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라, 집권자에게 조작당하는 현재를[책과 삶]

김종목 기자 2022. 12. 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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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섬
쥴퓌 리바넬리 저자 지음·오진혁 옮김│호밀밭│300쪽│1만6000원
쥴퓌 리바넬리는 여성, 환경, 정의, 평화를 소재로 소설을 써왔다. 튀르키예에서 오르한 파무크 이후 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을 듣는 작가다. 정치를 고발하며 대중 각성도 촉구하는 내용의 우화 <마지막 섬>에서 ‘인간은 저항한다’는 정의를 망각하고 외면하며, ‘독재에 굴복’하고 ‘작은 것에 탐닉’하는 ‘우리’의 원죄를 환기한다. 위키미디어 공용
40가구만 사는 어느 외딴섬
전직 대통령이 들어오면서부터
공존의 낙원은
공멸의 지옥이 된다
그는 사실을 왜곡해
주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
권력자는 이렇게
민주주의를 망친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절대 비밀’로 지켜왔던 그 지상 낙원에서 평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낙원? 40가구만 사는 작은 외딴섬엔 “천연 수족관 같은 새파랗고 투명한 바다”와 잣나무 숲이 펼쳐진다. 사계절 내내 온화하다. 주민들은 와인을 곁들인 점심을 먹고 해먹에서 낮잠을 잔다. 밤엔 “사람의 넋을 빼놓는 재스민 향기”가 뒤덮는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독립된 세상”이다. 주민들은 친하되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미쳐 돌아가는 바깥세상 뉴스는 일주일에 한 번 들르는 배편으로 배달하는 신문으로만 본다. 사람들은 세상에 섬의 존재를 알리려 하지 않았다. 집을 매물로 내놓는 일은 이 공동체의 금기였다. ‘나’는 ‘마지막 섬’이라 부른다. “마지막 은신처,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자투리땅”의 평화가 깨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전직 대통령이다. 군사고등학교에서 “조국이 안팎으로 적들에게 포위당해 있고, 조국을 수호하는 임무는 오로지 군인에게만 주어졌다”고 세뇌당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그는 장기 철권통치에 들어갔다. 집권기 “서로에 대한 증오의 씨앗이 뿌리내린 민족적, 종교적 성향의 모든 집단이 서로를 죽였고, 피의 복수는 갈수록 미쳐 날뛰었”다. 수천 명이 수감됐다. 감옥에서는 고문 때문에 죽은 사람들 소식이 흘러나왔다. 언론은 그를 ‘국민의 아버지’라 칭했다. 뉴스는 그가 보육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해 어린이나 노인들에게 선물을 주는 사진들로 장식되곤 했다.

혁명의회가 사임시켰던 그가 이 섬에 살러 온 것이다. 섬 주인이자 1번 집 주민인 ‘1호’의 아버지가 오래전 섬으로 그를 초청했다. 그는 대통령직 이 ‘전 대통령’은 사임 뒤 머물 곳을 찾다가 이 섬의 집 한 채가 매물로 나오자 사들였다. 선착장에 도착한 그는 “신대륙에 처음 발을 내디딘 뒤 그곳에 있는 반라의 원주민들 앞에 선 정복자의 태도”로 주민을 훑어보곤 인사했다.

그는 오자마자 평온을 깨트린다. 주민들이 아끼던 오래된 숲길에 서로 “얽히고설켜 너무나도 멋진 그늘”을 만들던 나무 절반을 경호원을 시켜 잘라낸 것이다. 주민들의 항의에 이렇게 답했다. “오자마자 흙길의 그 흉측한 풍경이 제 눈에 밟히더군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는 문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정원사 손을 거친 깔끔한 나무들을 그 길에서 보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섬에 또 한 번 자긍심을 갖게 될 겁니다.”

전 대통령은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을 주장하고, 다양한 사고들을 무질서하게 내버려 두는 시스템”이 무정부 상태라며 운영위원회 구성을 제안해 만든다. 그는 “민주주의야말로 가장 위대한 가치”라면서도 운영위원장 자리는 자기가 맡았다.

전 대통령은 날이 갈수록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더 각인시키려고 했다. 어느 날 구멍가게 주인의 장애인 아들이 우유를 갖다주려고 테라스에 들어온 걸 두고 치안과 사생활 보호 원칙을 어겼다며 처벌했다. 집주인 허락 없이 정원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처벌 규칙까지 만든다. “전 대통령은 현직에서 물러난 뒤 국가의 축소판을 찾아냈고, 마음대로 이 작은 국가를 가지고 놀 생각”을 했다.

긴장이 조금씩 고조되던 섬에서 갈매기 문제가 터져 나온다. 주민들은 이 낙원에서 갈매기들의 언어를 알아듣고 배울 정도로 친밀하게 살아왔다. “야생의 새와 일상으로부터 탈출해 조용한 삶을 원한 사람들”이 서로의 터전을 침범하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를 이뤄내며 공생에 성공했다.

