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열린 마음의 사회

2022. 12. 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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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빠르게 개별화되고
각자 울타리를 만들면서
선행이 오해받는 일도 생겨
낯선 이에게 다가가는 마음
그래도 잃어버려선 안 돼

얼마 전 외국에서 잠시 고국을 들른 지인을 만나기 위해 외출하던 중이었다. 나는 비교적 정확한 성격이라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지도 앱 등을 통해 미리 소요 시간을 계산해보고, 시간에 맞춰 출발하는 편이다.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중 앞에서 갑자기 한 노인이 비틀거리며 넘어지셨다. 곧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있었지만, 얼른 어르신께 다가가 부축해 일으켜드리며 조심스럽게 천천히 승차장 근처 의자로 모셨다. 기력이 거의 없으셨던지 축 늘어지셔서 걷지를 못하시니 의자로 모시기가 무척 힘들었다. 게다가 의자에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울렁거리셨는지 버럭 토하셨는데, 내 바지 옷자락과 신발에 토해낸 것이 조금 묻었다.

지하철 역사로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이 필요함을 알리고 직원이 내려올 때까지 어르신께 괜찮으신지 여쭙고 등을 두드려드리며 기다렸다. 도착한 직원에게 상황을 인계해드린 후 휴지가 없어 손수건을 꺼내 간단히 옷자락과 신발을 닦았고, 잠시 후 열차가 들어와 현장을 떠났다.

돌아보니 그 어르신께서 비틀거리며 넘어지는 순간 나의 내면에 약간의 주저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했던 제일 큰 이유는 약속 시간에 늦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사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도 있지만, 도움을 줘야 하는 순간을 종종 접하게 된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무거운 짐으로 힘겹게 쩔쩔매는 분들이나, 지하철 역사에서 도무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시는 어르신들을 가끔 보게 된다. 나 역시 어떤 경우에 익숙하지 않은 지하철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판단하지 못해 어리둥절 안내판을 찾아 두리번거린 때가 있으니 말이다.

도움이 필요해 어쩔 줄 모르고 망설이는 분들을 보게 되는 경우 어떤 이유에서건 그 상황을 외면하거나 피하고 심지어는 전혀 의식의 수준에 들어오지 않는 순간도 있으리라 여겨진다. 최근 지인은 양손에 물건을 들고 바쁘게 지하철을 타러 가던 중, 한 중년 여성이 상향선 에스컬레이터에서 뒤로 넘어진 모습을 목격하고도 바로 달려가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바라며 주위를 돌아보았단다. 순간 들고 있던 물건이 그 여성분의 위태로운 상황과 안전보다 중요했던, 너무도 이기적이었던 자신의 모습에 종일 그리고 한동안 마음앓이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 왜 도움을 주거나 받아야 하는 상황 앞에서 때로는 이러한 상황을 애써 외면하거나 주저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너무나 빨리 개별화돼 각자 자신의 울타리 경계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벌어진 상황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인한 이유이기도 하겠다. 또한 동시에 선하게 도움을 베푼 상황이 역으로 오해받아 불편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를 가끔 언론에서 접하게 되는 것 또한 원인일 수도 있겠다. 선한 지향으로 다가가 도움을 제공했지만, 오히려 치한으로 몰리거나 오해받아 매서운 눈치를 되받은 일도 없지는 않다. 사실 수도공동체 내에서도 사이가 서먹한 형제에게 도움을 베풀지만, 오히려 자신을 무시했다는 오해를 받아 마음 아파한 경험도 있었다.

우리가 점차 잃어가는 것은 낯선 이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열린 마음과 주변의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향하는 측은한 마음이겠다. 물론 나는 수도 생활을 하는 성직자이기에 이런 상황에 대하여 자기 성찰을 더 심각하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아직은 주변에 관심을 두고 돕고자 하며 먼저 달려가주는 이웃이 많은 따듯한 세상이라 믿으며 조금 더 풍성한 인심의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심종혁 서강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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