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명의’ 인권상 시상식 보이콧한 하청노동자

이유진·전지현 기자 2022. 12. 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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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가장 많이 유린한 사람이 수여…세계인권선언 낭독 거부”
지난여름 ‘0.3평 철장 투쟁’ 벌인 유최안 민주노총 소속 부지회장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2 인권의날 기념행사에서 세계인권선언 낭독 취소를 선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은 가장 평범하고 가장 보편적인 가치여야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인권을 가장 많이 유린하는 사람이 주는 상을 이 자리에서 시상하고 있는, 이 어이없는 상황이 현재 한국 사회 어디에도 인권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2022 인권의날 기념행사’에서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세계인권선언 낭독 취소를 선언하며 이같이 말했다. 유 부지회장은 지난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의 임금 원상회복을 요구하며 0.3평 철장 안에 스스로 몸을 구겨 넣고 벼랑 끝 투쟁을 벌인 인물이다.

유 부지회장은 이날 세계인권선언 제23조 노동권을 낭독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명의로 인권상이 수여되는 데 반발해 낭독을 취소하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10일은 세계인권의날 74주년이다.

이날 행사 시작 전 무대에 오른 유 부지회장은 “올해 7월 조선소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발언했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오늘 인권선언문 23조를 읽기로 했으나, 오늘 행사의 취지가 저와 맞지 않아 이 말을 하고 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인권은 20층 높이의 빌딩 위에 자리 잡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며 “인권은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외쳤던 조선소 하청노동자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모두가 잠든 밤을 달리던 화물노동자들, 그리고 오늘도 지하에서 햇빛 한 번 받지 못하고 일하는 노동자들, 병들고 아프지만 제대로 치료받지도 보호받지도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인권을 지키려 곡기를 끊고 싸우는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렇기에 인권은 가장 평범하고 가장 보편적인 가치여야 한다”면서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인권을 유린하는 사람이 주는 상을 이 자리에서 시상하고 있는 이 어이없는 상황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인권이 어디에도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유 부지회장은 “개인적 권리를 넘어 사회적 권리 속에서 보호되어야 할 인권이 이렇게 희화화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참담함을 느끼고, 74년 동안 인권이 보편적 가치를 가진 권리가 되게 하려고 싸워온 사람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오늘도 인간으로서 묵묵히 하루를 살아가는 저항하는 평범한 사람들과 오늘을 기념하고 싶다”고 말한 뒤 무대를 내려갔다.

이유진·전지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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