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민들레 꽃씨일까… 기술로 빚어낸 자연의 경외감

김예진 2022. 12. 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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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네틱 아트 ‘드리프트’ 亞 첫 개인전
실제 자연 속 민들레 수확해 건조
꽃씨 한가닥 씩 떼어 전구에 연결
전시장 은은한 빛 내며 황홀 선사
작가 홀다인 “꽃이 지면 씨앗 남겨
이 씨앗은 다시 날아가 세상과 소통
작품 앞에서 자연의 주파수 느끼길”
흰 천 조각보들에 둘러싸인 조명이 천장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올라가길 반복한다. 전시장에 퍼지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하다. 조명이 움직일 때마다 실크 천인 부드럽고 섬세한 주름이 플레어스커트 펼쳐지듯 펴졌다 오므려진다. 아침마다 활짝 피어나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나팔꽃처럼, 밝은 빛을 보여주며 제 잎을 활짝 핀 모습으로 관람객에 다가갔다가, 다시 잎을 오므려 빛을 줄이고 천장으로 올라가며 관람객에게서 멀어진다. 이 조각은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설치 작품) 예술가 ‘드리프트(Drift)’의 작품 ‘샤이라이트(Shylight)’다. 밤낮의 길이, 온·습도에 반응하면서 잎과 봉우리를 스스로 움직이는 꽃들의 개폐운동에서 영감을 받았다. 공학적 설계로 자연의 원리를 재현해냈다. 기계의 운동이면서도 자연의 원리와 서정성이 풍겨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기술을 융합해내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술은 자연의 진화다.”
‘프래자일 퓨처(Frgile Future)’ 상세 모습 현대카드 스토리지 제공
‘프래자일 퓨처(Frgile Future)’ 전시 전경. 현대카드 스토리지 제공
드리프트의 아시아 첫 개인전 ‘인 싱크 위드 디 어스(In Sync with the Earth)’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 위치한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8일 시작됐다.
드리프트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남녀 아티스트 듀오다. 근래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키네틱 아트 작가 중 하나다. 1999년 디자인 학교에서 처음 만나 여러 대화 속에서 공감을 이어오다, 2007년 아티스트 듀오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주목받는 신진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선보이는 미국 뉴욕 ‘더 쉐드’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주목을 받았다. 조각, 설치, 퍼포먼스,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지만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이 키네틱 아트 작품들이었다.
아티스트 듀오 ‘드리프트’의 랄프 나우타(왼쪽)와 로네케 홀다인. 김예진 기자
전시장에는 드리프트의 대표적인 키네틱 아트 시리즈와 조각 작품이 나와 작가의 예술 세계를 한눈에 보여준다. ‘샤이라이트’, ‘앰플리튜트(Amplitute)’, ‘프래자일 퓨처(Fragile Future)’, ‘머테리얼리즘(Materialism)’ 시리즈다. 전시장 전체가 평온한 자연의 풍경화 속에 들어온 분위기다. 가령 ‘샤이라이트’가 살아 숨 쉬는 생화의 운동감을 느끼게 해주는가 하면, 이어서 만나게 되는 ‘프래자일 퓨처’는 민들레 흐드러진 언덕 앞으로 관람객을 인도한다. ‘프래자일 퓨처’는 작가가 머무는 암스테르담 자연 속에서 민들레 꽃씨를 수확해 건조한 뒤, 꽃씨에서 한 가닥씩 떼어 전구에 일일이 연결한 작품이다. 민들레 꽃씨를 분해해 중심에 극도로 작은 조명을 심은 뒤 다시 원래 형태로 민들레 꽃씨를 재탄생시키는 셈인데, ㎜ 단위로 치밀한 설계가 요구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민들레 꽃씨 1500개는 전시장에서 은은한 빛을 내며 공간을 황홀하게 채운다.
전시장에서 만난 드리프트 여성 멤버 로네케 홀다인은 “어린 시절에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지만 어른이 되면서 그런 감각을 잃게 되곤 한다. 자연의 여러 경이로운 소재들 중에서도, 민들레는 꽃이 피었다 진 뒤 씨앗이 남겨지고, 이 씨앗은 다시 날아갈 준비가 되면 스스로를 활짝 펼친다. 그저 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떠다니며 세상과 소통한다”고 말했다.
‘샤이 라이트(Shylight·왼쪽)’ 전시 전경. 김예진 기자
아래에서 올려다본 ‘샤이 라이트(Shylight·왼쪽)’. 현대카드스토리지 제공
이들의 작업에는 자연과 기술이 공존해야 한다는 철학이 깔려있다. 자연을 섬세하게 관찰한다. 얼핏 고정된 것으로 인식되는 자연 속 곳곳에서 자연물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발견하고, 생명 운동을 반복하고 순환하는 메커니즘을 찾아낸다. 이를 다시 기술로 재현해 드러낸다. 기술의 우월성이 아니라 기술 역시 자연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관람객은 자연과 기술 사이에서 연결감을 느끼게 된다. 한국을 찾은 이들은 “작품을 보고 감정적 응답이 나오는 것이 소통”이라며 “자연의 주파수를 느껴달라. 작품 앞에 오래 머물며 자연의 밸런스를 느껴달라”고 말했다.

내년 4월16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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