70∼80m를 혼자 공을 몰고 달린다. 그 공이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말하지 않겠다. 공과 하나가 되어 달리던 그의 모습이 승리가 결정된 후 오열하는 그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가 진정 ‘캡틴’이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