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파티·선물’이 있어 행복한 캐나다의 크리스마스[다른 삶]

기자 2022. 12. 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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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제의 ‘경계인’

토론토에 살러 오니 이곳의 12월은 한국과 여러모로 달라 보였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나는 해마다 연말이면 각종 송년 모임에 참석하느라 늘 정신없이 지냈던 것 같다. 회사에서는 부서별로 송년회를 열었고, 연말을 핑계 삼아 이런저런 사람들을 찾아서 술자리를 만들곤 했다. 12월에는 평소 보기 어려운 친구들 만나기도 좋았다. 해 넘기기 전에 얼굴 한번 보자는 말에는 모두가 잘 움직였다. 12월 한 달 동안은 그렇게 바깥으로 나돌며 술자리를 갖느라 언제나 바빴다. 1990년대 직장인으로서 그랬다는 얘기다.

우리 동네 어느 집의 크리스마스 장식. 12월이 되면 마치 월동 준비를 하듯 이런 장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로서는 처음 접했던 캐나다의 12월 분위기는 한국과 달랐고, 캐나다의 다른 달과 비교해도 뭔가 특별했다. 먼저 한국과 비교하자면 캐나다에서는 ‘크리스마스’라는 날을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야 성탄절이 특정 종교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 연말과 이어지는 조금 더 특별한 ‘휴일’이겠으나, 이곳에서는 한국의 설이나 추석 ‘명절’ 같은 느낌을 주는 날이다. 12월 들어 한국의 송년회처럼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는 것은 비슷하지만, 선물 문화라든가 크리스마스를 반드시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은 특이해 보였다. 선물 없이는 ‘명절’을 맞이할 수 없다는 듯 이곳 사람들은 모두들 열심히 선물을 준비한다. 그것은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마찬가지이다. 최근 들어 “메리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해피 홀리데이”라는 인사말이 많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이곳의 크리스마스도 한국처럼 종교 색채가 많이 흐릿해진 것 같기도 하다.

12월이 되면 분위기는 다른 달과 확연하게 달라진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관공서나 은행, 학교, 쇼핑몰 같은 공공장소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일반 사람들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띄우는 것은 마찬가지. 11월 중순쯤 되면 우리 동네에서도 집 앞의 큰 나무나 지붕에 사다리를 걸치고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사람들이다. 해마다 그들은 그것을 월동 준비하듯 한다. 어떤 집은 전구로 집 전체를 덮게 꾸며서 밤에 사람들이 구경을 하러 가기도 한다. 동네 분위기가 그러면 나처럼 그런 장식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무심결에 따라 하게 되어 있다. 어느 해부터인가 우리 집도 문 앞에 크리스마스 리스를 걸기 시작했다.

12월에는 다른 음악은 음악도 아니라는 듯 어디를 가든 캐럴만 들린다. 라디오도 마찬가지이다. 옷을 파는 우리 가게에서도 캐럴만 틀어놓는다. 그냥 남들이 하니 따라 하게 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가게 분위기를 띄우는 데 캐럴만 한 것도 없었다. 손님들로 하여금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도록 부추기는 분위기 말이다.

크리스마스 장식이나 음악 말고도 12월이면 특별히 부각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빨강과 초록, 진노랑 같은 12월 색깔들이다. 캐나다가 단풍나라인 까닭에 사람들이 빨간색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12월에 들어서면 빨간색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띈다. 빨간색이 검은색(사시사철 가장 인기 있는 색깔이다)과 같은 지위에 오르는 시기가 이즈음이다. 초록과 진노랑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도 12월이 유일하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가 있는 12월이 되면 아무래도 사람들 마음이 들뜨게 마련.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들을 보면 12월에 대한 기대와 설렘부터 즐긴다. 즐겨도 아주 열광적으로 즐긴다. 파티를 준비하며 물건을 사는 모습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첫 번째 이벤트는 주로 12월 초·중순에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여한다. 파티 문화라고는 모르고 살던 나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파티를 즐기게 되었으니까.

한국 살 때 송년 술자리 갖느라 바깥으로 나돌며 바빴던 12월과 달라
크리스마스 파티에 처음 가서 댄스타임 보며 ‘뻘쭘’…이젠 나도 즐겨

파티는 그 성격도 그렇고 규모도 다양하다. 직장에서, 동호인이나 친목 모임에서, 그리고 가족끼리 하는 크고 작은 파티가 있다. 돌이켜 보니, 캐나다에 건너온 해부터 나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2월 파티에 참여해왔다. 파티의 종류도 다양했다. 규모가 제법 큰 학교 동창회 파티, 가까운 친구들끼리 여는 작은 파티, 그리고 가족 파티. 때로는 비즈니스와 관련한 파티에 초대받기도 했다.

토론토의 구세군 자선냄비. 어느 쇼핑몰에서 바이올린으로 캐럴송을 연주하며 모금을 하고 있다. 장난감을 모으는 것도 특이한 광경이다. 냄비의 모양이나 모금하는 방식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

처음에는 이런 파티 문화가 참 낯설었다. ‘파티’라고 이름 붙이고 어른들이 모여 노는 대규모 행사는 토론토에 와서 처음 경험했다. 학교 동창회에서 주최한 파티이다. 토론토에서 일반 친목 모임은 한국 식당 같은 곳에서 조촐하게 열기 마련이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나온 학교의 동창회 모임은 늘 참가자가 많아서(200명 가까이 나온다) 연회장(Banquet Hall) 말고는 그 인원을 수용할 장소가 없다.

