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돌봄권’을 인권으로

최원형 2022. 12. 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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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뒤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를 굶겨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로 한 청년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른바 '간병 살인' 사례로 알려진 이 사건은 비극의 책임을 그저 한 개인에게만 묻는 앙상한 '정의' 판단에 제동을 건다.

팬데믹을 계기로 돌봄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토양이 될 이론을 탄탄하게 다지는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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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인권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김영옥·류은숙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l 코난북스 l 1만7000원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뒤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를 굶겨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로 한 청년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른바 ‘간병 살인’ 사례로 알려진 이 사건은 비극의 책임을 그저 한 개인에게만 묻는 앙상한 ‘정의’ 판단에 제동을 건다. 아들의 행위(또는 행위 없음)에는 빈곤, 다른 가족 구성원의 부재, 사회적 지원의 부재 등 너무 많은 층위에서의 결핍과 부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돌봄 없이 한시도 살 수 없는데, 정작 돌봄이 필요한 사람(돌봄의존자)은 돌봄을 제공받지 못하고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돌봄자)은 희생과 착취에 놓인 것이 현실이다.

여성학자 김영옥과 인권활동가 류은숙이 함께 쓴 <돌봄과 인권>은 “돌봄을 인권의 문제에 정초하는 데에 목적을 둔” 돌봄 교과서 같은 책이다. 팬데믹을 계기로 돌봄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토양이 될 이론을 탄탄하게 다지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돌봄의 핵심 명제는 ‘인간은 누구나 취약하다’는 것이다. 취약하기 때문에 서로 기대어야 한다는 보편적 존재 조건 위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대한다’는 의미가 만들어진다. 돌봄이 곧 인권이어야 하는 이유다. ‘돌봄권’은 권리 주체-권리 내용-의무 주체로 이뤄진 기존의 권리 문법도 바꿔 놓는다. 자율적·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 있는 자아가 권리 주체이며, 특정 재화나 서비스가 아니라 돌봄 관계 자체가 권리의 내용이 된다. 인과관계를 따져 책임과 의무를 추궁할 존재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돌봄의 가치와 윤리를 지탱하는 사회문화적·정치적 책임이 무엇인지 논의할 수 있게 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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