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민주당, 입법권 함부로 쓴다

고정애 입력 2022. 12. 9. 00:39 수정 2022. 12. 9.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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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 책임 없다고 선심성 법안 강행
'민주당 예산 수정안' 주장도 잘못
거대야당으로서 자기 절제 잃었다
고정애 Chief 에디터

여의도에서 근래 들려온 발언 중 이 말에 식겁했다. “필요하다면 우리가 가진 권한을 행사해 ‘민주당 수정안’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언이었다. 민주당이 자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예산안도 의안이니 말이다. 선례가 있긴 하다. 2019년 말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이 예산안 수정안을 낸 적이 있다. 당시 홍남기 부총리가 “정부 원안보다 증액된 부분 및 새 비목이 설치된 부분에 대해 부동의한다”고 하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표결에 부치지도 않았다. 헌법 제57조(‘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에 근거했다. 표결해도 안 됐을 거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100석 남짓했다. 엄포임이 확연했다.

민주당의 위상은 전혀 다르다. 169석으로 입법권을 장악했다. 증액하지 않았고 새 비목도 설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설령 정부가 반대해도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다. 민주당은 지금도 “수정안을 처리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가능하다고 해서 그리해도 무방한가. 절대 아니다. 법률안에 대해선 대통령의 거부권이 있지만, 예산안에 대해선 없다. 국회를 통과하면 끝이다. 우리의 ’건국 아버지들’은 정부 혹은 대통령이 반대하는 예산이 국회를 통과할 것이라고 상상조차 안 했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의 말에도 드러난다. 헌법 초안의 90조(‘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는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또는 신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를 설명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국회는, 국회에 나온 대의원은 자기가 세금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돈’으로 지출을 해나가는 집행기관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집행에 대해선 책임은 지지 아니하는 그런 기관이올시다. 그런 고로 직접 국가수입이 얼마나 되느냐, 이것을 국가에 제출할 능력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이상적인 계획을 제출해 그것을 가결하면 정부는 그것을 집행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야당의 '예산안 수정안' 주장은 헌법 정신에 반한다. 2019년 자유한국당이 잘못했고, 요즘 민주당도 잘못하는 것이다.

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한국전력공사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재석 203인, 찬성 89인, 반대 61인, 기권 53인으로 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민주당이 할 수 있다는 핑계로, 해선 안 되는 일에 완력을 행사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집행 책임을 진 여당일 땐 그래도 후과(後果)를 염두에 둔 듯했다. 집행 책임을 지지 않는 야당이 돼선 더 폭주하고 있다. 때론 강행처리로, 때론 태업으로 입법권을 휘둘렀다. 여당일 땐 거들떠보지도 않던 방송법 개정안(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이나 ‘노란봉투법’(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을 밀어붙이는 게 전자라면, 오석준 대법관 임명동의안 처리를 119일간 미룬 건 후자의 경우다. 오 대법관을 두고 민주당은 내내 반대한다고 외쳤는데 정작 본회의에서 276명 중 220명이 임명에 찬성했다. 민주당 의원 대다수가 가표를 던진 결과다. 코미디였다. 급기야 8일엔 비토권까지 행사했다. 상임위에서 합의 처리한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법안을 본회의에서 부결시켰다. 전기요금을 올리라고 요구한 건데,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 사실상 전기요금을 동결해 한전을 빚더미에 올려놓은 걸 고려하면 참으로 뻔뻔한 행태다.

원래 양당제에서 집권하지 못한 정당의 임무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다. “정부의 입법 정책을 비판하고 취약한 점을 지적하며 거짓말을 못 하도록 감시함으로써 정부를 긴장시키는 것이다. 혹시 집권하면 이행할 정책 대안을 갖춘 상태로 대기하는 믿음직한 예비 정부가 되는 것이다.”(『책임정당: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

민주당은 야당으로서 정도에서 이탈했다. 제도적 절제를 잃었다. 오랫동안 정치권의 숙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해소였다. 이젠 거대 야당의 입법권 남용도 못지않은 해악임을 느낀다.

고정애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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