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기자의 초강수] 사유지 입산금지 현수막에 긴장..."등산 하실 분은 다녀야죠" 전화에 휴우~

한효희 2022. 12. 9.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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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의 천연요새...한국전쟁 땐 빨치산 근거지
떨어지기 직전의 단풍은 농염하다.

선야봉仙冶峰(755m)은 전라·충청권에서 유명하지 않은 오지 산을 찾다가 발견하게 된 산이다. 오지 산을 찾는 방법 중 하나는 위성지도에서 고속도로와 국도가 없는 넓은 초록색 지형을 샅샅이 뒤지는 것이다. 전라·충청지역은 산지가 비교적 적고 도로가 거미줄처럼 놓여 있어 오지 산을 찾기 힘들었다.

단념하려던 찰나, 운장산과 대둔산 사이에 넓은 산지가 눈에 띄었다.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깊은 계곡을 찾아보았고, 완주와 금산의 첩첩산중에 숨은 선야봉을 발견했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경계에 위치한 선야봉은 남쪽으로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깊은 계곡이 있었다.

오지인 듯 오지 아닌 오지 같은 산

이름이 어여쁜 선야봉은 사실 오지 산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하다. 선야봉은 산지 깊숙이 위치해 교통이 불편하고 대둔산, 운장산, 진악산 등 주변 명산에 가려 세간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정상을 오르는 등산로가 여럿 있고 블랙야크 명산100+으로 선정되어 있다. 월간<山>에도 오래전 선야봉 산행기가 두세 편 실렸다. 인터넷에서도 선야봉 산행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기자의 눈길을 끈 건 선야봉 아래 암릉이 발달한 계곡이었다. 큰화랑골과 작은화랑골이라고 불리는 두 계곡이 선야봉 남쪽에서 '<' 형태로 길게 뻗어 합류한다. 계곡에는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인터넷에서도 산행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미답의 계곡을 통해 선야봉을 오르는 개척 코스를 구상하고 배낭을 싼다.

이번 산행에는 오지 산 취재 단골인 성균관대 산악부 박기완씨가 함께했다. 산행 들머리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피묵마을이다. 충청도와 경계를 접한 곳이라 서울에서 가깝겠거니 생각했는데 평일인데도 차로 네 시간 정도 걸린다.

운주면으로 들어서자 지역 특산물인 곶감이 집집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심지어 편의점에서도 곶감을 말린다. 운주면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피묵마을로 이어지는 운주계곡을 따라간다. 계곡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좌우로 천등산과 불명산이 장승처럼 지키고 서있다. 계곡을 따라 꽤 들어가면 피묵마을이 나타난다.

피묵마을이 위치한 완주군 고당리는 동서로 선녀봉과 선야봉에 둘러싸여 천연요새를 방불케 한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선야봉에서 선녀가 내려와 이곳에 집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마을 이름이 '고당古堂'이 되었고, 고당 앞에서는 말이나 가마를 타고 지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고당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날 밤에 고당에서 제사를 지낸다.

깊은 계곡과 산지가 발달한 선야산 일대는 한국전쟁 때 빨치산과 공비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이곳 일대에서 많은 양민들이 약탈과 학살을 당했고, 주변의 칠백이고지와 육백고지(백암산)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를 기리기 위해 백암산 잣고개에 육백고지전승탑이 세워져 있다.

70년 전 상흔으로 얼룩졌던 피묵마을은 이제 한가롭기만 하다. 마을에는 몇 채의 펜션이 있고 20여 곳 남짓한 가구가 살고 있다. 운주계곡이 마을 바로 앞을 흐르고 피묵교라는 작은 다리 아래로 선야산에서 흘러온 계곡이 합류한다. 마을경로회관을 지나 계곡을 오른편에 두고 거친 포장길을 걸어간다. 이내 민가가 나타나더니 더 이상 길이 이어지지 않는다. 만추로 물든 계곡 속으로 들어선다.

큰화랑골로 접어드는 길에 산죽이 빽빽하다.
계곡을 오르다 만난 네모네모 바위.

낙엽으로 뒤덮인 쓸쓸한 계곡

산은 울긋불긋한 가을 옷을 벗고 겨울을 날 준비 중이다. 헐벗은 나무 아래로 바싹 마른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흐르지 않아 고인 계곡은 짙은 낙엽을 이불처럼 덮었다. 땅과 물이 분간 안 갈 정도로 낙엽 천지다. 낙엽에 빠진 계곡은 오래 우려낸 녹차처럼 짙다. 마시면 쓴 맛이 날 것 같다.

계곡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왼편에 평평하고 잘 닦인 등산로가 나타난다. 속으로 '아싸'를 외치며 길 위로 올라선다. 이곳은 네이버지도를 포함해 대부분의 지도에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월간〈山〉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에는 큰화랑골을 따라 길이 표시되어 있다. 인터넷에서도 산행기를 찾을 수 없는 곳인데 이렇게 좋은 길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중간 중간에 완주군 로고가 그려진 표지판도 있다.

