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기억과 기록] 10.29 참사 유족 "아빠 왜 돌아가셨냐는 손자.. 정부에 그 대답 묻고 싶어”

MBC라디오 2022. 12. 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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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씨 (10.29 참사 40대 희생자 어머니)>
-희생자 모두 각자 사연.. 40대라 하면 다 이상하게 생각해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따뜻한 아빠.. 거래처 모임 후 귀갓길에 참변
-참사 후, 도움 청하고 싶은데 어디에 해야 할지도 몰랐어
-행안부 비서실, 이상민 장관이 만나고 싶어 한다며 전화 연락
-집에 찾아 오겠다해서 거절.. 유가족 모임 와달라 했는데 그건 연락 없어
-경찰 수사? 용산서장마저 영장 기각.. 책임 못 묻고 묻힐까 마음 아파
-어린 손자들, 훗날 참사의 역사 접했을 때 어떤 내용 보게 될지 걱정
-잘못된 기록 절대 남지 말아야..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로 남길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김현숙 씨 (10.29 참사 40대 희생자 어머니)


☏ 진행자 > 저희가 엊그제 참사 희생자 故 이남훈 님의 어머니 박영수 씨 인터뷰를 가진 바 있죠. 이때 어머니 박영수 씨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정부는 이 참사를 역사에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묻고 싶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가 각자의 목소리로 이번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소명을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참사의 가장 중요한 기록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유가족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그래서 저희 <시선집중>은 오늘부터 10.29참사 국정조사특위의 1차 활동기한인 내년 1월 7일까지 희생자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전하는 시간을 마련했고요. 오늘 그 첫 번째 시간으로 함께해 주실 분을 전화로 만나보겠습니다. 40대 아들을 이번 참사로 잃은 어머니인데요. 김현숙 씨 전화로 만나보겠습니다. 나와 계시죠?

☏ 김현숙 > 네.

☏ 진행자 > 어려운 인터뷰인데요. 이렇게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신 이유가 뭘까요? 어머니.

☏ 김현숙 > 소개하시면서 40대 아들을 둔 엄마라고 소개를 해주셨는데요. 참사에 희생됐던 연령대를 제가 보니까 10대에서 20대가 가장 많더라고요. 우리 아들은 젊은 나이도 아니고 40대로 두 자녀를 둔 가장이었습니다. 누구나 아들의 희생 소식을 들으면 40대가 왜 이태원을 갔어 하고 이렇게 다 질문을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이런 가장들이 우리 아들뿐만이 아니라 여러 분 더 계시는 걸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모두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겠지만 이런 희생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목소리 내서 억울함을 밝히고 싶어서 응하게 됐어요.

☏ 진행자 > 그렇군요. 그러면 아드님에 대한 질문을 안 드릴 수가 없을 텐데 어떤 일을 하시던 분이고 어떻게 이태원에 가시게 됐는지 말씀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머님.

☏ 김현숙 > 아들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요. 40대 하면 한참 사회의 중심에서 일할 나이 아닙니까.

☏ 진행자 > 그럼요.

☏ 김현숙 > 정말 열심히 불꽃처럼 살고 있던 명석하고 능력 있는 아들이면서도 애들한테는 따뜻한 아빠였죠. 멋진 아빠였습니다. 현장에 갔던 이유는 그날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이 거래처 지인들과 저녁 모임이 있어가지고 나갔던 것 같아요. 살고 있는 지역이 가까이에 있어서 그곳에서 모임을 가진 것 같습니다. 아들은 술 담배를 안 하기 때문에 모임이 끝나고 술 취하신 분들 모두들 배웅하고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역으로 가다가 희생을 당했습니다.

☏ 진행자 > 그렇군요. 참 황망함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어머님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고요. 그 다음에 또 며느님이나 손주 분들도 지금 엄청 황망했을 것 같은데 그분들 어떻게 지내왔던 거예요? 지난 40일간.

☏ 김현숙 > 하루하루 눈물로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요. 며느리하고는 잘 만나지도 못하고 통화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만나면 서로 울고 통화하면 서로 울고 이래서 대화가 잘되지를 않고 있는데 며느리의 걱정은 애들한테 혹시 마음에 상처가 생길까 봐서 애들을 열심히 지켜내고 있어요. 그래서 애들은 큰 감정 폭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가 지켜줘서. 그런데 며느리는 아직까지 비현실 같은 현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해서 이중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그럼 아이들이 지금 몇 살이에요?

