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2022. 12. 9.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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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 한강 다리를 건너서 출근합니다." 그렇다.

문지혁 작가의 단편소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는 미국에서 유학하며 초급 자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한국인 남성 주인공 '나'와 일본인 여성 주인공 '아야'의 이야기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다리를 건너고, 새 다리를 짓고, 어떤 다리는 부수며 살아간다고 작가는 말한다.

나는 매일 새벽 다리를 건너며 속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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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 한강 다리를 건너서 출근합니다.” 그렇다. 아침 생방송을 하러 매일 새벽에 출근할 때는 걸어서 마포대교를 건넌다. 집에서 회사까지 4.2㎞, 매일 편도 45분간 서울 도심을 여행한다. 여름에는 환하고 겨울에는 캄캄한 그 도보여행길에서 때로는 둥근 보름달이, 어떤 날은 다리 중간에 놓인 생명의 전화가 유독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매일 다리를 무사히 건넌다는 것은 사실 누군가에게는 기적이다.

문지혁 작가의 단편소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미국에서 유학하며 초급 자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한국인 남성 주인공 ‘나’와 일본인 여성 주인공 ‘아야’의 이야기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나의 제안으로 조지워싱턴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게 된다. 아야는 다리를 걸어서 건넌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며 따라나선다. 나는 조지워싱턴 브리지가 생기게 된 남북전쟁 이야기를 해주고, 아야는 한국인에게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것은 일반적이냐고 묻는다. 나는 그렇지 않다며 논문 때문에 걷는다고 답한다. 나의 석사학위 논문 주제가 성수대교 붕괴사건이 서울의 도시적 성격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그날, 매일 타던 성수대교를 건너는 버스 대신 동호대교를 건너는 전철을 타고 학교에 갔다. 담임은 지각한 나를 발견하자마자 얼굴이 상기된 채 엉덩이를 다섯번쯤 때리고 말했다. “이 녀석아, 죽은 줄 알았잖아.” 살아온 제자에 대한 환영 의식이었다. 지도교수는 나의 논문이 소설 같다고 했다. 주관적 경험자가 사건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기는 힘든 모양이다. 아야는 성수대교가 다시 지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9·11테러 이후 현장이 그라운드 제로로 바뀐 것과 대조된다. 아야는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하던 시절, 카페테리아에서 일본 쓰나미 뉴스를 지켜보던 악몽 같은 기억을 떠올렸다. 다리를 건너 도시로 들어설 무렵, 지도교수에게 문자가 왔다. 논문 제목을 ‘어디에나 균열은 있다’라고 하자고.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다리를 건너고, 새 다리를 짓고, 어떤 다리는 부수며 살아간다고 작가는 말한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미국 유학 중에 아버지가 쓰러지시는 바람에 급히 들어와 중풍 병자의 아들이 되었다. 아버지의 6인실 병실에서 성수대교 붕괴 뉴스를 보며 나보다 더 황당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해 12월 그 병실에서 시험을 보러 다니며 아나운서가 됐다. 최종 면접에서는 그해 일어난 고베 대지진을 바라보는 국민 시각을 분석하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 후로도 숱한 인생들이 무너졌다. 수련원이 무너지고, 지하철에서 불이 나고, 배가 가라앉고, 심지어 길에서 사람들이 겹겹이 쌓였다. 영화에서 일어나도 터무니없다고 할 일을 현실에서 겪는 우리는 더이상 미안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절에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 세월호 사고로 친구들을 잃고, 취업을 준비하다 10·29 참사로 친구들을 또 잃은 우리 아들 세대에게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심지어 우리는 그들에게 처참하게 망가진 지구를 물려줘야 한다. 나는 매일 새벽 다리를 건너며 속죄한다. 이 다리에서라도 이제는 떠나는 생명이 없기를.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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