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 DNA로 밝혀낸 200만년 전 그린란드는 ‘미래’와 닮았다

조홍섭 입력 2022. 12. 9. 10:35 수정 2022. 12. 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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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북극에서 800㎞ 떨어진 그린란드 북부의 200만년 전 모습 상상도. 당시의 생물이 환경에 남긴 디엔에이 조각을 통해 재구성했다. 베스 자이켄 제공.

동물은 배설물이나 땀 또는 낡은 피부 조각 형태로 자신의 디엔에이(DNA) 조각을 환경에 쉬지 않고 흩뿌린다. 이들은 대부분 분해돼 사라지지만 특별한 상황에서는 장기간 보존돼 극미량이라도 정교한 분석장치로 어떤 동물의 것인지 밝혀낸다. 이른바 환경디엔에이(eDNA) 기법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생물을 직접 채집하지 않고도 호수나 개울의 물 한 컵을 분석해 어떤 종의 물고기와 포유류가 사는지 알아낼 수 있고, 꽃을 찾아온 곤충이나 눈밭에 찍힌 발자국의 주인공을 추적하기도 한다. 또 과거의 디엔에이를 확보하면 당시 생태계를 짐작할 수도 있다.

eDNA는 타임머신

환경디엔에이 기법을 이용해 200만년 전 북극 근처의 생태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규명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제까지 가장 오랜 환경디엔에이는 100만년 전 시베리아 매머드에서 확보한 것으로 이번 연구로 2배 더 먼 과거의 ‘잃어버린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커트 키에르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등 국제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최근호에 실린 논문을 통해 “환경디엔에이로 200만년 전 그린란드 생태계를 알아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북극에서 800㎞ 떨어진 그린란드 북부의 해안 퇴적층인 카프 쾨벤하운 층에서 환경디엔에이를 추출해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북극에 인접한 곳인데도 135종 이상의 동·식물이 살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개방된 침엽수림에 포플러, 잎갈나무, 측백나무가 섞여 자랐고 바닥에는 극지와 아한대 관목과 초본이 분포했다”고 밝혔다.

디엔에이로 확인한 동물로는 순록, 북극토끼, 레밍, 기러기 등과 함께 그린란드에서 처음 보고되는 코끼리의 멸종한 먼 조상인 마스토돈도 포함됐다. 따뜻한 바다에 사는 투구게와 산호, 녹조류의 디엔에이도 확인됐다. 당시 이곳의 연평균기온은 현재보다 11∼19도 높았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예스케 윌에슬류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처음으로 이처럼 오랜 과거 생태계의 디엔에이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며 “디엔에이는 빨리 분해하지만 특별한 여건에서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오래 보존될 수 있음을 보였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41개 샘플에서 점토 광물 표면에 부착한 디엔에이 조각을 추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유전물질을 확보한 카프 쾨벤하운의 위치(별 모양). 커트 키에르 외 (2022) ‘네이처’ 제공.

기후변화의 미래일까?

그러나 이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2006년 영구동토 퇴적층의 유기물층에서 시료를 채취했지만 그 속에 디엔에이가 들었음을 확인한 것은 2017년이었다.

이후 40여 명의 국제연구진은 “마치 탐정처럼 확보한 디엔에이 조각을 현생 생물의 디엔에이 염기서열과 일일이 비교해 맞춰보는 고통스럽고 실패의 연속인 시기를 보내야 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옛 환경 디엔에이를 추출한 그린란드 북부 해안의 카프 쾨벤하운 층 모습. 위에 2명의 연구자가 시료를 채취하는 모습이 보인다. 스벤트 푼더 제공.

흥미롭게도 당시 그린란드 북부의 기후는 기후변화로 더워질 미래와 비슷하다. 북극의 생태계는 앞으로 이런 모습으로 바뀔까.

무엇보다 당시와 현재 생물은 유전적으로 다르다. 연구자들은 “200만년 전 샘플은 과거의 생물이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는지 디엔에이의 변화과정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에 확인된 잎갈나무의 디엔에이에는 현생 종에 나타난 많은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은 상태의 고대 종이었다. 1년의 절반은 해가 뜨지 않는 북극에서 식물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앞으로의 연구과제다. 식물의 디엔에이 속에 그 비밀이 숨어있을 것이다.

동토 지대에서 화석은 드물게 발견된다. 200만년 된 잎갈나무 화석. 과거 숲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스벤트 푼더 제공.

연구에 참여한 미켈 페데르센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는 “표면적으로만 보면 카프 쾨벤하운의 기후는 지구온난화가 닥칠 미래의 지구와 비슷할지 모른다”며 “이번 연구로 많은 생물 종이 알던 것보다 급변하는 기온에 잘 적응해 진화할 수 있음이 드러났지만 중요한 건 온난화 속도가 너무 빨라 생물 종이 적응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인류기원도 탐색?

한편, 이번에 개발된 옛 디엔에이 해독 기법이 멸종위기 생물이 기후변화에 더 잘 견디게 하는 데 응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나왔다. 키에르 교수는 “200만년 전 기후 온난화에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식물이 개발한 전략을 유전공학을 이용해 흉내 내면 앞으로의 지구온난화 대응에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점토 광물의 미세한 틈에서 디엔에이가 장기간 보존될 수 있다면 동토 지대가 아닌 습하고 더운 아프리카에서도 보존될 가능성도 있다. 윌에슬류 교수는 “만일 아프리카의 점토 광물에서 고대 디엔에이를 추출한다면 최초의 인류와 그 조상에 관해 획기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대 유전물질이라도 500만년 이상은 버티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용 논문: Nature, DOI: 10.1038/s41586-022-05453-y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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