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주차에 녹물 나와도 참고 살라던 우리집’…“이제 재건축 합니다” [부동산360]

입력 2022. 12. 9. 12:56 수정 2022. 12. 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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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진단’ 규제 완화…시장 기대감 커져
무너질 위험 없어도 주거환경 열악하면 재건축 가능
도심에 양질의 주거공급 ‘씨앗’ 되길
정부가 8일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준공 후 30년이 넘어선 단지들의 재건축 추진이 빨라질 전망이다. 사진은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아파트가 오래돼 낡고 불편해지면 고쳐 쓰거나(리모델링) 새로 지어(재건축) 써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재건축은 입주민이 원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법으로 기준을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일단 30년 이상 지난 오래된 아파트여야 합니다.(재건축 가능 연한) 이들 중에도 건물에 균열이 생기는 등으로 안전하지 못하고(구조안전성), 주차, 층간소음, 난방, 급수 등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오래됐으면서도 쓸 만하지 않아야 재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재건축을 하려면 우리 아파트가 쓸 만하지 않다는 걸 증명해야 합니다. 재건축 첫 번째 단계인 ‘안전진단’은 이걸 증명하는 절차인데요. 이게 늘 논란의 중심이 됐습니다. 정부가 안전진단 세부 항목의 비중을 변동시켜 재건축을 규제해 왔기 때문입니다.

좀 자세히 보면 이렇습니다. 안전진단은 기본적으로 ‘구조안전성’, ‘주거환경’, ‘설비노후도’, ‘비용분석’이라는 4가지를 평가합니다. 구조안전성은 말 그대로 구조적인 결함으로 붕괴위험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건물이 기울어 졌다거나, 균열이나 철근 부식이 생겼는지 등을 봅니다. 주거환경은 주차대수·생활환경·일조환경·층간소음·에너지효율성 등에 문제가 있는지 보는 거고요. 설비노후도는 난방·급수·배수 등 기계설비, 전기소방설비 등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비용분석은 건물 구조체의 보수·보강비용과 재건축 비용을 분석해 재건축의 타당성을 따지는 겁니다.

여기서 늘 문제가 되는 게 ‘구조안전성’ 비중 변화인데요. 이를 높이고, 다른 기준의 비중을 낮추면 재건축 규제 수단이 됩니다. 아무리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설비가 낡아 생활하는데 불편해도 무너질 위험이 없으면 재건축을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3월 정부는 구조안전성 비중을 50%까지 높였습니다. 주거환경(15%), 설비노후도(25%) 기준으론 재건축이 필요한 수준이어도 구조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재건축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구조안전성 비중을 낮추고 다른 기준을 더 중요하게 따지면 재건축은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5월 구조안전성 비중은 20%까지 내리고, 주거환경(40%)이나 설비노후도(30%) 기준은 대폭 높였습니다. 입주민이 생활하는 데 불편하면 튼튼한 아파트도 재건축이 가능해 지니 재건축 추진 단지는 늘어났습니다.

두 시기 안전진단을 통과한 단지 수를 비교하면 차이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구조안전성 비중을 20% 적용했던 2015년 5월부터 2018년 2월까지 34개월 간 전국 재건축 추진 단지 중 안전진단을 통과한 곳은 139개단지(연 49건)였습니다. 서울 만해도 59건(연 21건)이나 됐습니다. 하지만 구조안전성 비중 50%로 높인 2018년 3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56개월 간 안전진단을 통과한 건수는 전국 기준 21건(연 5건)에 불과했습니다. 서울은 7건(연 2건)밖에 안됐습니다. 이 시기 사실상 재건축이 멈춰 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내년 1월부터 구조안전성 비중을 다시 30%로 낮추기로 한 건 재건축 활성화 대책으로 의미가 큽니다. ‘주거환경’과 ‘설비노후도’ 비중을 각각 30%씩으로 높여 두 기준만 합해도 60%가 됐으니, 앞으론 구조 안전에 문제가 없어도, ‘열악한 주거환경’이란 이유만으로도 재건축의 첫 단계를 통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번 조치로 재건축 시장이 활기를 띨까요? 요즘 침체된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좀 부정적입니다. 재건축을 해봐야 비용만 들어가고 집값은 계속 떨어진다면 적극 나설 집주인은 별로 없을 겁니다.

안전진단은 사실 재건축의 가장 첫 번째 단계에 불과합니다. 안전진단을 통과하고도 평균 10년 이상 지나야 새 아파트가 지어집니다. 그 사이 시장 상황은 변하고 관련 제도도 계속 바뀝니다. 권혁진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이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저희들은 씨앗을 뿌려 놨다고 생각합니다. (주택시장이 침체된 상태여서) 아무리 뿌려도 겨울에는 발아가 안 됩니다. 감히 말하면 주택경기는 언제든 얼어붙고 다시 여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때일수록 공급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 전문가는 이번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에 대해 규제를 완화한 게 아니라 정상화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사업을 아예 못하게 했다가 사업을 할 여건을 만들어 준 차원이라는 겁니다. 물론 사업할 여건이 됐다고 돈을 벌 상황이 아닌데, 너도 나도 사업에 나서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권실장의 말처럼 이번 조치는 시장에 중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겁니다. 주택공급이 부족한 도심에 양질의 주택공급의 씨앗이 되길 기대합니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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