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권의 뒤땅 담화] 골프장 그린피 드디어 꺾였다

2022. 12. 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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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좋아하는 한 부부는 한 달 일정으로 현재 필리핀에 머문다. 골프장 주변 리조트에 숙소를 정해 골프와 여행으로 시간을 보낸다.

직장 선배는 지난달 일본에 보름간 체류하면서 현지에서 직장을 잡은 아들과 틈만 나면 골프를 했다. 골프 한 번에 식사비 포함해 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또 다른 골프 멤버는 12월 초부터 보름간 태국 방콕에 7팀 투어 일정을 잡아놨다.

국내 골퍼들이 속속 외국으로 빠져나간다. 동절기로 접어든 데다 국내 평균 그린피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부킹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물론 오전 9시~낮 12시 황금시간대 예약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그 외 시간대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부킹 타임 열자마자 순식간에 없어지던 예전과는 다른 양상이죠.”

여주 소재 한 골프장 지배인의 얘기다. 새벽 시간과 오후 1시대는 당일 가까워서야 예약된다. 일부 시간대에는 할인혜택도 준다.

기세등등하던 골프장 그린피 상승세도 꺾였다. 이는 골프 예약 사이트 XGOLF가 2021년과 2022년 9월 전국 골프장 그린피에서 감지됐다.

XGOLF는 전국 골프장을 수도권,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 권역별로 나눠 총 184개 골프장의 실제 그린피를 조사했다. 골프장 홈페이지 가격이 아닌 사이트에서 골퍼들이 실제로 결제한 금액이다.

이에 따르면 급등하던 그린피 상승세가 가라앉으면서 안정세다. 2년간 그린피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충청 지역 그린피 하락이 두드러진다.

충청도는 수도권 골프장을 예약하지 못한 골퍼들이 몰려 그린피가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2배 이상 치솟았다. 작년 9월 충청도 주중 평균 그린피는 15만1033원이었지만 올해는 평균 14만4784원으로 4.1% 하락했다. 주말은 작년 평균 19만5575원에서 올해 18만3774원으로 6% 내렸다.

가장 크게 내린 곳은 강원도 골프장. 작년 9월 주중 평균 16만1324원이었다가 올해 9월엔 평균 15만3634원으로 4.8% 내렸다. 주말은 작년 평균 20만7486원에서 올해 평균 19만1172원으로 7.9%나 떨어졌다.

경상도와 전라도는 지난해보다 10%가량 올랐지만 전국에서 가장 낮은 평균 그린피여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올해 전국 평균 그린피는 주중 15만2487원과 주말 18만8364원으로 각각 2.9%, 0.8% 증가하는 데에 그쳤다. 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인다.

강원도 한 골프장 대표는 “지난 2년간 골프 특수는 다시 오기 힘들다”며 “내년부터 골프장마다 그린피 할인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남아와 일본이 코로나 검사와 격리를 해제하고 골퍼와 여행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2박3일 골프투어를 가면 항공료와 숙식비 포함해 제주도나 우리 남해안 지역 골프장보다 싸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 급락에다 경기 침체 심화도 그린피 인하를 부채질한다. 올겨울을 기점으로 그린피는 급속히 떨어질 것으로 골프장업계는 전망한다.

골프 수요 감소는 중고채 시장에서 이미 포착됐다. 최근 당근마켓에 테일러메이드 신형 드라이버가 중고 물품으로 올라왔다.

상반기만 해도 없어서 못 사던 베스트셀러였다. 꺾일 줄 모르고 치솟던 골프 수요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경고다. 골프용품업계에 따르면 골프채 수요 상승세가 확실히 꺾였다. 여성용 젝시오 아이언이나 타이틀리스트 퍼터 등 인기상품을 제외하고 신규 골프채를 사려는 사람이 확 줄었다.

신세계백화점은 마제스티 신제품을 독점 판매해 월별 매출은 상승했지만 신제품 출시 이벤트를 빼면 작년에 비해 소폭 증가했을 뿐이다. 골프존마켓 등 골프용품 전문 유통회사들의 재고 부담은 점점 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채 시장은 골프 수요와 밀접하다. 초보 골퍼들이 고가 신형을 샀다가 그만둘 마음에 밑지더라도 중고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서울 강남 골프숍 관계자는 “주중 한 번 골프에 30만원을 감당할 골퍼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특히 2030 골프 초보들은 골프 대신 해외여행으로 빠져나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골프장 회원권 가격도 완연한 하락세다. 원래 회원권 보유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그린피로 예약 걱정 없이 골프장을 이용한다. 회원권은 시세 차익을 얻는 투자상품이기도 하다.

“자유CC 회원권을 2억원 중반대에 샀다가 16년간 급락해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올여름 눈 감고 본전 수준에서 팔고 나왔어요. 지금은 4000만원 정도 떨어졌네요. 탈출에 성공했죠.”

골프장 거리도 멀고 회원 부킹도 원활하지 않아 처분했다는 회원권 보유자의 말이다. 수년간 치솟던 골프장 회원권 가격이 급락 중이다. 추락하는 주식, 부동산과 동조화(커플링) 현상을 보인다.

골프장 회원권 시세를 소개하는 에이스회원권에 따르면 경기 광주시 이스트밸리CC 회원권은 지난 6월 23억원에서 8월 20억원, 10월 16억6000만원대까지 떨어졌다.

경기 용인시 남부CC는 6월 24억6000만원 선에서 8월 26억4000만원대까지 치솟았다가 이달 23억2000만원대로 주저앉았다. 남촌CC도 6월 21억원에서 7월 22억6000만원, 10월 19억8000만원으로 낮아졌다.

사실 이들 고가 회원권은 말만 최고가이지 실제 거래는 거의 없다. 이런 하락세는 골프 열기가 가라앉으면서 거품이 빠지는 신호다. 골프장 회원권이 돈값을 못하는 것도 원인이다. 그린피를 높여 받는 비회원에게 부킹 할당량을 많이 돌려 회원권 부킹 이점이 갈수록 줄어든다. 워낙 많은 팀을 받다보니 코스 상태도 나빠진다.

골프장 인수합병(M&A)에 가득 낀 거품도 확 사라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고금리 시대에 막대한 인수자금을 동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랜 저금리에다 코로나19 사태 기간 부르는 게 값이던 특수도 끝나간다. ‘오늘이 바로 골프장 회원권과 골프장 인수 가격이 고점인 날’이 매일 반복될 수 있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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