오랜만에 만만한 산행을 할 생각에 신이 나있는데 갑자기 '사유지 입산금지'가 적힌 현수막이 나타난다. 현수막은 '이곳이 산삼·버섯·약초를 재배하는 사유지이며 무단출입 시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하고 있다. "여기만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며 길을 따라 계곡 안으로 들어서자 5분 간격으로 동일한 현수막이 계속 나타난다.

먼 길을 달려 왔는데 산행이 수포로 돌아갈 처지다. 스트레스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현수막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본다. "등산하러 왔는데 등산로 전체가 입산금지냐"고 정중히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등산하실 분들은 다녀야죠"였다. 한숨 크게 내쉬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계곡으로 들어선다.

해가 진 뒤 낙엽으로 뒤덮인 계곡은 쓸쓸하다.

계곡에는 길이 나있긴 하지만 일체의 인위를 찾아볼 수 없다. 쓰레기나 사람이 다닌 흔적도 없다. 해가 넘어가 땅거미 진 계곡은 적막하고 쓸쓸하다. 비가 내리지 않아 수량이 적은 계곡은 할머니처럼 조용하고 느리게 흐른다. 헐벗은 나무 가지 끝에 노랗게 물든 단풍 몇 개가 청승맞게 매달려 있다.

쓸쓸한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이내 작은화랑골과 큰화랑골이 합류하는 지점이 나타난다. '선야봉 2.9km'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이곳에서 작은화랑골로 들어서면 선야봉으로 빠르게 오를 수 있다. 우리는 미지의 계곡을 더 탐사하기 위해 유혹을 물리치고 큰화랑골로 들어선다.

계곡 합류지점을 지나 큰화랑골로 들어서면 길이 희미해진다. 부드러운 계곡은 온전히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산죽 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지나 계곡 상류로 오른다. 계곡은 메말랐다 흐르길 반복한다. 계곡의 바위틈 사이로 귀를 기울이면 차가운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상류에는 등산로가 없어 계곡의 바위를 넘나들어야 한다.

상류로 오를수록 크고 작은 바위가 가득하고 길이 거칠어진다. 미끄러운 바위는 낙엽에 뒤덮여 분간이 쉽지 않다. 사람이 다니지 않은 길이라 밟았을 때 시소처럼 움직이는 바위가 많다. 지뢰 같은 바위 때문에 두어 번 미끄러졌다. 선야봉이 내가 오는 걸 막기 위해 훼방을 놓는 것 같다.

계곡과 씨름하며 오르다 보니 능선으로 치고 오르는 지점에 도착했다. 이곳 부근에서 하룻밤 자고 적당히 완만한 사면을 찾아 개척 산행으로 주능선까지 오를 계획이다. 비교적 평탄한 곳을 찾아 궁상맞게 텐트를 친다. 바닥에는 모난 돌이 가득하다.

오후 6시인데도 계곡에는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렸다. 말수 적은 부산 남자 둘이서 비화식 비빔밥을 꺼내 한 숟가락씩 사이좋게 나눠먹는다. 어둠이 내린 계곡은 적막하다. 빛이 사라진 계곡에 냉기가 차오른다. 적막한 계곡에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다. 땅 아래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자장가처럼 나긋하다.

등산스틱에 낙엽이 켜켜이 꽂혀 케밥을 연상케 한다.

대둔산 조망하며 내려오는 하산길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오자 새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둘 다 술을 안 마셔서 저녁 7시쯤 누웠는데 새벽까지 뒤척이다 잠들었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12시간 정도 누워 있었더니 등이 배긴다. 빵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짐을 챙겨 사면 아래로 향한다.

계곡에서 주능선까지 고도를 400m 정도 올라야 한다. 주능선 오르는 사면은 가파르지 않지만 낙엽이 많아 미끄럽다. 설사면을 오르는 것처럼 한발 오르면 반발 미끄러져 체력소모가 크다. 코로나에서 회복한 뒤 첫 산행이라 그런지 온몸에 기력이 없고 힘들다. 오르고 올라도 오르막이 끝이 없다.

반대편 능선 너머로 해가 떠올라 사면을 비춘다. 냉기와 온기가 산재해 외투를 벗어야 할지 입어야 할지 애매하다. 한 시간 정도 쉬지 않고 사면을 오르다보니 세 능선이 만나는 봉우리에 도착했다. 좁은 봉우리 정상에는 표지기가 몇 개 걸려 있다. 여기서 북쪽 능선을 따라가면 신선봉을 거쳐 선야봉으로 이어지고, 남동쪽으로 가면 금남기맥 능선을 거쳐 백암산이다. 금남기맥에서 남쪽으로 가면 장군봉을 거쳐 운장산까지 금강정맥이 이어진다.

선야봉 정상은 이런저런 표지판으로 난잡하다.

선야봉까지 이어지는 주능선은 좁지만 장애물이 없어 무난하다. 신선봉에 이르면 이정표가 나타나고 금산 남이자연휴양림에서 오르는 탐방로와 만난다. 신선봉에서 능선을 따라 20~30분 정도 오르면 선야봉 정상이다. 작은 정상석이 있는 정상은 조망이 없어 별 감흥이 들지 않는다.

