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작은 어른들

서혜미 입력 2022. 12. 8. 19:10 수정 2022. 12. 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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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인근에서 만취 운전자의 차량에 치여 어린이가 숨졌다. 사고 지점 숨진 어린이를 추모하는 공간에 이웃과 친구들의 메모지들과 하리보 젤리가 붙어 있다. 서혜미 기자

서혜미 | 이슈팀 기자

십수년 전 이용자 지식 공유서비스인 ‘네이버 지식인’에 한 10대 청소년 학생이 “교문 앞에서 인터뷰를 했는데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학교 교문 앞에서 기자를 맞닥뜨렸는데, 자신에게 취미나 태어난 연도, 집이 어디인지 등 이것저것 묻는 모습이 영 수상쩍다는 것이다. “계속 마음에 걸려서 글까지 쓰게 됐다”며 “믿을 만한 사람인가요?”라고 썼다.

두개 답변 가운데 질문자가 채택한 답은 이런 내용이었다. “샤프 들고 다니셈ㅋㅋㅋ 제가 이 글 봐도 그 사람 수상하네요.” 몇년 전 우연히 이 글을 보고 미성년자를 취재할 때는 정말 조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성인도 기자가 말을 걸면 당황하는데, 이들에겐 처음 보는 사람이 다짜고짜 캐묻는 모습이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동과 청소년을 취재해야 할 때면 부모를 먼저 취재하거나 허락을 얻어 접촉했다. 특히 보호자의 승인 없이 13살 미만 어린이를 인터뷰하지 말라. 어린이 보호를 위해 신문윤리강령에 명시된 내용이기도 했지만, 보호자의 항의에서 기자를 보호할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면? 지난 5일 만취 운전자의 차량에 치여 초등학생이 숨진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후문을 찾았을 때다. 교문 인근 골목길은 마주 오는 승용차 두대가 양쪽 길 가장자리 차선을 넘어야 가까스로 지날 수 있는 정도였다. 사고 현장에 학생과 학부모가 마련한 추모공간에 서서 빼곡하게 붙은 포스트잇을 하나씩 살펴보던 차에 옆에서 불쑥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뭐 하세요?” 하교 중인 언북초 학생이었다.

얼떨결에 기자이고 취재 중이라고 대답하니 이 어린이는 “저 ○○이 알아요. 저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답했다. 보호자 허락이 필요해서 안 된다고 하자 “엄마한테 전화하면 되죠”라고 대꾸했다. 겉옷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려 하기에 바로 만류했다. 어머니가 어떤 대답을 할지 예상 가능한데다, 기사 마감시간에 쫓기는 상황이었다. 대신 좀 떨어진 곳에서 학생들을 지켜봤다.

하굣길 추모공간에서는 여러 말이 오갔다. 숨진 아이와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닌 학생들도 옹기종기 모였다. 포스트잇에 글을 적는 친구에게 “○○이가 널 아니까 네 이름 써”라고 조언하거나, 사고 당시 목격담을 생생히 전하는 친구에게 “야, 그래도 추모… 앞에서 그런 얘기 하지 말래? 바로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라고 나무라기도 했다.

가해 운전자에 대한 성토도 상당했다.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왜 술 먹고 애를 쳐요!”라고 네댓번씩 외치는 학생도 있었고, “한명이 아니라 남은 가족까지 다 죽였다” “아무리 어린이들이 안전을 지켜도 대낮에 술 먹고 사람을 다 치고 다니는데”라며 가해 운전자를 원망했다. “하나, 둘, 셋, ○○아, 잘 가!”를 크게 두번 외친 학생 중에는 큰 소리를 내서 작별인사가 너무 밝았던 건 아닌지 걱정하는 이도 있었다. ‘공간’이라는 단어는 곧장 떠올리지 못해 ‘추모공간’이란 말은 못 했지만, 말을 신중하게 고르고 각자의 방식대로 친구를 떠나보내는 모습은 어른들에 견줘 부족하지 않았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이 단순 보호대상이 아니라 존엄성과 권리를 지닌 주체라고 규정한다. ‘초딩’, ‘잼민이’, ‘~린이’ 같은 표현들이 왜 어린이를 비하하는 멸칭인지, ‘노키즈존’ 카페가 어린이 출입을 막는 게 왜 차별인지 배워왔고, 실제 그런 내용을 다룬 기사를 써왔다. 하지만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린이를 배제하는 사업장과, 보호자의 판단을 받기도 전에 섣불리 어린이를 제지하던 내 모습은 얼마나 달랐을까. 결과적으로 공적 사안에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독립적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기자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던 ‘작은 어른’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못한 게 후회된다.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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