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핫라인] "위기정면 돌파!": 엄동설한 백두산 행군, 이유는?

최유찬 yuchan@mbc.co.kr 2022. 12. 9.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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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 화면]

최근 북한 방송에서는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날씨 속, 수많은 사람들이 백두산 답사 행군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을 연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백두산은 북한이 ‘혁명의 성지’로 부르는 곳입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항일투쟁을 벌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태어난 곳이 백두산이라고 주장합니다.

조선말대사전에 따르면 ‘행군’은 “전투를 목적으로 적에게 접근하거나 후퇴하기 위하여 하는 부대의 조직적인 이동”입니다. 백두산 행군은 북한의 오랜 전통입니다. 한겨울에 집중적으로 백두산 행군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때는 김정은 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을 찾은 2019년부터입니다. 2020년 전세계적인 코로나 방역위기에도 겨울철 백두산 행군은 계속되다가 북한이 방역을 강화한 2021년부터는 주춤했습니다. 그러다가 2022년 겨울, 11월 중순부터 북한 텔레비전 뉴스는 거의 매일 백두산 답사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답사 행군대는 노동당 간부, 교원, 청년, 학생들까지 다양한 계층으로 조직됐습니다.

## "노동당 간부부터 학생까지.." 백두산 답사 '예외 없다'

이번 겨울 들어 백두산 답사 행렬이 시작됐다는 첫 보도는 지난 11월 14일에 나왔습니다. 첫 답사행군을 한 조직은 노동당 중앙간부학교 학생들, 지난 10월 김정은 위원장의 강연을 들은 그 학생들입니다. 북한 TV 화면은 붉은 깃발을 앞세운 학생들이 앞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거센 눈보라를 헤치고 행군하고, 목적지인 백두산 천지에 도착하자 모두 만세를 외치는 모습을 비춥니다. 행군에 참가한 학생은 백두산 행군을 통해 백두의 혁명전통, 정신으로 무장하는 것이 김정은의 사상을 관철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이후 백두산 답사길에는 평양시당학교, 황해남도당학교를 비롯한 각 도당학교의 당 조직들, 정부 기관과 간부, 김일성종합대학, 김형직사범대학, 인민 경제대학, 평양건축대학 등 대학과 강반석고급중학교, 력포구역 장진고급중학교 등 중학교 교원 학생 등이 참가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정부 기관 간부들부터 도, 시당 간부들, 대학생, 중고등학생, 교원, 직장 등 대부분의 조직 기관 종사자들이 답사길에 동원된 겁니다.

12월에는 전국 각지의 청년 학생들의 답사소식이 많이 나옵니다. 12월 2일 [8시 보도]에 따르면 사회주의 애국청년동맹 소속 학생들이 500여 명이 답사행군에 참가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청년조직 간부들과 모범학생들이라고 북한TV는 전하고 있습니다.

북한 텔레비전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행군에 참여한 것처럼 보도했지만,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백두산 행군 시기와 규모 등을 정하면 여기에 맞춰 답사 행군단을 조직 동원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단 방침이 결정되면 해당 기관/단체책임자들은 답사 행군대를 ”경쟁적으로“ 조직한다고 합니다.

# “11월 상순에 비해 하순에 답사 인원 3배 증가”

북한 방송은 아직까지 올해 정확한 백두산 답사 참사 인원을 공개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북한 방송에서는 지난 2019년 12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모두 8만 4천 명이 답사길에 올랐다고 선전했습니다.

12월 3일자 노동신문은 지난 11월 상순에 비해 하순에 3배에 달하는 수많은 일꾼과 근로자, 청년 학생들이 백두산을 답사했다고 전합니다. 참가 조직들간에 경쟁도 벌어진다고 합니다.

백두산은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지역입니다. 9월부터는 눈이 쌓이기 시작하고 겨울이 되면 영하 3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이 많은데, 실제로 지난 30일, 백두산은 영하 36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여성들과 어린 학생들도 혹한 행군에 열외가 될 수 없습니다. 백두사 답사 행군길에 오른 한 청년 여성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강추위와 눈보라 강행군 길에 올라 걸어봤다”라면서 “처음에는 겁도 나고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지 근심도 했다”면서 솔직한 속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 1930년대 항일 빨치산 혁명사적지 ‘뿌리’ 찾기

통상적으로 백두산 행군 코스는 백두산 중턱의 ‘삼지연시’에서 출발해 김정일의 생가라는 ‘백두산밀영 고향 집’을 거쳐 김일성이 항일투쟁 사령부로 활용했다는 ‘귀틀집’으로 이어집니다. 2019년 12월 김정은이 그 아내 리설주와 함께 찾았던 그 경로입니다.

이밖의 답사 장소로는 김일성의 인민혁명군 부대가 하룻밤씩 머물고 갔다는 건창, 배개봉, 청봉등의 숙영지가 있습니다. 또 비밀 은신처인 밀영들도 있습니다. 김일성이 정치공작원들과 지하조직 책임자들을 만났다는 사자봉 밀영, 일본과의 최후결전을 앞둔 부대들의 집결처라는 간백산 밀영, 무기 수리고와 재봉소, 병원등을 갖춘 후방 비밀기지인 소연지봉 밀영 등입니다.

