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기를…우익 포퓰리스트 ‘정보 전쟁’ 방관하는 페이스북 [책&생각]

최재봉 2022. 12. 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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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노벨평화상 수상 마리아 레사
독재권력과 페이스북 공생 고발
사실보도 앞서는 가짜뉴스 전파력
알고리즘과 댓글 기능 덕분
2017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페이스북 회의에서 마리아 레사(왼쪽)가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저커버그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리아 레사는 2011년 페이스북 페이지를 기반으로 한 탐사 보도 매체 <래플러>를 창간했지만, 페이스북의 무책임과 위험성을 확인하고 지금은 페이스북을 고발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데에 매진하고 있다. 북하우스 제공

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
마리아 레사의 진실을 위한 싸움
마리아 레사 지음, 김영선 옮김 l 북하우스 l 1만8500원

“보이지 않는 핵폭탄이 우리의 정보 생태계에 떨어졌습니다. 세계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뒤에 그랬던 것처럼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유엔과 같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인권선언처럼 우리의 가치를 명시한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말이지요. 지금 정보 생태계 안에서는 군비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경쟁을 멈추려면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고 우리 모두 그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 일은 사실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난해 12월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59)는 이렇게 말했다. 마리아 레사는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와 함께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권력은 현실을 어떻게 조작하는가>는 그가 올해 내놓은 회고록이다. 필리핀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고교와 대학을 마친 그가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와 기자와 언론사 발행인으로 일하며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프린스턴 의과대학에 들어갔다가 연극으로 전공을 바꾸어 졸업한 마리아 레사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13년 만에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였던 ‘트윙크’가 뉴스 앵커를 맡고 있는 국영방송국에 놀러갔다가 생방송 뉴스에 매료된 그는 뉴스 연출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국영방송국 일과 함께 ‘프로브’라는 독립 뉴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연출·제작을 겸하던 그에게 <시엔엔>(CNN)에서 프리랜서 기자직을 제안했고, 마닐라 지국 기자 겸 지국장을 거쳐 새로 개설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지국까지 책임지는 등 2000년 즈음의 그는 “동남아시아 지역 시엔엔의 얼굴이 되었다.”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맨 왼쪽)가 2017년 3월 온라인 탐사 보도 매체 <래플러>의 공동 설립자들과 함께 마닐라의 한 쇼핑몰 바깥에서 즉석 사진을 찍었다. 북하우스 제공

<시엔엔>에서 기자로서 역량을 발휘한 그에게 필리핀 최대의 뉴스 그룹인 <에이비에스-시비엔>(ABS-CBN) 방송이 손길을 뻗었다. <에이비에스-시비엔>의 책임자로서 그는 당시 아로요 대통령이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조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해 보도했고 이는 결국 사실로 확인되었다. 아로요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맞섰다. 이 무렵 여러 차례 쿠데타 시도가 있었고, 한 번은 군인들이 자신들을 생중계해 준다면 즉시 거리로 진군하겠다는 제안을 해 왔지만 마리아 레사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우리가 군인들의 요구에 동의했다면 우리는 쿠데타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이 매체에서 대통령 선거 투표 독려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9만 명의 시민기자를 등록시켜 선거 감시 활동을 벌인 결과 “우리 페이스북 페이지는 보통의 뉴스 사이트보다 400퍼센트 더 많은 참여도를 보였다. (…) 당시 나는 참여형 미디어가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 시민들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어떻게 정의와 책임을 요구하는 권한을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기술이 어떻게 선한 일에, 다시 말해 시민의 권한 증대, 투표와 민주적 참여, 도덕성과 진실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2019년 2월14일, 하룻밤 사이 체포되어 구금되었다가 보석금을 내기 위해 법원에 도착한 마리아 레사(가운데). “채 2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필리핀 정부는 나에게 열 건의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북하우스 제공

<에이비에스-시비엔>을 그만둔 그가 2011년 여성 동료 언론인 셋과 함께 온라인 탐사 보도 매체 <래플러>를 시작하면서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삼은 것은 이런 좋은 기억 때문이었다. 당시의 그와 동료들은 “인터넷이 미래라고 확신”했고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력만을 보았다.” <래플러>는 페이스북 등에서 본격적으로 생중계를 도입하기 몇 년 전부터 휴대전화를 이용해 생중계를 했고, 역시 “페이스북이 이모티콘을 도입하기 약 4년 전에 무드 미터(기분 측정기)와 무드 내비게이터를 출시했다.” 아로요 대통령 시절 <에이비에스-시비엔>을 이끌 때에도 마리아 레사와 권력은 긴장 관계였지만, 2016년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되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두테르테 치하에서 “매일 밤 평균 서른 구의 시체가 거리에서, 그리고 마닐라의 가난한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두테르테 자신이 유세에서 마약 사범과 무위도식자를 죽여서 물고기 밥으로 만들겠노라 공언했던 터였다. <래플러>는 이 죽음들의 배후에 경찰이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지만, 두테르테 정부는 페이스북 알고리즘 설계와 댓글부대를 이용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며 사실을 호도했다. 공식 매체의 보도보다는 친구와 친지의 소셜미디어를 더 신뢰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이용한 ‘정보 전쟁’이었다. 가령 국고에서 100억 달러를 약탈하며 전횡을 일삼다가 민중혁명으로 쫓겨난 마르코스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2022년 5월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가 “마르코스 일가가 약탈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없으며 그의 어머니(이멜다)가 ‘모든 부패 관련 소송에서 이겼다’고 주장”(둘 다 거짓말)한 페이스북 게시물은 <래플러>가 그것을 발견하고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33만1천회 공유되고 댓글이 3만8천개 이상 달렸으며 36만9천개 이상의 반응을 얻었다. “반면 우리의 사실 확인은 공유 3500회, 댓글 2100개에 그쳐 도달률이 한심할 정도였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가 사실보다는 거짓말에 기여한다는 마리아 레사의 확신은 이런 수치로도 확인된다. 그에 따라 <래플러>는 두테르테와 마르코스 정권의 부패 및 폭력을 고발하고 그에 맞서는 한편 페이스북의 무책임과 위험성을 고발하는 데에도 주력하게 된다. “오늘날 우익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일으키는 새로운 물결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고 현실을 무너뜨린다.”

두테르테 대통령과 그를 이은 마르코스 주니어 정권은 <래플러> 기자의 대통령궁 출입을 금하고 대통령 수행 취재 역시 금한 데 이어 <래플러>의 운영 허가를 취소하고 마리아 레사에게 거듭해서 체포 영장을 발부하는 식으로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 어쩐지 익숙한 광경이라 하겠는데, 책 말미에서 마리아 레사가 필리핀 바깥 독자들에게 경고하는 문장이 섬뜩하다. “잊지 말기를. 우리가 가는 길을 당신들도 가게 될 수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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