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 쌓은 ‘젠더적 교만’의 성…백래시 시대의 여성들이 맞서는 방법[책과 삶]
교만의 요새
마사 너스바움 지음·박선아 옮김
민음사 | 440쪽 | 2만4000원
책은 “우리 시대는 미국의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혁명적인 시기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성이 당당하고 분명하게 정의를 요구하는 시대’이면서, 특권 상실에 분노한 일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악마화하는 시대’이며, 또 ‘평등과 존중을 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복에서 희열을 찾는 일부 여성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라고 말한다. 미투 운동의 빛과 그림자, 트럼프주의라는 백래시(반동)가 교차하는 상황에 대한 요약이다.
<혐오와 수치심> <타인에 대한 연민> 등에서 차별과 약자의 문제를 다뤄왔던 저자는 성폭력 문제를 토대로 ‘페미니즘 악마화’에 맞설 언어를 제공하면서 ‘보복의 희열’을 극복해 보편적 정의와 질서를 계속 요구하자고 설득한다. 모든 차별과 폭력은 교만에서 비롯됐다고 밀, 드워킨, 단테의 희곡까지 끌어들여 논증한다. 이어 성폭력 재판에서 ‘비동의’의 개념이 확장돼 온 역사를 좇는다. 한적한 곳에서 자동차 열쇠를 빼앗아 강간을 시도한 남성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1970~1980년대 미국의 사법부 판결이 변화해 온 과정이 펼쳐진다. 물론 여전히 사법부는 교만의 요새로 남아 있으며 예술·스포츠계 등 법의 진전이 제대로 닿지 않는 영역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법과 이성을 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 이상한 판결이 나더라도 수십년 후 세상을 분명 달라지게 할 절제된 싸움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구조적 교만이 바탕이 된 ‘요새’는 개인을 상대로 한 소모적이고 끝없는 투쟁으로 무너뜨릴 수 없으며 판결과 법을 통해 사회 전체의 규범을 새로 짤 때 비로소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악의 없는 책임’과 ‘굴복 없는 너그러움’이 교만을 이긴다. 백래시의 시대 페미니스트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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