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일삼던 재벌가 후손, 감옥에서 쓸쓸한 최후를

한겨레 입력 2022. 12. 8. 19:10 수정 2022. 12. 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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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화학회사 듀폰으로 유명한 듀폰 가문의 상속자였다.

그러나 듀폰은 자기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증세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듀폰은 감옥에 가지 않고 정신병원에 머물다 풀려날 수 있었다.

존 듀폰은 결국 살인죄로 감옥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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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나는 역사다] 존 듀폰(1938~2010)

세계적인 화학회사 듀폰으로 유명한 듀폰 가문의 상속자였다. 엄청난 부를 물려받았다. 한때 조류학자로 활동했고, 다양한 자선사업을 했다.

미국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들은 정부 지원을 받는 소련 선수들에게 밀려 번번이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놓치곤 했다. 존 듀폰이 레슬링팀 후원에 나섰다. 폭스캐처라는 팀을 만들고 선수들 훈련장을 지어주고 살 집까지 마련해줬다. 폭스캐처 팀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듀폰은 정신이 불안정했다. “사회화되지 않은 어린아이 같았다”는 증언도 있다. 주위에서 치료를 권해야 했으나, 부자 후원자에게 그런 말을 꺼내기란 쉽지 않았다. 레슬링 선수들 사이에서 인망이 높던 데이브 슐츠가 이 일을 맡았던 것 같다. 그러나 듀폰은 자기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증세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1996년 1월26일, 듀폰의 차가 데이브 슐츠 집 앞에 멈춰 섰다. 슐츠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듀폰은 차에서 내려 권총을 꺼내 여러 발을 쐈다. 슐츠는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져 얼마 안 가 숨을 거뒀다. 아내 낸시 슐츠의 증언이다.

듀폰 쪽은 정신이상에 따른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재판정에 나타날 때면 수염도 아무렇게나 기르고 휠체어를 탔다. 정신이상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듀폰은 감옥에 가지 않고 정신병원에 머물다 풀려날 수 있었다. 반대로 유족과 검사는 듀폰이 살인을 저지를 때 나름 멀쩡한 정신상태였다는 점을 배심원에게 설득해야 했다.

존 듀폰은 결국 살인죄로 감옥에 갔다. 막대한 재산도 그를 구하지 못했다. 2010년 12월8일 그는 감방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이튿날 듀폰은 숨을 거뒀다. 듀폰의 재산은 폭스캐처 팀에 있던 불가리아 레슬링 선수 발렌틴 요르다노프가 물려받았다.

“우리 아버지(슐츠)가 죽었을 때 모두 슬퍼했어요. 듀폰이 죽었을 때는 다들 신문을 보고 기뻐했죠.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딸 대니엘 슐츠의 회고다. 듀폰과 슐츠 사이 실화는 영화 <폭스캐처>로 제작돼 2015년 한국에도 개봉됐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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