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재건축 걸림돌 '아파트지구' 반세기만에 폐지
상가·보행길 조성 수월해져
압구정 등 14개 지구 폐지
용적률 완화·복합개발 유도
해당지역 재건축 속도 낼 듯
"유연한 사업 추진 가능해져"
대단지 아파트를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1970년대 도입된 '아파트지구' 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반포·압구정·여의도 등 서울에 있던 14개 아파트지구는 단계적으로 폐지된 후 현대 도시관리기법인 '지구단위계획' 적용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용적률·높이·용도 규제가 완화돼 해당 지역에서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9일 서울시는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 전환 지침'을 이같이 개선했다고 밝혔다. 아파트지구는 1976년에 처음 만들어진 제도다. 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 도시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나자 아파트를 빠르게 짓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이 제도는 한계를 드러냈다. 토지용도 구분이 엄격한 탓에 다양한 생활 수요를 품지 못했던 것이다. 가령 주택용지에 오직 아파트만 지을 수 있어 상가가 들어서지 못하는 문제 등이 생겼다.
결국 이 제도는 2003년 국토계획법에서 삭제됐다. 서울에 남아 있던 14개 아파트지구는 주택법 부칙으로만 관리됐다. △화곡 △여의도 △원효 △이촌 △서빙고 △이수 △반포 △서초 △압구정 △청담·도곡 △아시아선수촌 △잠실 △가락 △암사·명일 아파트지구가 그 대상이다. 14개 지구에는 총 208개 단지 14만9684가구가 포함돼 있다.
서울 전체 아파트 중 9%가량이 이 제도를 적용받다 보니 도시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관리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서울시는 이에 지난해 '아파트지구 지구단위계획 전환 지침'을 마련했고, 이번에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지침을 보완해 발표했다.
향후 아파트지구에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게 되면 해당 지역은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전환된다. 동시에 아파트지구 안에서 주택과 중심시설로 나뉘었던 용지는 모두 획지로 바뀐다. 토지 용도를 정해놓는 게 아니기 때문에 복합적인 이용이 가능해진다.
일례로 기존 중심시설용지에선 상업 기능만 허용되고 주거시설을 지을 수가 없었다. 높이도 5층 이하(약 20m)로 제한됐다. 하지만 지구단위계획이 적용되면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게 된다. 높이도 최고 40m까지 올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면도로와 가깝게 붙어 있는 건물은 높이를 많이 올리긴 어렵다.
또한 용도 완화에 따른 공공기여를 5~10% 받을 예정이다.
서울시는 현재 중심시설용지 중 30%가 역세권에 위치해 있는 만큼 앞으로 역세권 복합 개발을 하는 게 용이해졌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5개 지구에 남아 있는 개발 잔여지도 재건축이 쉬워진다. 현재 반포, 서빙고, 청담·도곡, 이촌, 압구정에 91개 필지가 개발 잔여지로 지정돼 있다. 이곳은 앞으로 주거와 비주거 용도의 복합 개발이 가능해진다. 최고 높이도 40m까지 허용한다.
중심시설용지나 개발 잔여지가 인근 주택단지와 통합해 재건축하거나 일정 규모(5000㎡ 또는 100가구) 이상으로 개발할 때에는 주택용지와 동일한 전환 기준을 적용한다.
주택용지는 아예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신속한 정비계획이 수립되도록 만들 예정이다. 한강변 주택용지를 재건축할 때 공공기여 부담도 줄었다. 기존에는 공공기여 15% 이상이 원칙이었지만 이를 10%로 낮췄다. 기준이 낮아지면서 재건축 사업성이 높아질 전망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아파트지구는 과거 강남지역 아파트를 개발할 때 시작된 굉장히 오래된 제도"라며 "복합적인 지구단위계획의 틀로서 묶는 게 기능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빠르게 전환될 곳으로는 서초와 이수 아파트지구가 꼽힌다. 서울시는 지난달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서 두 곳을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바꾸는 계획안을 이미 통과시킨 바 있다.
서초 아파트지구에는 2030년 재건축 연한(30년)이 도래하는 삼풍아파트와 우성5차 아파트가 있다. 시는 이 두 단지를 대상으로 주변 도시와의 연계성 등을 고려한 재건축 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다. 공원과 공공보행통로 등을 포함한 지구단위계획도 수립했다.
이수 아파트지구에는 이미 연한이 도래한 노후 아파트단지가 곳곳에 있다. 서울시는 노후 단지를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해 정비계획을 만들 때 창의적인 건축계획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사업 추진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방배로45길 도로망도 일부 조정했다. 이곳을 공공보행통로로 변경함으로써 사업성을 높이고 주택 공급 확대를 유도한 것이다. 이외에도 서울시는 연내에 여의도 아파트지구의 지구단위계획 전환에 나설 계획이다.
유창수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앞으로 서울 시내 14개 아파트지구의 재건축 사업이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지침 개선과 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아파트 밀집 지역에 대한 지속가능하고 일관된 도시관리 체계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희수 기자]
[용어]아파트지구 : 대규모 주택 공급을 위해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에 근거해 도입됐다. 지구 내 토지는 주택용으로 주로 이용하고 근린생활시설(상업·업무) 건립은 엄격히 규제됐다. 2000년대 들어 주거지역을 역세권, 상업·업무지역과 함께 복합개발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2003년 11월 국토계획법 시행령 개정으로 신규 아파트지구 지정이 불가능해졌다. 현재 서울에는 14개 지구에 총 14만9684가구가 아파트지구에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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