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법 무시하면서 민주주의는 이용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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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당연(當然)히 여겨지는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당연의 기준이 너무 낮아져 이미 당연했던 것들조차 못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상식의 물처럼 흘러야 할 법이 비상식이라는 장애물을 만나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법이 상식을 거스르고, 힘센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거나 키우기 위해 교묘하게 쓰이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암담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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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여러 가지 소식들 가운데는 비상식적인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이용해 온국민이 보는 곳에서 문제제기를 해 몇 달 동안 나라를 시끄럽게 해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권을 지키기 위해 그 뜻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고도 떳떳하다고 합니다. 등록만으로 인정되는 일부 유튜브 채널이 마치 모든 언론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도 헛웃음밖에 안 나옵니다. 그들은 ‘불편부당 정론직필(不偏不黨 正論直筆)‘이란 말의 뜻이나 제대로 알까요. 어느 편의 입장이 아니라 정확하게 글을 써 중심을 잡는 게 언론의 제대로 된 역할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상식 같은 말입니다.
얼마전 세간에 돌았던 짧은 동영상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며 크게 웃었습니다. “강간범 잡아들이면 성욕탄압이고, 스트라이크 던지면 타자탄압이냐?”고. 왜 이런 것들이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며 쓴웃음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요. 너무나 비상식적인 모습이 일상을 가득 채우며 무엇이 상식적인지조차 헛갈릴 지경인 우리 세태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난무했던 투쟁의 구호를 40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도 예전 그 모습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불끈 묶은 머리 띠에 씌어져 있는 구호는 그때보다 더 섬뜩합니다. 많은 이들이 근무하는 회사 앞에 죽음의 상징인 상여를 들이밀고, 문 앞에서 장송곡을 틀어댑니다.
SNS가 발달하고, 자신의 생각을 많은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나고 고도화됐는데도 단체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은 왜 이렇게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당연함을 부정하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이것도 당연하고, 저것도 당연하면 바꿀 게 하나도 없는 세상이 될 테니까요.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당연함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요즘엔 당연의 기준이 너무 낮아져 이미 당연했던 것들조차 못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의 상식을 거스르면 수십개의 비상식을 만나게 됩니다. 비상식을 상식처럼 여기는 정치인들과 언론을 빙자한 유튜버들의 행태도 그러합니다.
법(法)이라는 글자는 삼수변에 갈 거(去)로 이뤄진 글자입니다. 물처럼 흐르는 것이 법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상식의 물처럼 흘러야 할 법이 비상식이라는 장애물을 만나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생각의 스승이신 최진석교수님은 법을 “근대국가에서는 이전에 왕들이 ‘주관적인 뜻’으로 하던 방식을 포기하고 관리가 ‘미리 다듬어 공개한 객관적인 말’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자기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은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나라의 말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나라의 말을 미리 다듬어 놓은 것이 법이라면 지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 법이 상식을 거스르고, 힘센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거나 키우기 위해 교묘하게 쓰이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암담할 따름입니다.
얼마 전 언론에 “애국심은 경멸하면서 ‘대한민국’은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저는 “법은 우습게 알면서 민주주의를 이용해 먹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기사를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님은 제일 한심하면서도 무서운 것은 무책임, 무참여, 무관심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 사회가 많은 부분에 관심을 갖고, 책임감 있게 함께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요.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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