전 대통령이 테라스에서 목격한 ‘침입자’를 ‘테러리스트’로 착각해 총을 쏜다. “이 모든 건 조국에 봉사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며 섬 전체와 주민들의 집을 샅샅이 수색할 것이라고 했다. 주민인 ‘소설가’가 침입자는 갈매기라고 밝히자 망신을 당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국가를 위한 봉사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영웅의 역할에 취해있던 권력자였다. 그러나 이젠 갈매기가 무서워서 쓸데없이 총질이나 한 사람으로 추락해버린 것이었다.”

전 대통령은 운영위원회에 갈매기의 해로움에 관해 설명한 뒤 새들을 없애자고 제안한다. 그는 앞서 1호와 따로 만나 “사람은 평등하지 않거든.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고, 삶은 이들 사이의 투쟁”이고, 평등·우애·민주주의는 “약자들이 만들어 낸 헛소리일 뿐”이라며 마음을 흔든다. 갈매기 학살에다 호텔, 카지노, 나이트클럽 건설 같은 관광산업 개발 등을 회유한다.

“(갈매기는) 우리가 이곳에 오기 수천 년 전부터 이 섬의 주인이었다”며 섬의 조화와 공존을 강조하는 소설가의 의견은 운영위원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의 여자친구 ‘라라’의 “금지명령을 알지 못하지 불어오는 바람은/ 쇠사슬로 묶을 수는 없지 날아가는 갈매기는/ 묶을 수 없는 건 사람의 심장도 마찬가지야”라는, 독수리에 관한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를 조금 바꿔 넣은 평화 성명서도 소용없었다. 전 대통령이 성명서를 읽곤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평화 성명서 같은 속임수를 많이 봐왔어. 사회의 안녕을 해치려는 모든 패배주의자와 테러리스트, 무정부주의자들이 이런 성명서 뒤에 숨거든.” 그는 푸시킨은 공산주의 사상이 나오기 전에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상관없어, 러시아인들에게는 항상 공산주의 정신이 존재했었어”라며 무시했다. 전 대통령은 갈매기 학살을 민주주의 원칙으로, 다수의 결정에 따라 처리했을 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굳건한 결심, 단결 그리고 사기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섬은 유토피아에서 디스토피아로 변해간다. 전 대통령과 경호원들이 갈매기를 향해 총을 쏴 죽였다. 학살에 반대하던 소설가는 섬에서 최초로 체포된다. 갈매기들은 큰 돌을 하늘 높은 곳에서 집을 향해 떨어트리며 역습한다. 이 공격으로 주민 한 명이 죽는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 대신에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으로 상황이 바뀌자 주민들은 갈매기를 증오하기 시작한다. “누가 먼저 시작했고, 누가 정당한지 같은 논리적 사고는 질식할 것 같은 공포와 증오 앞에서 모든 의미를 상실했다. 모두가 복수를 원했다. 공포는 증오를, 증오는 공포를 키우고 있었다.” 갈매기를 저렇게 만든 살인자는 전 대통령이라는 고발은 소수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적을 공동의 적으로 만들어 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섬은 점점 더 망가진다. 갈매기를 박멸하려 알을 훔쳐 먹을 여우를 데려다 놓는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갈매기에게 천벌을!”이라고 외친다. 천적인 갈매기가 없어지자 뱀이 집으로 스며든다. 뱀 퇴치 약 냄새와 부작용 때문에 다시 주민들은 고통받는다. 개체 수가 늘어난 여우를 없애려 청산가리를 들여온다.

‘죽음의 섬’에서 인간관계도 죽어갔다. 사람들은 서로 의심했다. 그 와중에 소설가의 정체가 드러난다. 대학살 때 갈매기 알을 닭장으로 옮겨 닭이 품도록 한 구멍가게 아들의 분노도 커진다.

<마지막 섬>(2008)은 권위주의와 정치 무관심이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관한 우화다. 독재자의 권력중독도 풍자한다. 튀르키예에서 오르한 파무크 이후 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을 듣는 쥴퓌 리바넬리는 여성, 환경, 정의, 평화를 소재로 소설을 써왔다. <마지막 섬>은 ‘인간은 저항한다’는 정의를 망각하고 외면하며, ‘독재에 굴복’하고 ‘작은 것에 탐닉’하는 ‘우리’의 원죄를 환기한다. 사상범으로 군 교도소에 갇힌 경험도 소설에 반영했다.

부록인 대담(2013년 진행)을 보면, 리바넬리는 “사람들은 편향된 뉴스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거짓과 구분해내고, 굽은 것 속에서 곧은 것을 찾아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집권자들과 언론이 이 ‘지금’을 조작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고 했다.  ‘늘면 늘었지 줄지 않네 / 억압은 서서히 서서히’라는 메스레키 바바의 시 구절을 인용하며 “모든 독재자는 초기에 자신의 이익을 마치 사회의 이익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를 쓰지요. 처음에는 누구도 겁먹지 않게 조심합니다. 하지만 권력이 커지고 자신감이 충만해지면 이빨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합니다”라고 했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집권한 ‘선출된 왕’을 두고 한 말이다. 소설 속 갈매기 학살도 ‘민주주의’라는 속임수 뒤에 숨어서 자행된 일이다.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민주주의로 운영위원장 자리에 오른다.

리바넬리는 “정말로 민주적인 권력이 되려면, 다수주의가 아니라 다원주의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권력 분립이 완벽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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