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서해 피살’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기소···적부심 피하려 구속 6일만에 기소?
검찰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최종 결정권자로 지목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9일 재판에 넘겼다. 서 전 실장을 구속한 지 6일 만이다. 서 전 실장 측의 구속적부심 청구를 봉쇄하려고 이례적으로 빨리 기소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 고위 인사를 기소한 것은 처음이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서 전 실장을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혐의로 이날 구속 기소했다.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은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허위사실 명예훼손,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서 전 실장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다음날인 2020년 9월23일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과 해경청장에게 ‘보안 유지’ 조치를 하라고 지시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씨 피살이 북한의 도발과 같은 비상상황인데도 서 전 실장이 피살 사실을 숨기려고 보안 유지 조치를 지시한 탓에 군과 해경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서 전 실장이 비난을 피하려고 이씨가 피살된 사실을 감추려했다는 것이다.
서 전 실장은 해경이 피살 사실을 숨기고 실종 상태에서 수색 중인 것처럼 허위 보도자료를 내도록 한 혐의, 자진 월북으로 정리한 허위 자료를 관련 부처에 배부하게 한 혐의도 받는다. 김 전 청장은 월북 가능성과 판단에 대한 허위 발표자료를 작성·배부해 이씨와 유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을 받는다.
검찰은 지난 3일 서 전 실장이 구속된 지 불과 6일 만에 기소했다. 최대 구속기간(20일)을 채우고 기소하는 관례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검찰은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해 기소 시점을 늦출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앞서 구속된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 전 청장이 구속적부심 청구 인용으로 석방된 상황에서 서 전 실장이 구속적부심 청구를 검토하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서 전 실장까지 풀려나면 수사 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을 구속 후 세 차례 밖에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당초 서 전 실장의 주된 혐의로 거론된 첩보 삭제 혐의는 이번 기소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청와대 관계장관회의에서 이씨 사망을 월북으로 속단하고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에 첩보 삭제를 지시했다고 의심하고 수사해왔다. 그러나 첩보가 삭제된 경위는 아직 정확히 드러난 게 없다. 서욱 전 장관이 이날 함께 기소되지 않은 것도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미진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아직 조사하지 않았다.
서 전 실장이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데다, 이씨 피살이 남북 관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결국 이 사건의 실체와 법적 평가는 재판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씨가 바다에 빠져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경위가 최대 쟁점인데, 검찰과 서 전 실장 측은 이를 두고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서 전 실장은 특수취급첩보(SI)에서 ‘월북’이라는 단어를 확인했고 기상상황과 배의 구조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월북으로 판단한 것은 정당했다고 주장한다. 합리적 근거를 갖고 월북을 추정한 이상 적어도 범죄의 ‘고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검찰은 연평도 바닷물의 유속이 얼마나 빠른지 보여주는 영상 등을 근거로 이씨가 ‘실족’으로 바다에 빠졌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월북은 한국에서 누군가를 낙인찍을 수 있는 부정적 단어인데, 서 전 실장이 모종의 의도를 갖고 월북으로 속단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을 서해 사건의 최고결정권자이자 최종책임자로 규정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문 전 대통령을 직접 불러 조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일 서해 사건은 자신이 국방부·해경·국정원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서 전 실장 측은 이날 “검찰의 전격 기소는 적부심 석방을 우려한 당당하지 못한 처사로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 전 실장의 변호인은 “공범으로 적시된 서욱 전 장관은 기소에서 제외됐고, 박지원 전 원장은 조사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결정이 이뤄진 것도 이해할 수 없다”며 “공판 과정에서 보석 등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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