이민을 온 첫해에 동창회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갔다가 나는 일종의 문화충격을 받았다. 토론토 한인들이 참여하는 송년 파티는 한국에서 내가 한 번도 접하지 못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술자리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부부동반도, 드레스코드도 그랬다. 파티복이 없으면 정장 차림이라도 해야 한다. 경조사를 제외하고 1년에 딱 한 번 넥타이를 매는 날이 바로 12월 학교 동창회의 크리스마스 파티이다. 친목 모임의 송년회이니 한국의 술자리와 비슷하리라 여기고 혼자 가거나 드레스코드를 무시했다가는 나 홀로 ‘뻘쭘’해지기 십상이다. 파티를 열 때마다 이런 사람들이 한두 명은 꼭 등장한다. 주로 이민 신참자들이다.

참가비 또한 적지 않다. 코로나19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열리지 못했으나, 그 직전에는 1인당 100달러쯤 했다. 부부가 참석하면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이민 첫해에 그런 부담을 무릅쓰고 그 파티에 간 까닭은 생소한 문화를 접하고 익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를 익혀야 사람들과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12월 들어 우리 동네에 등장한 크리스마스 리스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는 집들도 있고, 간단하게 크리스마스 리스를 내거는 집들도 많다.

막상 나가보니 파티라는 용어도 낯설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더 낯설었다. 테이블에 부부 네 쌍이 앉아서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다. 식사 뒤에 본격적인 파티가 이어지자 나는 갑자기 이방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DJ(였는지 ‘밴드’였는지 기억이 분명치 않다. 첫해가 DJ였다면 이듬해는 밴드였을 것이다)가 등장해 음악(주로 한국의 댄스음악)을 내보내기 시작하자 연회장 한가운데 있는 마룻바닥 위에서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경이로웠다. 30대에서 70대까지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춤을 추는 광경을 나는 처음 보았다. 어색해하는 사람은 나 같은 신참들뿐이었다.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분위기를 즐겼다. 파티복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이 특히 좋아 보였다. 왜 드레스코드를 강조했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춤을 추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여 플로어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문화에 젖어들어야 비싼 돈을 내고 참가한 보람이 있을 터인데, 그래야 사람들과 좀 더 친해질 수 있을 터인데, 좀체 그러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기우였다. 여러 해 접하다 보니, 어색함이 사라지고 나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플로어에 나가 춤을 추는 것도 즐길 수 있고, 연로한 선배님들과 라인댄스를 추며 어울리는 것도 퍽 재미있었다.

파티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의 12월 문화 가운데 생소하고 놀라운 것은 또 있었다. 바로 선물 문화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한국과 많이 달랐다. 사람들은 12월만 다가오면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선물을 준비한다. 우리 가게의 12월이 연중 최고의 대목이 되는 것도 사람들이 선물을 사기 때문이다. 우리 가게에는 12월 중에서도 24일 오후에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린다.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른바 ‘라스트 미닛 쇼핑’을 하러 헐레벌떡 뛰어오기 때문이다.

이민을 온 첫해, 아이의 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선물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 들었다. 선생님에게 주는 선물을 다소 예민하게 여기는 분위기에서 살다 온 한국 이민자로서는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쉽고 간단하게 말했다. “20달러 정도 하는 선물을 사면 돼.” 선물을 준비하고 감사 카드를 써서 아이를 통해 보내면 선생님은 감사 카드를 아이를 통해 보내왔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이곳의 이런 선물 문화에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화한 느낌이 든다. 12월에 모임을 갖게 되면 서로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평소 존경하고 따르는 어른들께 감사 카드와 선물을 준비해 인사를 드리는 것도 바로 12월 크리스마스 직전이다.

우리 가족들끼리도 어느 해부터인가 선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산타클로스의 실체를 알고 난 다음에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선물을 그냥 사주었으나, 아이들이 크면서부터 가족들이 서로에게 주는 선물을 마련해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놓기 시작했다. 가족 중에 누가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그렇게 놓였고 12월24일 밤 가족이 그 앞에 모여 함께 풀어본다. 연중 가장 귀하고 행복한 시간이다. 이런 특별한 가족 이벤트 때문에 12월24일 밤에는 가족 외의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캐나다의 12월이 또 특이한 것은 12월25일 성탄절에 분위기가 절정에 이른 뒤 연말 분위기가 푹 가라앉는다는 사실이다. 직장인 대부분은 연말까지 휴가에 들어가고 학교는 짧은 방학을 맞는다.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은 12월24일이면 한 해 장사가 끝났다고 여긴다. 가게를 열기는 해도 1월1일까지는 개점 휴업이나 마찬가지이다(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와 비슷한 12월26일 캐나다 박싱데이에는 대형 쇼핑몰만 붐빈다. 요즘은 캐나다에서도 블랙프라이데이가 박싱데이보다 점점 더 비중이 커지는 추세이다).

작년 12월만 해도 오미크론 변이가 등장해 크리스마스 시즌이 꽁꽁 얼어붙었었다. 지금도 다시금 코로나19가 기승이고 어린이 열감기 환자가 급증해 병원이 비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올해는 ‘캐나다의 12월’이 되살아난 느낌이 든다. 12월 초부터 선물을 준비하는 가게 손님이 많아졌고 “파티에 간다”며 자랑하는 손님도 여럿 보았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상이 회복된 것처럼, 토론토의 12월도 그런대로 되돌아왔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6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 단행본 5권을 냈다.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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