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노옥희 선생님
누구나 살면서 다시 태어나는 듯한 경험을 하는 순간이 있다. 교육자 노옥희(1958~2022)에게 그런 순간은 20대 중반 울산 현대공고 수학교사 시절 한 제자와의 만남이었던 것 같다.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에서 어렵게 학교에 다니던 이 학생은 졸업 후 공장에서 일하다 손목이 잘리는 산업재해를 당했다. 노동조합은 없었고, 산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았다. 한 푼도 보상받을 수 없어 절망했다고 한다.
노옥희는 2011년 책 <이제 다시 시작이다>에서 그때를 회고하며 “학생들에게 전공과목만 열심히 가르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 없을지” 고민했다고 썼다.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뛰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노동조합이 법으로 보장돼 있음을 알게 됐다. 제자들 대부분이 졸업 후 노동자로 살아갈 상황에서 선생님은 “노동자라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학생들에게 노동자의식을 심어주고, 같은 노동자인 동료 교사들을 조직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재벌기업이 세운 학교에서 7년 남짓 ‘불온한’ 교사로 일하다 해직됐다. 교육운동을 하면서 국가와 재벌에 무릎 꿇지 않고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킨 끝에 13년 만에 복직했다. 당당한 노동자가 된 제자들의 구명운동이 한몫했다.
이후 그는 교육행정가로 거듭났다. 시 교육위원으로 학교 전산화 납품비리를 파헤치고, 장애인 교육권과 무상급식을 위해 싸웠다. 청탁금지법이 도입되기 한참 전인 2000년대 초 교육위원으로서 명절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자녀 교육에 좋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 복직을 위한 단식농성을 하는 등 그에게 노동운동과 교육운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노옥희는 2018년 울산교육감이 됐고, 올해 재선에 성공했다. 지역 교육수장으로서 지난 3월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 57명의 손을 잡고 함께 등교하던 모습은, 어쩌면 불거질 수도 있었던 이방인 혐오를 온기로 녹이는 데 역할을 했다. 혐오가 횡행하는 시대, 그의 부재가 안타깝다. 지난 8일 갑자기 세상을 떠난 노옥희 선생님의 안식을 빈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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