☏ 김현숙 >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니는데 이제 초등학교 다니다 보니까 인터넷을 하고 인터넷에 아빠 이름을 치면 모든 게 떠오르니까 조심스럽게 밝혀지지 않았으면 하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초등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어머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 김현숙 > 저도 눈물로 눈을 떴다가 눈물로 눈을 감는다고 해야 될까요. 교회를 다니고 있어서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 오늘은 또 일어났군요, 하나님 오늘 또 잠자리에 듭니다, 이렇게 눈물로 지새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어머니 홀로 생활하신다고 제가 전해들은 것 같은데 맞아요?

☏ 김현숙 > 네, 애들 아빠가 3년 전에 돌아가셔가지고 그 아픔도 추스르기 전에 아들이 이렇게 가버려 가지고 제가 그 고통과 마음의 아픔을 어떻게 혼자 감당하기도 힘들지만 하여튼 혼자 살고 있습니다. 애들이 다 출가했기 때문에.

☏ 진행자 > 어머니 곁에 누구라도 옆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 김현숙 > 지금은 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와 있어 줄 사람도 없고 또 주변에 지인들이 아침 점심 저녁으로 돌아가면서 저를 챙겨주고 전화도 해주고 같이 밖으로 데리고도 나가고 있고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 진행자 > 어머님 이럴 때일수록 많은 분들하고 이렇게 만나고 대화하고 이러셔야 돼요.

☏ 김현숙 > 네.

☏ 진행자 > 어떻게 그럼 다른 유가족 분들하고는 자주 소통을 하세요?

☏ 김현숙 > 유가족들하고 전화 소통은 전혀 안 하고 있고요. 협회 가입을 해서 글로써 서로 마음을 소통하고 서로 위로받고 아픔을 공유하고 있어요.

☏ 진행자 > 지금 유가족 분들이 단톡방이 있는 거죠?

☏ 김현숙 > 네.

☏ 진행자 > 그러면 거기에서 주로 일상적인 소통은 단톡방에서 이루어지는 거고요.

☏ 김현숙 > 네.

☏ 진행자 > 그러면 이런 단톡방이 있다고 언제 처음 알고 어떻게 다른 유가족 분들하고 소통을 시작하신 거예요?

☏ 김현숙 > 저는 처음에 장례 후에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고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어디로 연락을 해야 되나, 저 앞에 국회의원 사무실이 있던데 그리 찾아가야 되나 하고 그렇게 매일 고민만 하고 있다가 22일 날 기자회견을 하는 걸 봤어요. 유가족들이. 그래서 며느리에게 전화해서 너희도 저기로 들어가야 되지 않겠냐 한번 들어가 봐라 해서 며느리가 먼저 들어가고 저를 이제 초대해줘가지고 들어가게 됐습니다.

☏ 진행자 > 그러면 며느님이 단톡방에서 같이 활동하고 계시는 거고.

☏ 김현숙 > 네.

☏ 진행자 >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따로 특별히 질문드릴 게 하나 있는데 저희가 엊그제 전해드린 바가 있었는데 행정안전부에서 몇몇 유족에게 따로 연락을 해서 장관이 만나자고 한다, 이렇게 했다라는 소식을 전희가 전해드린 바가 있는데 어머님한테도 연락이 왔었다면서요.

☏ 김현숙 > 네.

☏ 진행자 > 어떻게 됐던 거예요? 과정이.

