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혁명가’ 바그너를 향한 토마스 만의 경탄 [책&생각]

고명섭 2022. 12. 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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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독일 문학의 대가가 쓴
바그너의 위대함에 바치는 찬가
쇼펜하우어‧니체 철학과 함께
만 작품세계 떠받친 사상의 하나

바그너와 우리 시대: ​에세이‧관찰‧편지

토마스 만 지음, 안인희 옮김 l 포노 l 2만1000원

<마의 산>의 작가 토마스 만(1875~1955)은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이 거장은 26살에 발표한 대작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로 일찍이 명성을 얻었는데, 이 작품을 떠받친 사상적 지주가 19세기의 세 독일인, 곧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 그리고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였다. 쇼펜하우어·니체의 의지 철학과 바그너의 음악 사상은 말년까지 토마스 만의 작품 세계를 규정한 힘이었다. <바그너와 우리 시대>는 세 사람 가운데 특별히 바그너에게 바치는 찬가를 담은 글 모음이다. 1902년부터 1951년까지 만이 쓴 에세이와 편지글을 한데 묶었다. 이 글들 가운데 특히 1933년 2월 바그너 50주기를 맞아 발표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난과 위대함’은 완결성을 지닌 바그너론으로서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바그너는 20년에 걸쳐 완성한 4부작 <니벨룽의 반지>를 비롯해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장인가수> <로엔그린> <탄호이저> 같은 빛나는 작품으로 음악사에 획을 그은 작곡가다. 바흐나 베토벤처럼 서양 음악사는 바그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 바그너는 전통 오페라를 혁신해 음악과 연극이 긴밀하게 결합된 ‘음악연극’(Musikdrama, 악극) 곧 ‘종합예술’로 재탄생시켰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바그너가 19세기 한가운데서 현대음악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1859)에서 바그너는 반음계의 불협화음을 끌어들인 파격적인 선율로 두 남녀 주인공의 불안과 고통에 찬 마음을 표현했다. 조화롭게 흐르는 소리의 물결을 휘저어버리는 돌덩이 같은 반음계가 20세기 음악을 예고한 것이다.

19세기 서양 음악을 혁신한 리하르트 바그너. 위키미디어 코먼스

젊은 시절 바그너는 격렬한 성격대로 정치 혁명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진 사람이기도 했다. 1849년 드레스덴 봉기에 참여했던 것인데, 체포 위기를 면한 바그너는 12년 동안이나 독일 바깥을 떠돌아야 했다. 그런가 하면 이 음악가는 분열된 독일의 통일을 열망한 강렬한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다. 바그너는 그 민족주의를 작품 속에 심어두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바그너 음악은 히틀러 시대에 나치의 선전 도구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쓴 토마스 만은 마흔 무렵까지 민주주의를 불신하는 문화적‧정치적 보수주의자였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 제국이 패망한 뒤 보수주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진보적 민주주의자로 거듭났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바그너처럼 긴 망명생활을 했다. 그 망명 직전에 발표한 글이 바로 ‘리하르트 바그너의 고난과 위대함’인데, 여기서 만은 바그너의 민족주의가 나치의 폭력적‧반동적 민족주의와는 성격이 다른 정신적‧예술적 민족주의임을 강조한다.

젊은 시절 바그너의 정신은 프루동과 바쿠닌의 아나키즘 사상, 포이어바흐의 유물론 사상 같은 당대 여러 사상의 집합소였다. 그런 정신에 결정적 충격을 준 것이 1854년 망명지 스위스에서 겪은 ‘쇼펜하우어 체험’이었다. ‘방황하는 독일인’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철학을 만났다. 쇼펜하우어야말로 바그너 자신의 음악 정신을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철학적 대변인이었다. 바그너는 쇼펜하우어를 “내 고독에 주어진 하늘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쇼펜하우어는 바그너와 니체를 부자관계나 다름없는 친밀한 관계로 묶어준 매개자이기도 했다. 바그너를 만나기 전, 대학생 니체는 쇼펜하우어 저서를 읽고 격렬한 감흥 속에 이 철학자의 사도가 된 터였다. 바그너가 먼저 쇼펜하우어에게 열광했고, 뒤이어 니체가 쇼펜하우어 철학에 빠진 채로 바그너에게 매혹됐다. 바로 그 패턴이 토마스 만에게서 반복됐다. 10대 때 쇼펜하우어 철학에 도취한 만은 바그너 음악과 니체의 철학에 빨려들었다. 만은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 곧 세계의 모든 것을 창출하고 지배하는 의지가 ‘에로스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의지는 온갖 갈등과 분열과 고통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은 짐승들의 세계에서 암컷을 차지하려는 수컷들의 싸움과 유사하다. 그런 에로스적인 의지로 흠뻑 젖은 작품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다.

20세기 독일 문학의 거장 토마스 만.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책은 바그너 음악에 대한 토마스 만의 경탄 모음이라고 불러도 좋을 책이다. “바그너는 예술적 잠재력으로 보아 유례없는 존재였고 아마도 예술사 전체를 통해 가장 위대한 재능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만은 괴테의 말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자신의 종(장르)에서 완전한 것은 모두 자신의 종을 넘어서 무언가 다른 것, 비할 바 없는 것이 돼야 한다.” 바그너가 오페라에서 이룬 것이 바로 이 ‘종의 초월’이다. 오페라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완전히 다른 것을 창조한 것이다. 만은 바그너가 앞 시대 대가들에게 경탄을 바쳤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바그너는 베토벤이나 셰익스피어를 향해 놀라움의 탄성을 멈추지 않았다. 경탄하는 마음은 나 자신을 압도하는 존재를 향한 마음이고 그 존재를 들여다보고 거기서 나를 발견하는 마음이다. 경탄이 없는 곳에서 예술은 탄생하지 않는다.

토마스 만에게 경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은 바그너라는 빛의 그림자도 비껴가지 않는다. 바그너의 명예욕, 터무니없는 사치, 만인의 사랑을 받으려는 야망, 완성된 음악보다 질이 떨어지는 저술의 허술함을 지적할 때, 균형감을 놓지 않으려는 만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만은 바그너 비판의 선구자인 니체를 자주 끌어들인다. 니체는 바그너를 만나고 8년이 지난 뒤 쓴 <바이로이트의 리하르트 바그너>에서 처음 바그너 비판을 시작한 뒤, 정신이 온전했던 마지막 해에 쓴 <바그너의 경우>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옛 사랑’을 비판했다. 만은 니체의 그 비판을 “뒤집힌 기호를 이용한 찬양”이라고 진단한다. 니체는 바그너 마지막 작품 <파르지팔>을 두고 ‘바그너가 십자가 앞에 무릎 꿇었다’고 비난했는데, 만은 이런 비판도 수용하지 않는다. 기독교 요소는 바그너의 앞선 작품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고 <파르지팔>은 그 앞선 작품들에 담긴 종교적 요소가 마침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니체의 바그너 비판이 거꾸로 된 바그너 찬양이듯이, 만의 바그너 비판도 비판의 가면을 쓴 찬양임을 느끼기는 어렵지 않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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