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친구 딸과의 만남

2022. 12. 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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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

예쁘고 똑똑했던 어릴적 친구

지천명 앞두고 세상 떠나 충격

친구 어린딸 고통 이기고 장성

가정까지 꾸리는 것 보며 뿌듯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 하니

힘든 모든 사람들 잘 이겨내길

한 해가 저물어갈 때면 습관처럼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올해만이 아니라 오래전으로 거슬러가기 일쑤인데, 요즘 들어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던 그때가 새삼 그리워진다. 서울에서 한 세대 이상 사는 동안 많은 사람과 친해졌고 허물없이 지내는 이들도 있지만, 딱 하나 아쉬운 건 단짝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 때나 “뭉치자” 한마디에 무조건 달려 나와 대수롭지 않은 일에 까르르 넘어갔던 날들이 그립기만 하다. 어른이 되면서 약속하고 만나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서일까.

바쁘게 살다가 한숨 돌렸을 때쯤 울산으로 연락해서 예전의 단짝 두 명과 통화하고 가끔 만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중병으로 앓아눕더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례식장에서 친구의 딸이 눈물 흘리는 걸 보면서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들었다. 지천명(知天命)을 앞둔 나이에도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방방 뛰었던 내가 그제야 철이 든 것이다. 그때까지 엄마한테 어리광을 부리곤 했던 나는 엄마와 너무 빨리 이별한 친구의 어린 딸을 보며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고등학생이었던 친구 딸은 그해 입시에서 실패하고 이듬해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미술대학에 당당히 합격했다. 가끔 만나 식사하면서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이모, 내 친구들이 어떻게 엄마 친구와 만날 수 있지라고 했다”며 웃었다. 하긴 나의 지인들도 “친구 딸하고 무슨 얘기를 하지?”라며 갸우뚱거렸지만, 우리에게는 공통 화제가 있어서 어색할 틈이 없었다. 친구 딸을 만나면 “내가 예전에 너네 엄마 때문에 자격지심 왕창 느꼈잖아”라며 기를 살려주곤 했다. 친구는 늘씬한 키에 미모까지 갖춰 미스코리아에 출전하라는 권유를 받는 수준이었다.

“야, 너네 엄마 보면서 나는 외모로 승부하는 타입이 아니니까 하고 나를 위로했는데, 너네 엄마가 공부까지 잘해 의사가 되다니 참. 진짜 사람들 기죽이려고 태어난 게 분명해.”

내 얘기에 친구 딸은 “맞아요. 우리 엄마가 여럿 기죽였고, 저도 기죽을 때 많았어요”라며 즐거워했다. 친구는 정신과 전문의였는데 병석에 눕기 직전까지 알코올의존증 환자들의 재활치료를 위해 시간을 쏟았다. 환자들과 합창을 연습해 크리스마스 때 병원에서 발표회까지 했던 일화를 친구 딸과 즐겁게 나누곤 했다.

먼저 간 친구를 못 잊는 건 내 인생을 재정비하게 해준 측면도 있지만, 내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이기 때문이다. 첫 장편소설 ‘17세’의 도입 부분이 나의 성장 과정과 유사한데, 소설 속 무경이를 다시 공부하게 만들어준 하영이의 모델이 바로 그 친구다.

‘포기하진 않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 고약한 습성에 따라 공부를 해야겠다는 각오를 늘 다지면서도 탱자탱자 놀기만 했던 내 20대의 어느 날, 느닷없이 친구가 찾아왔다. 전투적으로 다녔던 의과대학을 잠시 휴학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내가 운영하던 피아노 교습소에 며칠 드나들던 친구는 내 최종 학력을 인지하고 “어릴 때 공부도 잘하고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은 네가 왜 이러고 있냐”고 물었다.

상업학교에 가기 싫어 부모님 몰래 시험을 치지 않았던 내가 몇 년 놀다가 정신 차리고 검정고시에 응시했지만, 수학에서 계속 고배를 마시던 중이었다. 단과학원에 등록해놓고도 놀러만 다녔던 내가 친구에게 “수학에서 자꾸 걸린다”고 했더니 다음날 문제지 두 권을 갖고 와 내게 한 권을 내밀었다. 친구가 매일 찾아와 수학 문제를 풀어주었고, 다음 시험에서 수학을 패스해 내 최종 학력은 대학원으로 주욱 상승했다. 그때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공부를 포기했거나, 훨씬 나중에 합격해서 대학 진학을 못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제 엄마 못지않게 영리하고 예쁜 친구 딸이 결혼했다.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패션 공부를 하더니 의류 회사에 취직해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는데, 거기서 대학 동창을 만나 가정을 꾸린 것이다. 지난 8월 결혼을 앞두고 잠시 귀국한 친구 딸이 약속 날짜를 좀 미루자고 했다. 단짝 친구들과 3박 4일 여행을 갔다가 단체로 코로나에 걸렸다며 일주일 격리 후에 연락하겠다는 것이었다. 약속한 날, 혹시 모르니 공원에서 만나자는 사려 깊은 친구 딸과 한참이나 얘기를 나눴다.

먼저 간 친구를 빼닮은 성숙한 딸을 보니 단짝을 만난 듯 정겹고 푸근했다. 장지에서 가녀린 어깨를 들썩이던 어린 딸이 장성해 가정을 꾸리는 걸 지켜보며 하늘나라 친구가 뿌듯해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먼 필은 ‘하나님은 선물을 고난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주신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엄마와 이별한 친구 딸이 암담한 시간을 잘 넘어왔으니 앞으로는 선물의 시간만 이어졌으면 좋겠다. 돌아보면, 쉬운 일도 거저 얻어지는 것도 없다. 아프고 힘든 과정을 통과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 견뎌내는 수밖에.

올 한 해 많은 이가 아픔을 겪었다. 며칠 새 힘든 일과 맞닥뜨린 지인들의 소식이 연이어 들려 왔다.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고 하니 다들 잘 이겨내길 바랄 뿐이다. 남은 한 해 잘 보내고 내년에는 모두에게 좋은 일만 있길 기대한다. 무엇보다도 태평양 건너에 사는 친구 딸이 예쁜 아기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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