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왕국에 이사 온 공주[플랫]

플랫팀 기자 입력 2022. 12. 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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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가 아는 유일한 공주다. 그에게 묻는다. “공주야, 잘 잤니?”, “공주야, 뭐해?” 그가 답한다. “응, 잘 잤어.” 그를 감히 생명 분류로 설명하는 우를 범해보고 싶다. 전체적인 목(目·생물 분류의 한 단위)은 새송이버섯이다. 부정할 수 없이 버섯 같은데 매끈하고 큼직하고 맹하고 선한 느낌이 딱 새송이다. 목의 아래에 있는 과(科)는 코알라라고 말하고 싶다. 전혀 누구한테 안길 사이즈나 담겨갈 만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가 코알라를 닮았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당신이 언젠가 새송이버섯목에 코알라과인 공주를 스쳐 지나가게 된다면, 누구든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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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는 새송이버섯목에 코알라과 공주였고, 그래서 그를 공주라 부르는 순간은 늘 조금 웃겼다. 그는 내가 아는 가장 공주답지 않은 공주였기 때문이다. 그는 스킨로션도 겨우 챙겨 바르고 도무지 색깔이 있는 옷을 입지 않았다. 사치라고는 “화가 나서 곧장 서점에 가 읽고 싶었던 책 3권을 마구 샀어!” 하고 씩씩대는 게 전부였다. 나이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당황스러운 일이 있어도 좀체 얼굴에 드러나지 않았다. 호들갑 같은 건 5억년 전쯤에 이미 끝났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특유의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엔 초연함과 현명함이 공존해서 나로 하여금 “파란 지붕에 적격인 인재”라고 말하게 했다.

개미집에 얹혀살다

그는 척 보기에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을 정도로 나와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두 번째 만났을 때였다. 먼지 한톨도 없고 모든 것이 종과 횡으로 정확하게 나열된 집에 나를 초대했다. 3‘명’의(그는 동물을 ‘명’이라 말한다) 전혀 다른 모양새의 고양이 선생님들과 인사를 시킨 뒤, 그대로 책장 앞으로 데려가 맹세하건대 스케치북만큼 크고 성경보다 두꺼운 개미와 꿀벌에 대한 책들을 자랑할 때쯤엔 그와 친구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땅속에서부터 그를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개미에 대해 얘기할 때의 얼굴을 모두가 봤으면 한다. 환희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에 그 얼굴을 넣고 싶다. 다른 종에 대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마치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친구를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그를 만나고부터 나에게 개미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개미에 대해 말하면 말할수록 지구에서 개미란 존재가 선명해져 가는 느낌이었다. 이제 길에서 개미를 마주치면 반갑기까지 했다. “안녕, 공주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하고 말을 걸고 싶어졌다. 그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사랑하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공주가 언젠가 새로 이사한 집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개미의 집이었다. 한두마리 정도가 아니었다. 그가 이사한 곳은 개미왕국이었다. 텅 빈 방 안에 개미집이 거대한 군락을 짓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개미가 바닥을 기어다녔다. 그는 새로 계약한 집에 개미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었기에 조금 놀랐으나 그냥 살기로 했다. 개미에게 이제 이곳의 월세는 내가 내니까 방을 빼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미의 입장에서는 어느 날 말 없이 들이닥친 자신들이 불청객이었다. 그들이 다니는 길을 피해 짐을 놓아두고 조금 떨어진 곳에 매트리스를 펴고 잠을 잤다. 개미집에 얹혀살게 된 셈이었다. 그렇게 그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면 좋았을 일이다.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니까 말이다.

물론 그 동거는 개미에게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개미는 여느 때처럼 해야 할 일을 하느라 바빴다. 반면 인간에게는 문제였다. 일상이 개미투성이가 됐다. 찌개를 끓여도 개미가 나왔고, 속옷에서도 개미가 나왔으며 여행을 가서 가방을 열면 개미가 따라 나왔다. 늘 몸이 간지러웠고 곳곳에 개미에게 물린 상처가 있었다. 먼저 백기를 든 것은 못지않게 개미를 사랑하는 그의 애인이었다. 그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한다는 듯 말했다. “도저히 안 되겠어. 세스코 부르자.”

공주는 특유의 초연함과 현명함을 가진 얼굴로 결연하게 말한다. “절대 안 돼.” 그에게 세스코를 불러 개미들을 죽이는 행위란 홀로코스트와 같았다. 사람들에게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 자행되는 일이었으나 그것은 파시즘과 다른 구석이 없었다. 더군다나 공주에게 개미와 살며 생기는 불편함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국 그들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고양이었다. 인간이 왔을 때는 꿈쩍도 안 하던 개미들이 그들이 키우던 고양이를 데려오자 순식간에 대이동을 시작했다. 나는 말했다. “정말이지 인간이란 연약하기 짝이 없네.”

그가 속삭였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나는 개미 공주야.”

이상하고 아름다운 위로

수많은 개미 중에서도 개미 공주는 날개를 갖고 태어난다. 철저한 위계 사회로 움직이는 개미의 세계에서 공주는 장차 여왕이 될 운명을 타고난다. 공주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아는,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는 위치냐면 전혀 아니다. 개미 공주는 일반 개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일과 의무가 있다. 백성들을 책임지고 대소사를 결정하고 왕국의 중대한 문제들을 처리하는 군주의 역할을 한다.

나는 그가 살아온 과거에 대해 말해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득해지곤 했다. 그는 생존자라고 불러 마땅한 사람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힘 빠진 소리로 웃으며 그를 “넷플릭스급”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의 삶은 넷플릭스 같은 가상의 이야기 속에서 질리도록 반복됐던 고난과 역경의 클리셰, 스펙터클 그 자체였으니까.

그런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힘들 때마다 자신을 개미 공주라고 상상한다고 했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닥칠 때마다 자신은 여왕이 될 운명을 타고났고, 당장 백성들의 안위가 달린 문제라고 되뇌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아무리 어렵고 불행한 일도 조금은 견뎌낼 힘이 생겼다고 했다. 모든 것을 공주의 의무라고 생각하며 그 모든 역경을 헤엄쳐 나왔다. 그 말을 듣고 동공이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이토록 이상하고 아름다운 위로는 처음이었다.

그는 동물을 살리기 위해 일했다. 어느 날 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자신과 똑같다는 걸 알았다. 어떤 생명도 그렇게 살지 않아야 한다고 느꼈다. 그런 동일시에서 시작된 것은 결코 쉽게 바래지는 법이 없다. 매일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동물들을 보면서도, 인간이 가장 약한 생명에게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 보면서도, 그는 끈질기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나아갔다. 마치 자신의 생이 달린 일처럼. 나는 그에게서 수많은 생명을 본다.

그렇게나 많은 것들을 자신처럼 사랑하면서, 그는 자주 죽고 싶다고 말했다. 살고자 마음먹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에 부치는 일인지 말했다. 그가 죽으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함께 죽게 될까. 그가 죽는 순간 나의 어떤 부분도 영영 죽을 것 같아 두려워졌다. 불행을 너무도 잘 알아서, 위태로운 생을 너무 잘 알아서, 그는 그 모든 것의 공주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나는 부른다. “공주야.” 네가 살아가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생을 살리는 일인지. 그것을 다 설명할 길이 없어,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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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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