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음주 유도하는 유전자 변이 약 4000개 찾았다

이영애 기자 2022. 12. 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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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이나 음주 행동을 하는데 유전자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미국 연구팀에 의해 드러났다. 게티이미지뱅크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행위에도 유전자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대규모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를 중심으로 한 국제공동연구팀은 약 340만 명의 유전자를 분석해 흡연과 음주 행동에 관여하는 약 4000개의 유전자 변이를 찾아 국제학술지 '네이처' 12월 7일자(현지시간)에 발표했다. 흡연이나 음주 행위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주는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면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 흡연이나 음주를 조절할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대규모 유전체 연구에서 동양인이 포함돼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유럽인이 흡연·음주 관련 유전자 변이 가장 많아

흡연과 음주는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각국 법규나 보건정책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번 연구를 포함해 유전자 변이도 흡연, 음주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들이 최근 속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흡연과 음주 행위를 컨트롤하는 데 유전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스콧 브리즈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 교수를 주축으로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중국, 한국 등 연구진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은 아프리카, 미국, 동아시아, 유럽 등 4개 인종으로 이뤄진 60개 코호트(동일집단)에서 340만명의 전장 유전체 연관 분석(GWAS)을 실시했다. GWAS는 질병 등 특정 조건의 유무에 따른 유전체 전반의 차이를 비교하는 연구를 말한다.

연구팀이 흡연을 시작한 연령과 일주일 간 음주 횟수 및 음주 행동에 따른 차이를 분석한 결과 약 3823개의 유전자 변이가 흡연 및 음주 행동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변이는 아프리카, 미국, 동아시아, 유럽 등 단일 인종 내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GWAS 연구를 통해 전반적인 유전자 변이를 확인한 연구팀은 이를 점수로 표현하는 다유전자 위험 점수(polygenic risk score·PRS)로 정량화했다. 분석에 활용된 60개의 코호트 중 2개의 코호트를 분석해 논문 저자로 참여한 주윤정 고려대 데이터과학원 연구교수는 "약 4000개의 변이 중 개인에 나타나는 변이의 개수에 따라 흡연, 음주 행위에 대한 PRS를 매겼다"고 말했다. 그 결과 유럽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PRS가 높았다. 흡연·음주와 관련된 유전자 변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의미다. 인종별로 음주와 흡연에 대한 PRS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과거에는 개별 유전자 변이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 반면 최근에는 PRS처럼 여러 유전자 변이가 초래하는 결과를 들여다보는 방향으로 연구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여러 유전자 변이가 개별 질환이나 형질에 동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도 음주와 흡연에 영향을 주는 여러 유전자 변이를 점수화해 분석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주 교수는 "유전적 변이를 하나만 살펴서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힘들다"며 "최근에는 모든 유전적 변이가 암묵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전유전자성(omnigenic)에 대한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전체 연구 서양인에 한정…동양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

이번 연구는 전체 코호트의 20% 이상이 비유럽 혈통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그동안 대규모 유전체 분석 연구 대다수는 유럽인 등 서양인에 한정돼 있었다. 이들을 'WEIRD 인구'라고 한다. 서양인(Western), 교육받은(Educated), 산업화된(Industrialized), 부자(Rich), 민주주의(Democratic)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병원치료를 포함한 사회적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자연스럽게 유전체 연구에도 많이 노출된다. 특히 질병 관련 유전체 연구는 대부분 병원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활용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문제는 인종별로 유전체 차이가 크다는 데 있다. 주 교수는 "같은 서양인 코호트 안에서 질병이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의 유전자 차이보다 똑같은 질병을 앓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나는 식"며 "유전체를 연구할 때도 이런 차이가 커서 반드시 인종을 분리해 놓고 차이를 확인한다"라고 말했다.

유전체 연구 결과는 신약이나 유전자 치료법 개발 등으로 이어지는 만큼 그간 소외됐던 동양인을 위한 유전체 연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일본 바이오뱅크(Biobank Japan·BBJ)는 2003년부터 20만 개 이상의 유전체 정보를 확보했고 동양인의 정보를 포함한 유전체 논문을 500편 이상 내며 성과를 올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에서 진행하는 한국인 유전체 역학조사 사업(KoGES)의 일부로 40~69세를 대상으로 대규모 코호트를 구축하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주 교수는 "유전적 변이를 다양하게 살펴야 하기 때문에 몇십, 몇백 명 수준의 병원에서 얻는 데이터만으로는 부족하다"며 "1만 명 이상 규모의 데이터가 필요해 국가 주도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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