참가자들은 김정은이 찾았던 장소를 자신들도 방문했다는 점과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혁명의 뿌리가 계승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행군 참가자 :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다녀가신 사령부 귀틀집 뜨락에 휘날리는 붉은 기를 보니 정말 조선 혁명의 뿌리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대를 이어 계승되는가를 깊이 체득하게 됐습니다. ]

북한은 당과 국가, 군대가 백두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1930년대 김일성이 백두산에서 항일혁명을 하면서 군대를 만들고, 당조직을 운영하며, 나라를 찾아주었다는 겁니다. 2세인 김정일도 이곳에서 태어나서 백두산이 낳은 영웅의 자격으로 최고지도자가 됐고 3세인 김정은은 ‘백두혈통’을 통해 정통성을 물려받았다는 주장입니다.

## 백두산은 김정은이 중대 결심을 하는 장소

북한의 언론매체는 백두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정치·외교적으로 중대한 결심이 이뤄진다고 선전합니다.

김정은은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하기 직전, 측근들과 함께 백두산지구 삼지연을 찾았습니다. 김정일 3년 탈상을 마치기 직전인 2014년, 그리고 남북,북미 정상회담 과정을 시작하기 직전인 2017년 12월에도 백두산을 찾아 국정운영을 구상했습니다.

2019년에는 10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백두산 혁명사적지들을 방문하고 정상에 있는 천지도 올랐습니다. 10월에는 여동생 김여정과 현송월, 12월에는 부인 리설주와 군 간부들을 대동한 김정은은 이들과 함께 백두산에서 백마를 타고 질주했습니다.

이 때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하노이회담이 결렬되고 이후 스톡홀름에서의 실무 협상까지 실패하면서 북한이 대미정책을 전환하던 시기였습니다. 김정은은 백두의 칼바람 정신으로 난국을 정면돌파 할 것을 선언합니다.

## ‘백두산대학’에서 배우는 ‘수령 결사옹위’

이 때부터 북한의 백두산 행군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답사보다 더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김정은은 백두산 행군을 “백두산대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진짜 대학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백두산 행군을 통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체제의 정통성과 사상의 진수를 깨달아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혁명의 지휘 성원들은 백두산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노동신문은 지난 11월 30일 김정은의 백두산 등정 3년을 맞아 “백두산으로 가자”는 제목의 기사에서 "진정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따르는 길", "백두산 정신의 핵은 다름 아닌 수령 결사옹위 정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3년 전 김정은이 말을 타고 백두산을 달린 것을 “빨치산의 피어린 역사”라고 표현했습니다.

## 한겨울 백두산만큼 어려운 위기...1930년대 항일투쟁 정신으로 돌파하라!

북한이 굳이 한겨울 백두산에 주민들을 모으는 이유는 혹한의 추위와 어려움을 직접 체험해 위기 극복의 정신력을 기르기 위한 것입니다.

김정은은 2019년, “백두산에서 손발이 시리고, 귀뿌리를 도려낸 듯한 추위도 느껴봐야 그 추위가 얼마만큼 혁명 열을 더해주고 피를 끓여 주는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백두산 추위를 직접 겪어봐야 김일성의 항일투쟁이 얼마나 어려운 난관을 극복한 것이었는지 그 정신을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지난 10월 만경대혁명학원 연설에서는 빨치산 정신은 책이 아닌 백두산 답사를 통해 체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학생들이 각반을 치고 생 눈판을 헤치며 행군하고 자기 손으로 우등불을 피우고 밥도 지어먹으면서 항일 빨치산들이 지녔던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책의 글로써가 아니라 실지 체험을 통하여 심장으로 체득하는 과정으로 되게 하여야 합니다.]

백두산의 ‘칼바람 맛’을 알아야 항일 빨치산의 강인성과 투쟁성, 혁명성을 배울 수 있다는 김정은의 발언은 당시의 혹한과도 같은 북한의 현 상황을 헤쳐가기 위해서는 백두산 항일 빨치산 만큼 강인한 의지와 자력갱생 정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 다시 소환되는 1930년대 빨치산과 고난의 행군 정신

백두산 혁명사적지들의 대부분은 1938~9년 김일성이 이끌었다는 항일 빨치산 유격대의 활동장소입니다. 우리가 흔히 1990년대 북한의 경제난을 일컫는 용어로 쓰는 ‘고난의 행군’은 원래 1938년 12월부터 1939년 3월까지 김일성부대가 일본군의 토벌작전에 포위된 뒤 고난 속에서 포위망을 정면돌파했다는 100여일을 의미합니다.

2022년 지금도 1930년대 ‘고난의 행군’처럼, 1990년대 경제난처럼 북한을 포위한 위기를 정면돌파하자는 메시지가 ‘백두의 칼바람 정신’이라는 말 속에 녹아 있습니다. 현재의 심각한 경제난과 대외적인 압박 속에서도 김정은을 믿고 따르면서 자력갱생의 노력을 다 하면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 백두산 대학, 백두산 행군에 담긴 뜻입니다.

지난 11월 30일 노동신문은 “험준한 산발과 아득한 천리수해, 사나운 눈보라 속에서 폭풍에도 굽힘없을 필승의 신념과 의지를 더욱 굳건히 다지며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가고 또 가자”고 언급합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코로나 셀프 봉쇄, 미국 등 국제사회의 군사적 압박 속에서 다중적인 위기에 직면한 북한은 스스로를 눈보라치는 혹한의 백두산을 오르는 상황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2022년, 미국을 겨냥한다면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고 첨단무기를 자랑하고 있지만 주민들에게는 1930년대식 자력갱생과 수령결사옹위 정신, 사상의 힘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현실이 백두산 답사 행렬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유찬 기자(yucha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434919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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