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재수 CEO들, 위기의 회사 구할까

성유진 기자 2022. 12. 8. 19: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환되는 ‘부메랑 CEO’들
과거 15년간 월트디즈니를 이끌었던 로버트 아이거가 지난달 CEO로 복귀했다. 사진은 2019년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행사에 참석한 아이거의 모습. /로이터·연합

과거 15년간 월트디즈니를 이끌며 회사를 ‘콘텐츠 제국’으로 키워낸 로버트 아이거가 지난달 다시 최고경영자(CEO)로 돌아왔다. 2020년 2월 CEO 자리에서 물러난 지 33개월 만이다. 디즈니는 최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디즈니플러스 사업의 대규모 적자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를 해결할 구원투수로 옛 영웅을 다시 소환한 셈이다. 아이거 복귀 다음날 디즈니 주가는 재작년 12월 이후 최대 상승폭(6.3%)을 기록하며 시장의 기대감을 보여줬다.

아이거처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온 ‘부메랑 CEO’는 희귀한 사례는 아니다. 리더십 컨설팅 회사 ‘스펜서 스튜어트’에 따르면 2010년 이후 S&P500에 속한 기업에서 22명의 CEO가 복귀했다. 트위터의 잭 도시, P&G의 앨런 조지 래플리,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등이 대표적이다. 왜 회사는 이미 떠난 CEO를 다시 불러들일까. 돌아온 이들은 과연 기대에 걸맞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위기 때 등장하는 부메랑 CEO

부메랑 CEO가 등장하는 것은 거의 예외 없이 기업이 위기에 빠졌을 때다. 예컨대 하워드 슐츠가 2008년 복귀하기 직전 스타벅스는 무리한 매장 확장과 경기 침체의 역풍을 맞고 있었다. 뉴욕 중심가 100m 거리마다 스타벅스가 생길 정도로 외형 확장에 매달리던 와중에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며 소비가 얼어붙었다. 해외에선 영국 코스타 같은 경쟁자에 밀렸고, 국내에선 ‘4달러짜리 스타벅스를 마시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광고를 내세운 맥도날드 맥카페가 자리를 위협했다. 이런 악재가 맞물리며 스타벅스 주가는 2007년에만 40%가량 폭락했다. 회사는 결국 2008년 1월 슐츠를 다시 불러들였다.

스티브 잡스가 1997년 애플로 다시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애플 제품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는 중이었고 회사는 거의 파산 직전에 몰려 있었다. 트위터 역시 잭 도시가 다시 CEO를 맡은 2015년쯤엔 인스타그램 같은 경쟁자에 밀려 성장률이 정체된 상태였다. 미국 백화점 체인 JC페니는 론 존슨 CEO 체제에서 2011~2013년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후 전임 마이런 울먼에게 다시 한번 경영을 맡겼다.

가브리엘 인베스트먼트의 리처드 베이그 파트너는 “역풍이 강할 때일수록 검증된 리더를 더 선호하기 때문에 어려운 시기에 CEO 복귀가 더 자주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잘 알려진 전직 CEO는 불안감을 줄여주고 실용적이어서 위기의 순간에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05년 디즈니 CEO에 오른 후 픽사·마블·루커스필름·21세기폭스를 연이어 인수하며 엔터테인먼트 제국을 완성한 아이거 앞에도 난제가 산적해 있다. 디즈니의 안정적인 수입원 중 하나였던 유료 TV 채널은 빠르게 죽어가고 있고, 2019년 출시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디즈니플러스는 손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테마파크 수요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복귀 직후 아이거는 “외형 성장보다는 수익성 개선에 주력하고, 가까운 장래에 주요한 인수·합병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달라진 시장 상황에 고전

일부 부메랑 CEO들은 수렁에 빠진 회사를 건져내며 구관이 명관임을 증명했다. 슐츠의 두 번째 재임 기간 동안 스타벅스 주가는 6배 넘게 치솟았다. 그는 올 4월 1년만 더 일한다는 조건으로 세 번째 CEO직을 맡았는데, 복귀하자마자 3분기에 월가의 전망치를 뛰어넘는 매출·순이익을 냈다. 잡스는 ‘애플이 6개월 내 파산할 것’이라는 외부 평가를 뒤엎고 아이팟과 아이폰 등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애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 같은 일부 성공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고전하는 편이다. 노스캐롤라이나대 비즈니스스쿨의 크리스토퍼 빙엄 교수가 1992~2017년 S&P 1500에 속한 기업을 분석했더니, 부메랑 CEO가 이끄는 회사의 주식 수익률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평균 10.1% 낮았다.

연구진은 그 이유로 비즈니스 환경이 첫 임기 때와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꼽았다. 거시경제 상황부터 소비자 선호도와 경쟁자, 공급업체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생겨 이전에 축적한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문제는 역동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에서 특히 두드러진다”며 “일부 CEO는 회사에 필요한 전략적 변화를 만들 능력이 없었고, 또 다른 일부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트위터 창업자인 잭 도시는 회사를 떠난 지 7년 만인 2015년 CEO로 복귀했지만, 결국 트위터 이용자와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 피나르 일디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도시는 트위터를 수익 창출 공간이 아닌 공개 토론의 장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며 “다른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비해 회사의 광고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또 이들이 재등판하는 때는 대부분 회사 또는 산업이 이미 위기에 빠진 뒤라서 개인 역량으로 뒤집기에 역부족인 경우도 많다. P&G의 앨런 조지 래플리는 2000~2009년 첫 임기 때 프리미엄 가격 전략과 인수를 통해 회사를 크게 성장시킨 뒤 2013년 복귀해 제품 라인 간소화 등에 나섰지만, 경기 침체기와 맞물려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2년 만에 다시 회사를 떠났다. 디지털 전환을 둘러싸고 내분에 휩싸였던 프린터·복사기 업체 제록스는 2000년 5월 폴 알레어를 1년 만에 다시 CEO로 임명했지만 이후로도 그해 말까지 주가가 80%가량 추락했다.

디즈니로 복귀한 아이거는 어떨까. 빙엄 교수는 “아이거는 회사를 너무 오래 떠나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메랑 CEO들보다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아이거는 2020년 2월 밥 체이팩에게 CEO 자리를 넘겼지만 작년 말까지 회장 자격으로 회사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두 달 뒤 72세가 되는 아이거의 귀환이 장기적으로는 디즈니에 독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베스 코위트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영웅의 귀환’은 결국 적합한 후계자를 뽑는 데 리더십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며 “어느 시점에선 후계자가 필요한데 (아이거의 복귀로) 디즈니가 후계자를 찾는 일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