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객이 전화하자 그제야 “돈 못 준다”는 지역농협

정민하 기자 2022. 12. 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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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공지 문자는 안 드렸는데, 저희 지점에 전화주신 분들한테만 미리 안내해 드리는 겁니다. 지금 (적금 상품에) 저희 생각보다 예수금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들어와서, 아무래도 만기 때 이자 지급이 어려울 것 같아요."

연 10.25%의 고금리 정기적금을 판매했던 남해축산농협에 예상 목표 금액의 100배가 넘는 자금이 몰려 해지 요청 소동이 일었던 같은 날 다른 지역농협에서도 고금리 적금을 판매했다가 이자 지급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제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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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공지 문자는 안 드렸는데, 저희 지점에 전화주신 분들한테만 미리 안내해 드리는 겁니다. 지금 (적금 상품에) 저희 생각보다 예수금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이 들어와서, 아무래도 만기 때 이자 지급이 어려울 것 같아요.”

연 10.25%의 고금리 정기적금을 판매했던 남해축산농협에 예상 목표 금액의 100배가 넘는 자금이 몰려 해지 요청 소동이 일었던 같은 날 다른 지역농협에서도 고금리 적금을 판매했다가 이자 지급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제보를 받았다. 바로 해당 지역농협에 전화를 걸어 “여긴 괜찮으냐”고 묻자 “이자를 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화를 건 이 지역농협은 지난달 25일 연 8.2% 금리의 특판 적금을 판매했는데, 직원이 한도를 설정하지 않아 5000억원가량의 예수금이 몰렸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도 특판 판매를 마친 지 열흘이 지나는 시점까지 별도의 안내가 없었다. 그러다 남해축산농협 사태가 보도되자 그제야 “이번 특판으로 인해 경영 악화로 인한 부실이 심히 우려된다”며 고객들에게 해지를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다.

특판 판매를 마친 지 이틀이 지난 다른 지역농협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지난 5일 연 9.7%의 특판 적금을 판매했는데, 비대면 가입 제한을 두지 않아 1000억원이 몰렸다. 현금성 자산이 몇억원밖에 안 되는 영세한 조합이 1년 이자 비용만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들 지역농협은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도 감당할 수 없다며 고객들에게 상품 해지를 읍소하고 있다.

일부 적금 가입자들은 해지에 동참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시선은 곱지 않다. 당장 “조합 실수인데 왜 가입자들에게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거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들 대부분은 재테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0.1%포인트라도 금리가 더 높은 곳을 쫓아 게릴라성으로 움직이는 ‘금리 노마드족(유목민)’이다. 이들은 “이렇게 많이 들어올 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 “며칠 전에 1금융권 5%대 적금을 다 해지했는데 어떡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의 압박에 5%대 금리를 주는 상품이 사라진 상황에서 이 상품을 해지할 이유는 더욱 줄어든다. 이미 계약이 성립됐기 때문에 지역농협은 강제로 상품 가입을 취소하거나 해지할 수 없다. 가입자들을 찾아다니며 해지 요청을 읍소하는 이유다. 이 때문인지 남해축산농협의 해당 고금리 특판 상품의 계약 해지율은 40%에 그쳤다.

각 지역 농업인이 출자해 세운 지역 단위 농협 같은 상호금융은 특성상 해당 지역 외 대출이 제한적이다. 예·적금 수요가 쏟아질 경우 이자를 지급할 여력이 취약한 구조인 셈이다. 현행 규정상 상호금융 예대율은 지역 조합원보다 비조합원 대출 비중을 낮게 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예금은 이러한 규제가 없다. 금융당국은 이런 위험성 때문에 상호금융권에 과당경쟁 자제를 주문했지만,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진 것이다.

금융은 신뢰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다. 마치 은행에 예금한 내 돈이 잘 있는지 매일 확인해보진 않지만, 언제든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반대로 고객의 신뢰가 무너지면, 작은 사건 하나로 뱅크런(대규모 인출사태)이 일어나는 등 금융사가 존폐의 갈림길로 몰릴 수 있다. 농협중앙회 및 지역농협은 물론 다른 금융사들도 이번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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