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준 변호사의 사람과 법 이야기] 길을 떠난다

2022. 12. 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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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으로 난 길을 떠난다. 그 길의 종착점이 어딘지를 가늠하긴 당최 어렵다. 기대를 머금은 마음속 언저리 불안감은 길 떠나는 행위를 일삼는 자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동반자다. 되돌아보니 어지러운 뒷길 발자국은 매운 먼지 속에서 외롭게 흩어져 있군.

7년 전 30년 가까이 지내온 법원 문을 밀치고 나와 길을 떠났다. 전설과도 같은 위대한 종군 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말. "당신이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라." 판사도 판결이라는 이름의 인생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하지만 내가 찍어온 사진들의 품질에 별로 자신이 없었다. 이런 막연한 느낌으로 현장에 좀 더 가까워지는 방도를 고민한 끝에 문밖으로 나선 것이었다.

이 칼럼은 지난 7년의 세월을 같이한 아마추어 사진사의 습작 갤러리다. 칼럼의 주제를 '사람과 법 이야기'로 정한 것은 법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인생사'를 피사체로 삼아 스냅숏 사연으로 풀어볼 심산이기도 했다.

그사이 우리네 삶에는 크고 작은 여러 변고가 있었다. 정권이 두 번 바뀌는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의 극심한 대립 상을 보아왔다. 코로나19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세계사적 난리 속에서 생활의 패턴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혼선을 겪어오기도 했다.

집값의 폭등에 이어 다시 극심한 경제 침체로 접어드는 부침. 이 와중에 우리 삶 자체가 매우 팍팍해졌다. 북핵 위협,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는 해소될 기미가 없다.

'K-'로 일컬어지는 대한민국 문화의 소프트파워에 자부심을 좀 느낄 수 있나 싶더니, 이태원 참사로 인한 충격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기 그지없다.

이런 변동, 부침과 혼란 속에서 현안을 해결하는 데 법이 동원되는 일이 더없이 잦아졌다. 법정은 온갖 책임 추궁, 단죄, 시시비비를 가리느라 펄펄 끓는 가마솥 매한가지가 되어버렸다. 지금처럼 법원이 현장의 한가운데로 불려 나와 대부분의 사회적·정치적 이슈를 놓고 골머리를 앓는 일을 도맡게 된 때도 없을 성싶다. 그러다 보니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린 법원, 판사도 상충하는 이해관계 속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법원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걱정스럽다.

필연적으로 저마다 법의 기치를 들고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전쟁터는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 널리게 됐다.

이 칼럼을 통해 법의 렌즈로 사진을 찍어본 소감을 전하고자 한 필자로서는 칼럼의 주제 자체는 실로 무궁무진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프레임을 어떻게 잡고 피사체를 어디에 위치시켜야 숨 가쁜 삶의 애환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하는 난제에 속한다.

필자가 지금껏 해오고 있는 공부는 법심리학이라는 학문적 테두리에 속해 있다. 법률문제에 봉착하여 사람들이 내리는 판단과 의사결정의 향배가 주된 관심사다. 속마음 생각과 선택 과정에서 착각과 실수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을 늘 다반사로 해온 필자 스스로가 좋은 연구 대상이다. 이 공부 덕분에 알게 된 '나'라고 하는 사람의 기억, 언어, 오판의 문제 역시 칼럼의 소재가 됐다.

4주마다 돌아가면서 칼럼을 쓴 지도 만 6년이 지났다. 비교적 긴 세월 동안 지면을 관대히 허락해주신 편집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늘 마감 시한에 급급해 원고를 제출하는 바람에 애로를 겪으셨을 터에도 적확한 상징으로 칼럼을 장식해주신 정찬동 화백께도 경의를 표한다. 무엇보다도, 어리석은 글임에도 성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독자 여러분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제 갈림길에서 다른 곳을 향해 길을 떠난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불안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어딘가 다른 새로운 곳을 바라보며 꿈을 꿀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이번엔 집을 지어보거나, 영화에 출연해보거나, 질그릇을 빚어볼지도 모른다. 길 나선 나그네가 꾸는 꿈은 그래서 언제나 나를 새롭게 한다. 이제 자유, 자유다.

[김상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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