정상에서 올라온 길을 짧게 되돌아 내려와 서쪽으로 흐르는 능선을 따라 피묵마을로 하산한다. 가파른 하산길은 낙엽으로 뒤덮여 있고 작은 돌들이 많아 굉장히 미끄럽다. 사면을 개척하며 오르느라 힘을 다 썼는지 하산하는데 두 다리가 후덜덜 떨린다. 하산 능선은 지도에 등산로가 표기되어 있지만 나무데크나 계단이 없어 원시적이다.

정신없이 능선을 내려가는데 작은 암릉에서 조망이 터진다. 내려온 길 뒤로 선야봉 주능선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천등산과 대둔산의 암릉이 아스라이 조망된다. 조망지를 지나 능선을 계속 내려가다 보니 원고당마을과 피묵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지도상에는 원고당마을 방면 등산로만 표기되어 있다. 원점회귀하기 위해서 피묵마을 쪽 능선을 탄다.

하산 능선 암릉에서 천등산과 대둔산이 조망된다.

마을이 점점 가까워지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부스럭부스럭 낙엽을 헤치며 내려오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거리가 상당한데 '이렇게 작은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개의 삶은 얼마나 피곤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안부에서 '배나무골'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지나 능선을 따라 직진한다. 점점 긴장이 풀리고 빨리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런 내 마음을 간파한 건지 선야산이 작은 봉우리를 우리 앞에 내놓으며 약을 올린다.

마지막 하산길은 나무가 벌목된 황량한 사면이다. 나무가 미로처럼 쓰러져 있고 가시덤불과 잡목이 많아 길을 헤쳐가기가 쉽지 않다. 마을이 코앞인데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없으니 답답하고 짜증난다. 방금 지나친 작은 안부에서 배나무골로 하산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욕지거리를 하며 난잡한 벌목지대를 내려서니 붉은 벽돌로 지어진 피묵교회 뒤로 떨어졌다. 미로 같은 마을길을 따라 마을 입구로 되돌아간다. 집집마다 매달린 곶감이 나른한 가을 햇살에 달게 익어간다.

하산하는 능선은 미끄럽고 원초적이다.

산행길잡이

선야봉은 완주군 고당리와 금산 남이자연휴양림에서 오를 수 있다. 금산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11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산불방지기간으로 통제된다. 피묵마을에서 큰화랑골을 따라 오르는 길은 초반에는 등산로가 뚜렷하나 상류로 갈수록 희미해진다. 계곡에서는 휴대폰 신호가 잡히지 않으며 능선에서 잡힌다.

피묵마을에서 피묵교 건너기 전 왼쪽 운주계곡농원으로 진입한다. 근처에 '선야봉 4.4km' 표지판이 있다. 마을회관을 지나 포장길 따라가면 민가가 나타나고 길이 끊어진다. 이곳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조금 진행하다 왼쪽으로 올라서면 등산로가 있다. 1.5km 지점에 표지판이 있고 작은화랑골과 큰화랑골이 합류한다. 왼쪽 작은화랑골로 들어서면 선야봉 정상으로 빠르게 오를 수 있다. 큰화랑골로 진행한다.

뚜렷한 등산로가 이어지다 길이 희미해지고 사라진다. 2.8km 지점 왼쪽에서 작은 계곡이 합류하고 무너진 폐가를 지나 계속 진행하다가 3.5km 지점에서 왼쪽 사면을 치고 오른다. 여기서부터 주능선까지는 등산로가 없는 개척산행이다. 800m 정도 지능선을 따라 개척산행을 이어가면 세 능선이 만나는 봉우리다. 여기서 왼쪽 능선으로 가면 신선봉이다. 신선봉에서 선야봉 가는 길에 표지판이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작은화랑골을 거쳐 피묵마을로 되돌아간다.

표지판에서 20여 분 주능선을 따라가면 선야봉 정상이다. 정상에서 남이자연휴양림이나 원고당마을로 하산할 수 있다. 원점회귀하기 위해 정상에서 올라온 길로 약 100m 내려간 뒤 피묵마을 방면 서쪽 능선으로 하산한다. 1시간쯤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표지판이 나타난다. 왼쪽 피묵마을 방향으로 20분 정도 내려가면 배나무골 표지판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배나무골로 내려가는 게 편하다. 능선 따라 직진하면 다시 오르막을 올랐다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봉우리에서 하산한다. 하산길에 나무가 벌목된 사면을 내려가는데 길이 없고 잡목이 많아 지저분하다. 사면을 내려서면 피묵마을이다.

교통

운주터미널에서 피묵마을 종점까지 운행하는 300번 버스가 1일(06:40~17:35) 6회 운행한다. 금산시내버스터미널에서 금산산림문화타운까지 운행하는 68번 버스가 1일(09:20~16:10) 4회 운행한다.

운주면에서 피묵마을까지 택시를 이용할 경우 비용은 2만3,000원 정도다. 금산에서 남이자연휴양림까지 택시를 이용할 경우 비용은 3만 원 정도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피묵마을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근처 펜션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문의 운주 택시(지역번호 063) 263-7799, 263-7290. 금산 택시(지역번호 041) 752-1122, 753-1000. 등산지도 특별부록 지도 참조.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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