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당 새 희망 장완안, 장씨 가문 부활 서곡인가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우크라전 구도가 대만에 오버랩
상대후보 약점에 가문후광 작용
패배로 차이총통 레임덕 불가피
민진당 피로누적에 젊은피 열망
대만의 미래를 결정할 지방선거에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이끄는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이 대패했다. 총통직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여겨지는 타이베이(臺北) 시장 자리 역시 국민당에게 돌아갔다. 장제스(蔣介石)의 피를 이어받은 장완안(蔣萬安)이 거머쥔 것이다. 차이 총통은 몰락한 반면 장완안은 급부상했다. 장완안은 국민당의 새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대만 정계 '태풍의 눈'이 된 그가 2년 뒤 치러지는 총통 선거에 출마해 대권을 잡을 지가 벌써부터 초미의 관심사다.
◇참패의 세 요인, 중국·경제·코로나
왜 대만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이 아닌 국민당에 표를 던졌을까. 가장 큰 이유는 선거전략 실패에 있다. 민진당은 이번 선거가 지방선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2024년 '대선의 전주곡'으로 보고 중국 문제를 제기했다. 대(對)중 관계를 쟁점화한 것이다.
민진당은 유권자들이 차이 총통의 대중 강경 조치를 지지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을 선거 전략의 최우선에 두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민진당의 강경 노선에 등을 돌렸다.
운이 없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변수가 됐다. 2300만 대만인들은 대만이 '아시아의 우크라이나'가 되는 것을 우려한다. 상당수 대만인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것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너무 밀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자극했기 때문으로 본다. 차이 총통의 강경 노선으로 대만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이 뒤에서 중국의 위협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그 예로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전격적인 대만 방문을 꼽을 수 있다. 민진당과 대만 언론들은 일제히 '환영'의 목소리를 냈지만 많은 대만인들이 식은 땀을 흘렸다. 실제로 중국은 전례없는 군사훈련에 돌입했고, 해협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따라 민진당이 외교 전략의 균형을 잡아야하는데 너무 한편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이 커졌다. 결국 이번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은 중국에 대한 정부의 초강경 입장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물론 대만 유권자들은 통일도 독립도 아닌 '현상 유지'를 고수하는 차이 총통의 정책을 지지는 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부차적이었다. 표심을 좌우한 것은 경제였다. 아쉽게도 민진당의 경제정책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편이다. 물가는 치솟고, 젊은이들은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양안 간 긴장 교조로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일부 단절되면서 농·어업, 관광업, 중소기업들이 큰 피해를 봤다. 여기에 에너지 위기까지 겹쳐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 경제는 분명히 민진당보다는 국민당이 잘할 것이란 믿음이 국민당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코로나19 대책이 실패한 것도 참패의 한 요인이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 민진당 정부는 확실히 대처를 잘했다. 전염병 예방시스템을 신속하게 구축했고 마스크 공급도 원활했다. 대만의 코로나19 대책은 전 세계의 칭송을 받았다. 방역을 책임졌던 천스중(陳時中) 당시 위생복리부장(보건복지부 장관)은 '코로나 영웅'이 됐다.
그러나 작년 4월 이후 상황은 완전히 반전됐다. 오미크론 변이가 대만을 강타했다. 백신도 준비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 코로나 방역이 강화되자 수입이 줄은 국민들이 속출했다. 국민들은 타이베이 시장 후보로 나온 천스중을 '코로나 영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43살의 젊은 장완안에게 4년을 맡기고 싶어했다. 요약하자면 중국·경제·코로나 바이러스, 이 세 가지가 민진당의 패배를 초래한 주요 요인이었다.
◇장제스 증손 장완안, '국민당의 희망'으로
선거운동 기간 내내 대만에선 거의 매일 비가 내렸다. 마치 장마철인 것 같은 날씨였다. 기상 이변이었다. 후보자들은 흠뻑 젖은 채로 유세를 벌였다. 그러나 가장 많이 '젖은 채 울은' 사람은 이번 선거를 이끌었던 차이 총통일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민진당이 두 세 도시만을 잃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미 망했다'고 간주됐던 국민당은 '부활'했고, 일당 통치를 계속할 것 같았던 민진당은 '파산' 직전에 몰리게 됐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자 차이 총통은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겸손하게 선거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습니다. 즉시 민진당 주석직에서 사임합니다." 그의 몰락을 알리는 2분 24초의 짧은 연설이었다. 선거 패배로 인해 임기를 1년여 앞둔 차이 총통의 레임덕은 앞당겨졌다.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민진당 역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차이는 몰락했지만 장완안은 급부상했다. 장완안은 천스중 민진당 후보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승리했다. 만 43세인 장완안은 역대 최연소 타이베이 시장 기록을 세웠다. 장완안은 국민당의 희망이 됐다.
장완안은 장제스 초대 총통의 증손자다. 2대 총통인 장징궈(蔣經國)의 손자다. 전 국민당 부주석 장샤오옌(蔣孝巖)의 아들이다. 장완안의 아버지 장샤오옌은 장징궈의 쌍둥이 사생아다.
장징궈에는 두 명의 여인이 있었다. 본처인 소련 여인 장팡량(蔣方良)과 내연관계인 장야뤄(章亞若)다. 장징궈는 1925년 15살 때 모스크바 중산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당시만 해도 1차 국공합작 시기였고, 아직 장제스가 친소 성향이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장징궈는 트로츠키주의자가 됐다. 1927년 장제스가 '4.12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원을 비롯해 좌파들을 도살하자 부자(父子)의 연을 끊었다. 그는 아버지 장제스가 "혁명을 배반했고 중국 노동자 계급의 적이 됐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는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대문짝하게 실렸다.
장징궈는 영웅 대접을 받았으나 이후 트로츠키파 숙청 여파로 농장, 수력발전소, 공장을 전전해야 했다. 시베리아 우랄산맥의 한 중기계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중 러시아 여성 파이나(Faina)를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이웃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1937년 봄, 28살의 장징궈는 소련인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장제스는 며느리 파이나에게 '장팡량'이라는 중국 이름을 지어주었다.
또 한명의 여인이 장야뤄다. 장야뤄는 정보원 양성 학교인 삼청단(삼민주의청년단) 간부훈련반 1기 출신이다. 그 곳에서 장징궈를 만났다. 장야뤄는 과부였다. 그는 장징궈와 동거를 시작했고 1942년 장샤오옌·장샤오즈 사내 쌍둥이를 순산했다. 하지만 1년 후 장야뤄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장샤오옌은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성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 성인 '장(章)'을 썼다. 하지만 그는 장징궈 본처 소생의 이복형제들보다 일찍 두각을 나타냈다. 외교부장, 행정원 부원장, 국민당 부주석을 거쳤다. 파이나가 2004년 사망하자 장샤오옌은 자신의 성을 찾기로 했다. 2005년 3월 '장(蔣)씨'로 개성(改姓)했다. 장샤오옌의 아들 장완안 역시 아버지를 따라 장(蔣)씨 호적에 편입됐다. 27살 때였다.
물론 장완안이 '미래의 총통'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앞으로 넘어야할 산이 많다. 운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젊은 스타의 등장, 그리고 대만 총통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타이베이 시장의 수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관심을 모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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