☏ 김현숙 > 처음에는 며느리한테 전화가 갔던 것 같아요. 만나자고. 그런데 며느리는 자기는 떨려서 만날 수가 없으니까 어머니가 대신 만나시겠느냐고 연락이 와서 저는 장관님이 부르신다고 하니까 장관실로 우리가 찾아가는가 보다 하고 그러면 내가 가겠다. 내가 가서 만나겠다. 그리고 제 전화번호가 그리 넘어간 거고요. 제 전화번호가 넘어간 것, 그리고 이제 22일 날 비서실이라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제가 반갑게 기다리고 있었다, 장관님이 만나자고 한다고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면 되느냐 그랬더니 장관님이 우리 집으로 오시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장관님이 왜 우리 집으로 오시느냐 그랬더니 저희 유가족들의 형편을 생각해서 찾아오시겠대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높으신 분 만나면 떨려서 말도 못할 뿐더러 그렇게 바쁘신 분이 어떻게 나를 찾아오시느냐 싫다. 그리고 좀 더 생각해보겠다. 몸이 아프니까 의사하고 내가 의논을 하고 연락을 하겠다 했는데 그 다음 날 아침에 문자가 왔더라고요. 집에서 안 되면 조용한 카페나 조용한 곳에서 만나고 싶다고 연락 좀 달라고. 연락을 안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다시. 그래서 이제 그때는 솔직한 마음은 단독으로 만나는 줄 몰랐다. 그리고 왜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려고 하는지 이해도 안 되지만 유가족들이 다 같이 만났으면 좋겠다. 정말 장관님 만나면 할 얘기가 너무 많으니까 꼭 좀 연락 좀 해 달라, 유가족들이 모인 자리는. 그랬더니 비서관님이 잘 알겠다고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하고 끊었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습니다.

☏ 진행자 > 그러면 어머님 지금 잠깐 말씀 듣다 보니까 그러면 행안부에서 처음으로 연락 온 게 11월 22일 그 전이네요. 그러면.

☏ 김현숙 > 22일 오전에 왔나 봐요. 기자회견이 끝나고 며느리한테 연락이 온 것 같아요.

☏ 진행자 > 그날 22일 날.

☏ 김현숙 > 네.

☏ 진행자 > 하루에 그러면 그게 다 이루어졌던 거군요.

☏ 김현숙 > 네, 그래서 제가 기자회견 보고 장관님도 뭔가를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화를 하셨나, 이렇게 생각을 했죠.

☏ 진행자 > 그런데 유가족 분들이 많은데 왜 어머님한테 연락 왔는지 혹시 이런 거 안 물어봤어요? 행안부 쪽에.

☏ 김현숙 > 저는 제가 처음에 직접 연락이 왔으면 제 번호 어떻게 알았어요 하고 얘기를 했을 텐데 며느리한테 먼저 연락이 오고 며느리가 저한테 대신 만나겠느냐 해서 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의심은 없었어요.

☏ 진행자 > 그런 거에 대해서는. 그러면 아무튼 행안부 장관 비서실에서 연락이 와서 이러이러한 얘기 했으면 좋겠다 더 구체적으로 했던 얘기는 전혀 없는 거고요.

☏ 김현숙 > 전혀 없고 제가 얘기를 했어요. 저는 머릿속에 장관님이 보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그럼 제가 장관실에 찾아가면 용산구청장도 와 계시느냐, 용산서장도 와 계시느냐, 나 그분들 먼저 만나고 찾고 싶었어요. 그분들 그 시간에 뭐하고 있었느냐. 뉴스로는 그분들이 뭐하고 계셨는지 봤지만 직접 그분들 입을 통해서 듣고 싶었고 사과도 받고 싶었어요.

☏ 진행자 > 그랬더니 답은 뭐라고 하던가요.

☏ 김현숙 > 거기에 대한 답은 없고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어 하신다고.

☏ 진행자 > 어머님 댁이 서울이에요?

☏ 김현숙 > 네.

☏ 진행자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그러면 이제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보도에 따르면 다른 유가족 몇 분에게도 연락을 했는데 따로 만난 분은 지금 없는 것 같은데, 행안부의 이런 처사나 그동안 참사 이후 쭉 해왔던 정부의 처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세요?

☏ 김현숙 > 실망이고 마음 아프죠. 경찰의 최고 수장이 행안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행안부에서 책임감 없이 사과도 않고 아무런 지금 대응도 안 하고 아무런 말도 없는 것에 대해서 많이 섭섭하고 마음 아프고 또 분통도 터지고 그런 심정입니다. 그래서 늘 생각하는 게 지금 경찰 수사로는 정부의 잘못이 밝혀질 수 있을까, 고위급 책임이 물어볼 수 있을까, 묻지도 못하고 묻혀버릴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파요.

☏ 진행자 > 얼마 전에 이임재 용산서장 같은 경우는 구속영장도 기각이 됐잖아요. 그거 보면서 어떤 생각 드셨어요?

