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시장에 버린 엄마…그 고통으로 모자는 삶을 견뎌냈다 [김은혜의 살아내다]

김은혜 입력 2022. 12. 9. 00:03 수정 2022. 12. 9.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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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대학에 들어가 첫 교양 수업을 듣던 날, 교수님이 해주신 짧은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 없이,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자매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똑같은 학대를 받고 똑같은 폭언을 들으며 자랐지만, 성인이 된 두 사람은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됐다. 언니는 ‘가정폭력 대물림을 막기 위해 절대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사회에 잘 적응해 가정을 꾸렸다. 반면 동생은 ‘보고 자란 게 알코올중독자의 일상뿐’이라고 한탄하며 결국 아버지와 똑같은 알코올중독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 말미에 교수님이 질문을 덧붙였다. “이거 사실 제 이야기에요. 제가 둘 중 누구인 거 같아요?”

정답을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이후 "나는 기억을 흘려보내는 연습을 너무 늦게 시작한 사람"’이라고 종종 언급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야기 속 동생이었던 거 같다. 그 아버지는 ‘나는 우리 두 딸과 함께해서 정말 행복했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잊고 있던 이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난 건 한 환자의 섬망(뇌 기능장애 증후군)이 시작됐을 때였다.

한 유방암 환자가 있었다.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했음에도 뇌에 있는 전이암이 커져서 편안한 임종을 준비하기 위해 내가 있는 한방병원에 머무르던 분이었다. 유방암은 ‘할 수 있는 치료’의 선택지가 많은 편에 속한다. 이 많은 선택지는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희망으로 다가가는 동시에 그만큼 힘든 치료를 오래 견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 두려움을 안겨주곤 한다. 이 환자는 그 긴 기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하나뿐인 아들 덕이었다고 늘 말했다.

“걔는 진짜 혼자 힘으로 컸어요. 내버려 뒀더니 알아서 길 찾아서 지금 대기업 다녀요.” 죽음을 앞둔 분들에게 자주 듣는, 익숙한 자식 자랑이었다. 매일 반복하는 자랑에는 ‘대기업’과 ‘혼자’라는 단어가 꼭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혼자라는 단어에서는 아들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져 당시엔 살짝 뭉클하기도 했다.

그 아들은 매일 꼬박꼬박 병문안을 왔다. 모친의 변화를 묻고 잠깐이라도 옆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암 환자 보호자로서의 정석과도 같았다. “오늘은 좀 어떠셨어요?”라며 가벼운 안부 인사를 조용히 주고받는 모자 사이에는 무뚝뚝한 분위기도 흘렀지만 부정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둘의 대화 중에 가끔 내가 끼어들면 어김없이 당신 옆에 있는 아들 자랑이 ‘대기업’과 ‘혼자’라는 단어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런 상황을 몇 번 반복해 마주하면서 우연히 깨달은 건, 그 아들은 어머니가 본인 자랑을 할 때 민망해하거나 기뻐하지 않고 그저 안 들리는 사람 마냥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에는 ‘익숙한 상황이니 다른 생각을 하나 보다’라고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들은 과거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던 거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환자의 섬망이 시작되었다. 곳곳에 전이된 암을 생각했을 때 섬망은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 섬망이 어떤 형태로 표현되는지는 개개인마다 다른 것이라 예측이 불가능했지만 보통 공격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그 날부터 촉을 세웠다. 이 환자의 경우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조용히 중얼거리며 찾아온 사람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거로 시작되었다. 내가 찾아갈 때도 눈을 번쩍 뜨고 내 얼굴을 낱낱이 훑어보다가 얼굴 아래 흰 가운을 보고서야 눈을 감으며 다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가끔은 누군가를 찾는 느낌이기도 했다. 얼마 안 가 그 누군가가 바로 아들이라는 게 밝혀졌다.

회사 일로 한동안 병문안을 못 오던 아들이 오랜만에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역시나 환자는 눈을 번쩍 뜨고는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너 또 왜 왔어! 이 새끼! 너는 그 년 집이나 가! 내 집에서 나가!”

핀란드 작가 로베르트 빌헬름 에크만(1808~73)의 '시험 전날 아침'의 일부분.


처음 듣는 쌍욕에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얼른 아들을 살펴보았는데, 정작 아들은 소리치는 엄마를 덤덤히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 큰 충격에 언 건가 싶어 바로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오자 아들이 말했다. “놀랐네요.”

미안한 마음에 나는 해명을 했다. “원래 웅얼거리기만 하고 욕설을 하거나 큰 소리를 낸 건 아니라서 적극적인 처치는 안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해요.” 그랬더니 아들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아, 놀랐다는 게 그 욕에 놀랐다는 게 아니고요, 오랜만에 저 말을 다시 들었는데 아무렇지가 않아서 저 혼자 놀랐다는 말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들은 환자의 친아들이 아니라 남편의 외도로 태어난 혼외자식이었다. 환자는 남편의 바람과 출산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그날 바로 아이를 동네에서 제일 복잡한 시장에 버렸다. 그렇게 버림받고 일주일을 시장 바닥에서 떠돌았다고 한다. 아들의 첫 기억은 엄마의 버림이었다. 두 번째 기억은 동네 주민들 도움으로 집을 찾아간 아들에게 환자가 한 말이었다. “너 왜 왔어! 이 새끼! 너는 그 년 집이나 가! 내 집에서 나가!”

많은 감정과 다양한 일을 생략한 것이겠지만 아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여기서 어떻게든 인정받아서 살아남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짐 하나로 부친의 방치와 모친의 폭언을 감당해내며 자랐다. 아마 한편으론 인정받고 싶은 마음, 다른 한편으론 평생 엄마에게는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과의 싸움에서 나온 힘이었을 것이다.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를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아들은 문득 본인이 사회에서 꽤 인정받는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는 남아있을지언정 안정된 사회생활 속에서 적어도 ‘나는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자존감은 높아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기업 이름이 찍힌 명함을 건네자 처음으로 ‘아들’이라고 불러주는 엄마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벗어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냥 흘려보냈어요. 그랬더니 최소한 겉으로나마 최근 선생님이 보신 그런 보통의 모자같은 관계가 된 거예요.”

나는 그 환자가 ‘대기업 다니는 아들 덕에 버텼다’라던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이 받은 상처를 모르지 않았지만 아들의 존재로 인한 본인의 상처가 더 컸기에 애써 외면했을 것이다. 그런 엄마를 보며 아들은 고통받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고통이 자신의 삶을 한단계 도약하도록 도와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아들 덕에 삶을 견뎠다.

이 모자를 포함해 병원에서 다양한 갈등 관계를 지켜보며 깨달은 게 있다. 인생은 과거를 흘려보내는 연습을 반복하는 과정이라는 것 말이다. 과거는 변색이 잘된다. 오죽하면 ‘아무리 힘든 일도 지나가면 다 좋게 기억된다’라는 말도, 정반대로 ‘99명의 응원과 1명의 악담을 동시에 들으면 악담만 기억에 남는다’는 말도 있을까. 무엇이든 과거가 지금의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기억이 주는 상처’ 보다 ‘추억이 주는 힘’으로 전환해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지 생각해 본다.

김은혜 경희대 산학협력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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