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31) 검은 고양이

2022. 12. 9. 05: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권 대감댁에 새 침모 들어온후
우환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01010101101.20221209.001358140.02.jpg


권 대감댁에 침모가 새로 들어왔다. 오실댁은 삼십대 중반 나이에 말수가 적었고 품행도 얌전했다. 바느질 솜씨가 원체 빼어나 옷 하나 버선 한켤레를 지어도 안방마님이 언제나 흡족해했다.

오실댁 곁엔 윤기가 반지르르 흐르는 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가끔씩 자리 잡고 있었다. 오실댁이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느니, 도둑고양이가 우연히 침모방에 들락거린다느니 설왕설래했다. 안방마님이 오실댁에게 물었더니 데려온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밤중에 뒷간에 가던 권 대감의 맏손자, 도련님은 바로 앞에 새카만 고양이가 두 눈에 불을 뿜는 걸 보고 댓돌에서 나뒹굴기도 했다. 안방마님도 몇번이나 검은 고양이에 놀라자 권 대감이 고양이를 잡으려고 대장간에서 고양이 틀을 만들어 왔다. 닭고기 미끼를 달아놓았지만 잡힌 것은 다른 도둑고양이였다. 뒤뜰 초당에서 과거 공부를 하는 열다섯살 맏손자는 검은 고양이 공포증에 걸려 울음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했다.

권 대감이 궁수를 불렀다. 어느 날 양지바른 사랑방 마루에 앉은 고양이를 발견, 재빨리 시위를 당겼는데 화살은 엉뚱하게도 문 창호지를 뚫고 사랑방으로 날아가 권 대감의 허벅지에 꽂혔다. 부랴부랴 의원이 찾아와 화살을 빼고 지혈하고 쑥뜸을 했지만 화농이 심해져 걷지도 못하고 드러누웠고 궁수는 볼기짝만 맞고 쫓겨났다.

어느 날 밤 도련님이 주막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들어오다 신음 소리를 따라 들창문 틈으로 오실댁 방 안을 들여다보다가 숨이 멎을 뻔했다. 오실댁이 벌거벗은 채 배를 붙이고 누웠고 검은 고양이가 오실댁 등을 타고 앉아 긴 혀로 등을 핥고 있었다. “오실댁은 문을 잠그시오. 저놈의 고양이가 갇혔다.” 고함을 치자 오실댁 방에 불이 꺼지고 온 식구들이 허겁지겁 옷을 걸치고 모여들었다. 오실댁 방에 호롱불이 다시 켜졌다. 단정하게 옷을 입은 오실댁이 “도련님, 무슨 일이에요” 물었다. “조금 전까지 그놈의 검은 고양이와 있었잖아” 하는 말에 오실댁이 배시시 웃으며 “검은 고양이라니요” 하고 되물었다. 도련님이 “온 방을 뒤져라” 하고 소리쳤다.

하인들이 오실댁 방에 들어가 장롱 속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도련님이 기가 쇠해 헛것을 본 것으로 결론이 났다.

눈이 펄펄 내리던 날 밤 오실댁 방문이 살짝 열리고 도련님이 들어왔다. “오실댁, 말 좀 해보시오. 그날 밤 일을.” 오실댁은 여전히 옅게 웃으며 “더 할 말이 없습니다” 하는 한마디뿐이었다.

눈은 펄펄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그때 들창문이 살며시 열리고 “야옹” 소리가 들렸다. 검은 고양이가 방 안을 내려다봤다. 오실댁을 타고 있던 도련님을 향해 달려들어 발톱으로 등을 깊게 긁어 버렸다. 피투성이가 된 도련님이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조용히 제 방으로 갔다. 도련님은 매일 밤 침모의 방으로 스며들었다. 얼굴은 창백해지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과거는 낙방했다.

혼례 날짜가 다가오자 침모는 바빠졌다. 비단 필이 들어오고 햇솜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동짓달에 혼례식이 치러졌다. 유 참판댁 새색시와 권 대감의 맏손자 혼례식을 장안에 떠들썩하게 치렀는데 첫날밤을 시댁에서 자고 난 신부가 눈물을 흘리며 쫓겨나 친정으로 돌아갔다. 첫날밤부터 요분질을 해 새신랑이 기절초풍한 것이다. 기생이나 창부들이 둔부를 돌려 남자의 흥을 돋우는 방중술을 양갓집 새신부가 첫날밤에 시도하다니!

첫날밤 금침 속에는 부러진 바늘이 여러개 들어 있어 신부의 등과 엉덩이를 끊임없이 찌른 통에 새신부는 감창소리 요란하게 몸부림쳤던 것이다.

권 대감댁 우환은 끝없이 이어졌다. 동짓달을 못 넘기고 권 대감이 이승을 하직했다. 밤은 깊어 삼경일제 적막강산 빈소에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 병풍을 찢고 위패를 떨어뜨리고 제상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십수년 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권 진사의 아들도 징집명령을 받았다. 권 진사가 노비였던 천 서방에게 대신 입대하기를 권하며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논 열마지기를 주기로 약속했다. 천 서방은 권 진사의 아들로 둔갑해 입대했다. 그리고 달포가 가기 전에 천 서방 마누라는 어린 딸을 안고 대성통곡했다. 천 서방의 전사통지서를 받았던 것이다. 권 진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천 서방 마누라와 어린 딸을 노비로 팔아버렸다. 천 서방 마누라는 화병으로 죽고 어린 딸은 복수 일념으로 악으로 살아남아 먼 훗날 침모가 돼 진사에서 대감이 된 권가네 집안에 잠입해 멸문시켜버렸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