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을 향한 화해, 법적 책임 위에서만 가능하다 [책&생각]

한겨레 2022. 12. 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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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시작된 미투 운동으로 인해 밝혀진 정보들에 딱히 새로운 것은 없다." 마사 너스바움의 <교만의 요새> 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교만의 요새> 는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인 마사 너스바움의 2021년작으로, "여성을 단순한 객체로 다루며 평등한 존중이나 온전한 자율성을 부정하는 일상적 경향 속에 교만이라는 악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논할 것이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공유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이며, 탐색의 도구는 오랫동안 여성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여 문제를 일으켜 온 장본인인 법에 대한 쟁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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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의 새 책
‘미투 운동’이 남긴 숙제 짚어
성폭력 일으키고 처벌 막는 ‘교만’
보복감정보다 법적 책임 집중해야

교만의 요새
성폭력, 책임, 화해
마사 너스바움 지음, 박선아 옮김 l 민음사 l 2만4000원

“2017년 시작된 미투 운동으로 인해 밝혀진 정보들에 딱히 새로운 것은 없다.” 마사 너스바움의 <교만의 요새>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미국의 여성들은 성폭력과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면서 모든 여성을 위한 정의를 도모해 왔으며, 이 책의 목표는 그 오랜 행진을 드러내는 것이다. <교만의 요새>는 법철학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인 마사 너스바움의 2021년작으로, “여성을 단순한 객체로 다루며 평등한 존중이나 온전한 자율성을 부정하는 일상적 경향 속에 교만이라는 악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논할 것이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공유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이며, 탐색의 도구는 오랫동안 여성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여 문제를 일으켜 온 장본인인 법에 대한 쟁점들이다.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 사진 로버트 톨친 포토그래피, 시카고대학 누리집 갈무리

1868년 페미니스트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은 연설을 통해 남성의 폭력은 법이 맞서야만 하는 매우 실증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밝혔다. 스탠턴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미국에서 여성들은 성폭력을 고발하고 가해자가 처벌받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가. 시대가 변하면서 어떤 조건들이 바뀌어왔는가. 예컨대 여성 파트너를 매혹하지 못한 남성들이 늘 있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시대인 오늘날에만 ‘인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히 여성에게서 누렸어야 할 만족감을 여성들이 주기를 거부했다고 믿는 남자들은 ‘실제 세계’의 여성들이 인터넷 포르노 세계 속 여성들처럼 고분고분하게 행동하지 않을 때 폭력적인 방식으로 상대를 처벌해도 된다는 느낌 속에서 서로를 지지해 준다.

<교만의 요새>는 ‘교만’을 성폭력의 원인으로, 동시에 처벌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본다. 교만은 습관적으로 자신이 타인들 위에 있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수반하는 특성이다. 너스바움은 젠더적 교만이 미국식 경쟁 속에서 높은 수준의 성공과 결합되는 경우, 더 다루기 어렵고 자만에 찬 경향을 드러낸다고 봤다. 그런 교만을 가진 자들은 전 사회를, 심지어 법까지 자기들의 입맛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법부, 예술계, 스포츠계의 스타들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법적 호소에도 자신의 왕국을 지킬 수 있었다. 물론 하비 와인스타인, 빌 코스비, 제임스 리바인, 플라시도 도밍고와 같은 인물들이 권좌에서 내려오기는 했다.

2018년 5월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제개발협력 미투 기자회견에서 전·현직 활동가들이 공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그런데 이들은 모두 공연 예술계에서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며 그 권력을 여성에게 남용한 사람들인 동시에, 경력의 끝물이 되어서야 가해 사실이 폭로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화예술계는 막대한 권력과 재력을 지닌 특정한 사람들이 거의 모두의 기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방식 때문에 ‘빅스타’들은 내부 고발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메피스토펠레스적 경력’을 가진 알렉스 코진스키 판사의 사례는 “연방법원 판사에 대해서는 아무리 철저하게 조사하여 공식적으로 고소할지라도 매우 극소수만이 고소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고 언급된다. 또한, 너스바움은 대학 스포츠계의 현실에도 주목하는데, 이 모든 경우가 구체적 사례를 동반하고 있으며, ‘교만’이라는 특성 하에서 논의한다.

너스바움은 말한다. 보복감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선을 꿈꾸지만 최악을 예상하면서, 우리는 세상에 그토록 많은 악이 없었더라면 필요하지 않았을 법이라는 제도에 좀 더 매달려야 한다. 그리하여, 완전한 성평등을 향한 화해는 법적 책임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다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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