☏ 김현숙 > 아, 실망했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떻게 용산서장이 기각이 될 수 있어요. 그분은 책임이 제일 큰 거 아닙니까? 우리 아들이 서초구에서 당했습니까? 용산구에서 당했잖아요. 용산서장이 책임을 져줘야죠. 우리가 항상 되묻는 늘 질문, 국가가 뭐하고 있었는지 국가는 있었는지 세금을 왜 냈는지 그런 걸 다 우리 안전을 보호해달라고 세금을 냈고 우리는 보호 받길 원하고 있는데 서장이 기각되다니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었죠.

☏ 진행자 > 알겠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이 49재죠? 어머니.

☏ 김현숙 > 네.

☏ 진행자 > 유가족들끼리 상의하실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가 좀 궁금하네요.

☏ 김현숙 > 유가족 집행부에서 많이들 여러 가지로 준비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아파서 지방에 지금 잠깐 내려와 있거든요.

☏ 진행자 > 편찮으세요.

☏ 김현숙 > 어디가 많이 아픈 건 아니고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해서 못 올라가고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참석은 못 하고 그냥 동의서만 제가 같은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 동의만 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아무튼 10.29 참사가 역사에 기록이 당연히 돼야 되는 거 아니겠어요. 어머니, 어떻게 기록돼야 된다고 생각을 하세요?

☏ 김현숙 > 저는 단어 하나로 기록을 하라 한다면 22년 10월 29일은 과연 국가는 존재하고 있었습니까라고 기록하고 묻고 싶어요.

☏ 진행자 > 손주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제가 전해들었는데 어떤 말씀일까요?

☏ 김현숙 > 우리 손주가 아빠의 죽음에 의구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 진행자 > 의구심.

☏ 김현숙 > 의구심. 뭔가 풀리지 않는 의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질문은 실내도 아닌데 바깥에서 어떻게 질식사고가 생길 수가 있느냐면서

☏ 진행자 > 손주가 그렇게 질문했다고요.

☏ 김현숙 > 네,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신 거냐고 엄마한테 물어봤나 봐요. 그러니까 엄마가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대답을 못했다고 저한테 얘기를 하더라고요. 뭐라고 대답해야 될까요. 경찰이 무능해서? 국가가 부재해서 라고 대답해야 될까요. 이 대답을 누가 우리 손주에게 해줄 수 있을까요. 묻고 싶어요.

☏ 진행자 > 그러게요. 뭐라고 대답해줘야 되는 걸까요. 손주에게.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드려볼게요. 어머님. 아드님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 김현숙 > 꼭 전하고 싶은 말보다도 우리 아들은 정말 똑똑하고 유능하고 좋은 영향력을 끼쳤던 아들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도 그렇고 자녀들에게도 그렇고 선후배간 친구들에게도, 그런 아들 정말 불꽃처럼 열심히 살다 간 멋진 아들이었다. 사랑한다. 씨 유 순 마이 썬 하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 진행자 > 많이 보고 싶으시죠?

☏ 김현숙 > 네, 우리 손주 때문에 한마디 더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 진행자 > 하세요.

☏ 김현숙 > 유가족 분 중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정부는 이 참사를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묻고 싶다고 그게 제가 정말 하고 싶은데 얘기거든요.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우리 아이들이 이다음에 커서 훗날 이태원 참사의 역사를 접했을 때 또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이태원 참사를 봤을 때 만약에 안 좋은 기사가 검색되었다고 가정을 했을 때 아빠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잘못된 기록으로 남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사실이 규명되고 책임자가 밝혀지고 아이들한테 떳떳한 아빠로 앞으로 남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 진행자 > 물론이죠.

☏ 김현숙 >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인터뷰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 어머님 건강이 제일 중요해요. 다리도 얼른 빨리 나아야 되고 특히 혼자 이렇게 삭이시면 안 돼요, 어머님.

☏ 김현숙 > 네.

☏ 진행자 > 많은 분들하고 만나고 대화하시고 특히 유가족 분들은 서로 위로하고 또 아픔 공유하고 이런 과정이 얼마나 중요하겠어요.

☏ 김현숙 > 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잘 들었고요. 인터뷰 이렇게 마무리할게요. 고맙습니다. 어머님.

☏ 김현숙 > 네, 감사합니다.

☏ 진행자 > 지금까지 10.29 참사 희생자의 어머니 김현숙 씨였습니다.


[내용 인용 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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